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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 이런 러브스토리를 내가 찍을 줄이야!

<산책하는 침략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산책하는 침략자>는 개념을 수집하는 외계인들이 인간의 정신에 침입해 지구를 말살하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장르적 키워드는 ‘SF’, ‘외계인’, ‘러브스토리’로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감독의 주특기인 ‘호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SF영화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접점은 최근 그가 장르의 지평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해 <은판 위의 여인>(2016) 상영에 이어 올해 역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지 물었다.

-극작가 마에카와 도모히로가 이끄는 극단 이키우메의 연극 <생매장>을 영화화했다. 그리고 5부작 스핀오프 TV드라마와 이번 영화가 함께 기획됐다.

=사실 외계인의 침공을 다루는 SF영화는 할리우드에서 거대 자본을 들여 만들지 않나. 꽤 오래전부터 이런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일본에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원작인 연극을 봤는데 평범한 부부의 일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작품이라면 일본에서도 영화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영화만 진행하고 있었는데 <링> <주온>을 썼던 작가 다카하시 히로시가 드라마 제작 아이디어를 냈다.

-장르에 대한 호기심 외에 연극 자체에서도 영화화를 결심할 만한 이유를 발견했을 것 같다.

=연극의 특성상 한정된 장소에서도 드라마가 전개된다. 연극 역시 부부중심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무대 밖 상황, 연극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 무대 밖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상상해가면서 영화의 틀을 잡았다.

-인간의 몸에 영혼처럼 침투한 외계인들이 ‘개념’을 수집한다는 설정이다. ‘가족’, ‘일’, ‘소유’, ‘사랑’과 같은 개념을 빼앗긴 사람들은 그 순간 바보가 되어버리고, 외계인의 존재를 알아차린 몇몇 사람들이 이를 세상에 알리려 하면 역시 바보 취급을 당한다. 인간다움을 빼앗긴 개인,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비유처럼 보인다.

=바로 그러한 의미를 연극에서 이미 담아내고 있었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으려는 사회 시스템이 있다. 이것을 원작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주요 테마로 그리려고 했다.

-영화의 톤과 완전히 다른, 무시무시한 호러영화의 한 장면 같은 타이틀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그 뒤로는 외계인에게 침공당한 지구의 위기와 사랑이 식어가던 부부에게 찾아온 일상의 위기를 잔잔하면서도 때론 코믹하게 그린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는 이야기니까 첫 장면만큼은 임팩트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는 바보스럽게 펼쳐지는 웃긴 전개를 의도한 게 맞다. (웃음) 영화를 구상할 때 떠올린 영화가 팀 버튼의 <화성침공>(1997)이다. 대통령 역의 잭 니콜슨이 심각한 표정으로 뭘 들여다보는 바보 같은 장면이 있는데 그에 대한 오마주 장면도 만들어 넣을 만큼 가벼운 분위기를 의도했다.

-주인공 신지(마쓰다 류헤이)의 몸에 들어간 외계인은 그의 아내(나가사와 마사미)에 대해, 애정이 식어버린 신지가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랑이란 개념을 궁금해한다. 그가 교회를 찾는 장면은 사랑에 대해 직접적으로 강조하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을 내가 찍을 줄이야! (웃음) 찍는 나도 이상했다. 원작에도 없는 이 장면은 내 아이디어는 아니고 <도쿄 소나타>(2008)의 공동 각본가인 다나카 사치코의 아이디어였다. 영화의 중요한 테마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교회 장면을 넣자고 하더라. 사실 <큐어>(1997)나 <회로>(2001)도 호러의 색깔을 걷어내고 보면 러브스토리가 담겨 있다. 최근에 만든 영화들이 장르색이 옅어지면서 사랑이란 소재가 눈에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긴 한다.

-교회의 성직자를 연기한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신부복을 입은 채 성경을 들고 등장하는 순간은 캐스팅 자체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한다.

=나로서는 가장 기분 좋은 반응이다. (웃음) 현장에서 그가 옷을 입고 나오는 순간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스핀오프 TV드라마 <전조: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드라마는 영화의 배경과 같은 설정인데 옆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 속 마을에서 히가시데 마사히로의 정체가 드러난다. 아주 중요한 인물이니 유심히 봐달라.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변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가.

=나는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일부 관객은 놀랄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싶다. 기대에 반하는 영화가 나와도 그것을 나의 작가성이라고 여겨주길, 아니 관객이 허락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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