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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오가는 말의 전쟁
송경원 2017-10-11

1639년 병자년 호란이 일어난다. 청의 대군에 막혀 미처 강화도로 파천하지 못한 조정은 급히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시작한다.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청나라와의 화친을 도모해 살 길을 열고자 한다. 뒤늦게 남한산성으로 들어온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은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며 결사항전을 주장한다. 인조(박해일)가 사분오열된 대신들 사이를 부평초처럼 오가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청나라의 황제가 삼전도에 당도한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농담처럼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 만큼 무엇을 전달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건이다. 황동혁 감독은 일체의 재해석이나 변주 없이 소설의 건조하고 날선 문체를 있는 그대로 화면으로 옮기는 데 초점을 맞췄고 대체로 원하는 바를 달성한다. 이 영화는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클로즈업의 드라마가 아니라 시대의 풍경을 점점이 찍어낸 산수화, 김훈 소설을 빗대자면 ‘땅의 노래’라 할 만하다.

오가는 말의 전쟁이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등 배우들의 피와 살을 빌려 생생하게 전달되지만 한편으론 이 영화에 생생함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대체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일종의 상징처럼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극적으로는 지루하고 편편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의 관계를 구축하는 이야기와 편집의 균형감각이 실로 탁월하다. 장르, 서사 차원에서 접근하면 그다지 입체적이지 않기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여지도 있는데, 드라마를 짜내지 않음으로써 얻은 최대의 성과는 시대를 반영하는 넉넉한 넓이다. 덕분에 병자호란에 얽힌 이야기이되 지금 우리의 현실들을 담담히 투사하는 현재형의 시대극이 탄생했다. 창의적인 해석이나 영화적인 혁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모자란 점을 찾아보기 거의 힘든, 그야말로 웰메이드 사극이다. 특히 불필요한 부분을 단호하게 끊어내는 편집의 호흡은 한겨울 남한산성처럼 차가운 영화의 공기를 닮았다. 단순히 사건과 상황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 소설의 톤과 정서까지 충실히 옮긴, 어쩌면 각색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완성형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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