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부산에서 만난 영화인들④] 가와세 나오미 감독 -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질문

<빛나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에게 영화는 스스로를 위한 치유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이별한 아픔이 있는 그의 첫 작품은 아버지를 찾아나가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따뜻한 포옹>(1992)이었다. <수자쿠>(1997)에서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로 이어지는 그간의 필모그래피도 상실감을 극복해가는 연대의 범위가 넓어지는 과정이었다. <빛나는>은 시력을 잃어가는 포토그래퍼 마사야(나가세 마사토시),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영화 감상을 돕기 위해 음성해설을 녹음하는 내레이터 미사코(미사키 아야메)가 갈등을 넘어 소통하는 이야기다. “예술이 곧 삶인 아티스트”라는 개인적 접점을 발견하고 소재로부터 결핍이 주는 상상력의 힘을 배웠다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을 만났다.

-첫 배리어프리영화(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이 들어가 있는 영화)였던 <앙: 단팥 인생 이야기>가 이번 작품에 영감을 줬다고.

=원래 내 작품은 대사 없이 이미지만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이 배리어프리 상영 때 말로 변하는 과정을 보며 굉장히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오디오 가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야겠다고 결심했다.

-장애가 예술 창작이나 수용에 제한이 있다는 편견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느낀 것인가.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시각장애인이 즉흥적으로 한 대사가 있다. 영화라는 큰 세계에 들어가 영화를 보게 되기 때문에 또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고. 그 감성에서 배울 게 많았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상대를 바로 맞서서 볼 수 있고,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영화를 만드는 일과 무관하지 않은 얘기인 것 같다.

=영화에서 음성해설에 대해 너무 많은 설명이 들어가면 상상력을 방해하고, 그렇다고 설명을 모두 빼면 알 수 없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영화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는 어땠나.

=미사코의 엄마가 치매라는 설정인데, 내 할머니도 치매였다. 또한 두 주인공이 창작자다. 특히 마사야는 예술을 잃어버리면 인생을 모두 잃게 되는 절망감을p;o 안고 있는 아티스트 아닌가. 나와 매우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느꼈다.

-감독의 고향인 나라현에서 줄곧 영화를 찍어왔지만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이 담긴다.

=나라현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빛나는>을 촬영하면서 동쪽 산을 훑으며 서쪽 산의 풍경이나 빛의 모습을 담았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던 나라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더라. 새삼스러운 발견을 했다.

-마사야의 롤라이플렉스 카메라가 극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매우 클래식한 기종인데.

=이안렌즈를 쓰는 기종인데, 위에서 아래로 렌즈를 봐야 한다. 그러다보면 피사체가 약간 긴장하면서 똑바로 카메라를 보게 된다. 사람과 똑바로 소통하며 인연을 만들기 원하는 마사야의 성향이 반영돼 있다.

-그러한 카메라의 특성이 인간 대 인간이 소통하는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봤나.

=맞다.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고, 사람들은 다 다르다. 하지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서로를 이해해나간다면 마사야와 미사코처럼 서로 연결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런 관계가 현대에 와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한편 영화 매체 자체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에게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미사코 역의 미사키 아야메는 원래 전문 배우가 아니라 모델이었다.

=그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었다. 시간순대로 다큐멘터리처럼 찍었기 때문에 그는 촬영 내내 정말로 울고 웃었다. 아마 다른 작품에서는 이런 연기를 못할 거다. (웃음) 또 처음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던 미사코가 점점 성장해가는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미사키 아야메의 서툴러 보이는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웃음) 이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수자쿠> 이후 20년이 흘렀다. 그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게 뭐라고 생각하나.

=20년간 시대가 많이 변했다. 인터넷이 생기고 다들 휴대폰을 쓰니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도 달라지고 에피소드도 달라진다. 가령 예전에는 만나자고 약속해도 만나지 못하는 관계를 다뤘다면 지금은 그냥 전화를 하면 해결되니까 다른 사건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가족이란 무엇이며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또한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2014) 때부터 필름에서 디지털로 촬영방식을 바꾸었다. 제약 없이 계속 찍을 수 있어 현장에서 접근방식도 보다 손쉬워졌다.

-차기작으로 줄리엣 비노쉬와 <비전>을 촬영 중이라고.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하는 프랑스 저널리스트가 일본의 어떤 숲에 있는 특별한 풀을 찾아간다. 그 풀은 997년에 한번 드러나는데 인간의 모든 고뇌를 없애준다는 설정이다. 이런 비전을 찾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이 담겨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그 비전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