■ Story

정신과 상담의 미셀(장 위그 앙글라드)은 남편과의 사도-마조히즘에 대해 상담하는 미모의 여인 올가(엘렌 드 푸제홀레)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깜빡 잠이 든다. 꿈속에서 그녀를 학대하다 목을 조르는 꿈을 꾸는 그. 깨어나보니 그녀는 정말로 목이 졸린 채 죽어 있다. 미셀은 이 모든 이야기를 자신의 상담의이자 스승인 지보비치 박사에게 털어놓지만 올가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갈수록 아리송해져만 가고 이제 미셀은 올가의 시체를 감추어야만 한다.

■ Review 장 자크 베넥스가 <베티 블루> 이후 15년 만에 던지는 화두는 성과 죽음의 묘하게 비틀린 결합이다. 여기서 그의 언어는 <디바>보다는 수다스럽고 <베티블루>보다는 정돈되어 있으며 영상과 색채는 여전히 선명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것을 반영한다.

여인의 나체 그림으로 드러나는 강렬한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정신과 상담의 미셀이 지보비치 박사에게 자신의 상담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미셀과 환자의 관계에 주목하는 대신 미셀의 자기성찰이라는 희한한 코드를 제시한다. 이 성찰은 자기반성적인, 즉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과 전이 그리고 꿈을 매개로 하여 현란한 이미지들과 함께 나른하지만 단계적으로 천천히 전개된다.

상담의로서의 미셀은 다소 사무적이다. 그는 환자의 이야기를 도와 친절하게 이끌어주는 대신에 그들이 내뱉는 말을 말없이 들어주다가 시간이 되면 말을 끊고 돈을 받는다. 그런 그가 환자에게 전이되어 무의식 속에서 가학적 섹스와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늑대의 이미지로 형상화된 성에 대한 기억, 부모의 성교를 목격한 데에서 오는 충격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리고 모가지가 잘린 기린인형이 대변하는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환원된다. 이러한 자기성찰은 엉뚱하고 또 영리하게도 죽음을 매개로 시작된다. 그의 자기성찰은 닿을 수 없는 죽음이라는 벽에 부딪혀 반사된 이후에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구도는 미셀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미스터릭한 살인을 무마하기 위해 시체를 감추는 과정과 갑자기 증발해버린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둘러싼, 마치 <형사에게는 디저트가 없다>류의 코믹스릴러와 유사하게 진행된다. 극의 재미와 유머가 발생되는 지점도 바로 이런 구도 안에서이며 ‘스릴러 형식의 코미디’라는 말이 가능한 것도 그 덕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근원 자체는 코미디가 아니다. 모든 인물과 사건의 토막이 앞서 언급된 죽음과 성과 욕망에서 비롯하기에 이 영화는 특별하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