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다케 마사하루 / 출연 안도 사쿠라, 아라이 히로후미 / 제작연도 2014년
점을 보러 갔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속도로 각자 자기 영화 편집을 진행 중이던 동네 친구 모 감독과 함께. 여러 가지로 긴 터널 속에 갇힌 듯한 날들이었다. 영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마침 문화예술 계통에서 일하다 신내림을 받았다는 신녀님을 찾아갔다.
“올해 안에 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년으로 완성을 미룰까봐요.”
“내년에 완성해도 그다지 달라질 게 없으니 그냥 올해 안에 만들어라.”
그럴 때였다. 오랜 시간 축적된 실패의 경험들과 함께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편집은 풀리지 않고 생활은 점점 더 궁핍해져만 가고 동네 친구 모 감독과 매일 야식을 먹으며 서로의 처지를 안주 삼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던 때. 그때 만난 영화가 <백엔의 사랑>이다. 32살의 주인공 이치코는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늘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동생과 큰 싸움을 하고 집을 나온다. 집을 나가겠다고 하자 엄마는 집 구하는 데 쓰라며 돈을 건네준다. 집 구하라고 엄마가 돈도 주는 이치코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 내 처지는 툭 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불어터진 만두 같은 상태였다. 내가 이치코인지, 이치코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영화에는 내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다. 여하튼 그렇게 집을 나와 100엔숍에서 일을 하게 된 이치코는 매일 지나던 길에 있는 복싱 체육관을 관찰하다 우연히 바나나맨이라는 남자를 알게 되고 관계도 깊어진다. 하지만 그는 곧 떠난다. 그가 떠나고 이치코는 기웃거리기만 했던 체육관에 들어가 복싱을 시작한다. 복싱을 왜 시작했냐는 물음에 이치코는 답한다. “서로 패고, 어깨도 두드려주고, 왠지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 결국 이치코는 링에 올라 처참히 지고 말지만 상대 선수를 오래도록 끌어안고는 연신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쉽게 시선을 주지 않는 것들에 시선을 주고 그것을 통한 새로운 언어를 전달하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2005),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비롯해 최근의 <우리들>(2015) 이전 단편들도 너무 좋았던 윤가은 감독의 영화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영화, <백엔의 사랑>이 준 커다란 위로도 잊지 못한다. 특히 이치코 역의 안도 사쿠라! 메소드 연기의 절정을 보여준 안도 사쿠라. 시합장으로 들어설 때의 그 몸을 보고 눈물이 흘렀다. 시합장에 울려퍼진 100엔숍 노래에 “전 100엔짜리 여자거든요”라고 말하며 단단해진 모습으로 링 위에 오를 때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바나나맨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긴 했지만 결국 그 또한 자신을 사랑해가는 과정이었다. 영화는 그 과정을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비포, 애프터 방식이 아니라 착실하게 안도 사쿠라의 몸으로 전한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눈물, 콧물을 쏟았다.
나는 신녀님의 말씀대로 그해 안에 영화를 완성했다. 누군가도 내 영화를 보며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는 다짐한다. 나도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