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 뒤 살아돌아온 자, 희생부활자(Resurrected Victims, RV). ‘인체는 80%의 물로 구성되어 있어, RV들이 등장할 때는 비를 수반한다’는 설정이 있었다. 즉,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엄마 명숙(김해숙)이 나타날 때면 비가 내려야 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님께 비 신은 좀 줄이자. 부담스럽다고 했다. 근데 그건 도저히 못 버리시겠다”고 하더라.
김성환 촬영감독의 숙제는 과연 그 많은 비를 어떻게 영화에 담아내느냐로 귀결됐다. “양수리 주차장에서 촬영 전 비 테스트를 했다. 다양한 변수에서 비가 어떻게 화면에 구현되는지 실험했다.” 김성환 촬영감독이 레퍼런스로 삼은 것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1995)이었다. “비가 내리는데 차 안에 빛이 들어온다. 그 장면 구현을 많이 연구했다.” 죽은 자가 살아돌아온다는 판타지적 요소를 촬영으로 구현하는 것도 숙제였다. 특히 엄마가 살아돌아온 첫 장면에 현실성을 주는 것도 중요했다. 김성환 촬영감독은 이때 빛이 번지는 필터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표현했다. “<윈터스 테일>(2014)을 보면 빛의 분절, 반짝임 같은 게 잘 표현되는데, 그런 장면을 생각했다.”
<희생부활자>의 촬영 기술의 도전 중 눈에 띄는 것은, 영화의 액션 중 도로 위 뺑소니 장면을 실내 세트에서 촬영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신인데 제약이 많아서 아스팔트를 세트에 깔았다.” 미술팀과 특수효과팀이 협업해 보도블록을 깔고 배경을 완성했다. “아스팔트를 세트에 깐 건 한국영화에서는 처음일 텐데, 다른 작품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곽경택 감독과의 인연은 스테디캠 오퍼레이터로 참여한 <친구>(2001) 때부터다. 이후 <태풍>(2005) 때 촬영 퍼스트로 참여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킬리만자로>(2000), <태극기 휘날리며>(2003) 등 촬영팀을 거쳤고, 장윤현 감독의 중국 프로젝트 <평안도>(2014)에 참여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사진부였다. 사진과는 상관없는 일에 취직해서 일했는데, 그래도 사진을 해야겠더라.” 그길로 서울예대 영화과에서 촬영을 공부했다. 촬영감독 콘래드 홀(<마라톤 맨> <아메리칸 뷰티>)을 워낙 좋아해 “데뷔 때는 그분 영향으로 어둡게 찍어 욕을 많이 먹었다. (웃음)”는 김성환 촬영감독. “조합이 있는 할리우드처럼 80살까지 일하는 게 어렵지만 이 일이 재밌어서 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표준계약 문제도 정립되고, 우리가 조수생활 때 누리지 못한 것들이 확립되고 있다.” ‘홍경표 촬영감독 등 선배들이 늘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그는 매체 환경에 맞는 유연한 촬영감독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김성환 촬영감독은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언제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에서 답을 구한다. 뭔가 작업이 막힌다 싶을 때도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틀어놓는다. “대학 때는 <희생>(1986)을 보고 리포트를 제출해서 그걸 모아 책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그땐 ‘타르코프스키는 왜 나를 잠들게 했나’ 이런 리포트들이 속출했다. (웃음)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면 물, 반사 등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안 풀렸던 것들의 실마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