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윈드 리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의 데인 드한은 올 들어 가장 이상한 캐스팅이다. 그가 연기하는 발레리안은 자칭 마성의 바람둥이로, 사귄 여자들의 목록을 ‘플레이리스트’라고 부르며 영화에 등장하자마자 로렐린(카라 델러빈)에게 대뜸 구혼을 한다. 이런 역을 성립시키려면 뻔뻔한 카리스마- 가령 톰 크루즈나 해리슨 포드 같은- 가 필요한데 그것은 데인 드한의 사전에 없는 자질이다. 이 영화에서 데인 드한의 발성은 곧장 키아누 리브스의 둔탁한 대사연기를 연상시킨다. 특히 조종간을 잡은 로렐린에게 간섭하는 장면에선 판박이다. 드한의 캐스팅을 납득하는 길은, 뤽 베송이 전통적 마초 남성 영웅의 공식을 해체하려 했다고 믿는 것이다. 베송은 이번 영화에서 진주족의 외양을 중성적으로 디자인하고 황제 목소리를 엘리자베스 데비키에게 맡기기도 했다. 하긴 그러고보면 엄청난 능력을 지닌 이 영화 속 다양한 우주 종족들 가운데 왜 지구인이 여전히 중심인지도 설명하기 힘들긴 하다.
08/28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많은 사람을 살해한 김병수는 죽이고 싶었지만 참고 살려둔 자들을 회상하며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나”라는 작고한 부친의 말에 공감의 한숨을 쉰다. 문제의 부친은 가정폭력범이었는데 소년 김병수는 아버지를 살해한 후 재능을 발견해 꾸준히 살인했다. 김영하 작가가 쓴 소설에서 주인공의 동기는 “나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장인적’ 집착이다. 소설의 김병수는 규범을 벗어난 일종의 방외인(方外人)이다. 반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원신연 감독은 김병수(설경구)를 상식의 영역 안에 넣는다. 그의 동기는 정의구현으로, 자기가 사회를 좀먹는다고 판단한 악인들을 제거한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알츠하이머는 평생을 속박한 살인의 의지로부터 인물을 풀어주는 구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감도 잠시, 기억상실을 안고 불가피하게 살인을 재개한 김병수는 심연을 마주한다. 내가 누구인지 죽여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나침반을 잃어버린 그의 위기는 외적 파국이자 내적인 소멸이다. 그러나 영화의 김병수는 끝까지 해체되지 않는 주체다. 그는 관객이 동일시해 목적 달성 여정을 동반하는 고전적 영웅이다. 영화의 김병수에게는 애초에 “나쁜 놈들만 죽였다”는 정당화의 변이 있고 민태주(김남길)라는, 기억의 유실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수 없는 확고한 적수가 있다. 관객이 김병수에게 동일시해도 괜찮은 이유로 영화는 핏줄도 안 섞인 딸을 끝까지 보호하려는 가족애를 제시한다(“내 딸만 손 안 대면 네가 뭘 하건 상관 안해”). 아버지의 정체와 그가 어머니에게 한 일을 깨닫고 (당연히) 저리 가라고 거부했던 착한 딸(설현)은 에필로그에서 용서하는 얼굴로 문병 온다. 마치 이 남자에게 아버지로서 자기를 보호하길 허하는 ‘고!’ 사인 같다. 결국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제 가족에게는 따뜻한 가엾은 악인과 훨씬 구제불능인 사이코패스의 관습적 싸움으로 귀결되어버린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기억과 세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살인 행위로 연결돼 서로를 구성하는 재료를 공급한다. 영화에서 세계는 강고하고 기억상실은 인물을 방해하는 핸디캡이 되는 데에 그친다. 남성 주체의 자아는 너무도 지우기 어려운 무엇이다.
09/06
<윈드 리버>를 밀어가는 엔진은, 와이오밍주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일어난 두건의 강간살인사건이다. 야생동물 보호국 소속의 토박이 포식동물 사냥꾼 코리(제레미 레너)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내와의 사이에 둔 맏딸을 잃었다. “완벽한 나의 세계 속에는 풀밭이 하나 있다”라는 시를 쓰는 아이였던 딸은, 눈밭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달아나다가 맨발로 죽었다. 3년 후, 가축을 해치는 퓨마를 추적하던 코리는 죽은 딸과 단짝이자 친구의 딸인 나탈리(켈시 초)의 얼어붙은 시신을 발견한다. 누군가로부터 달아나다가 폐가 터져버린. 코리는 이윽고 사냥할 포식동물이 네발 짐승만이 아니라고 결심한다. 사건 발생 장소가 보호구역이기에 파견된 FBI 수사관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은, 테일러 셰리던 감독이 쓴 전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처럼 나이브하지만(그녀는 바람막이 차림으로 눈밭에 타이어를 공회전시키며 등장한다) 선의를 품은 아웃사이더다. 피해자도 추격자 중 한명도 여성이지만 <윈드 리버>는 궁극적으로 ‘괴물’에게 딸을 잃은 아버지들의 애도와 복수를 그린다. 제인은 인상적인 주역이지만 영화는 그녀에 대해 알 듯 말 듯한 지점에서 더 들어가지 않는다.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테일러 셰리던 감독이 묘사하는 와이오밍의 이 지역은 기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오래전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고 억만장자가 다시 백만장자를 몰아낸 자리에서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여긴 아무것도 없어. 여자도 없고, 여흥도 없고 눈만 계속 쌓이잖아.” 타지에서 온 백인들은 변방 생활의 권태와 욕구불만을 지역 여성들을 향한 폭력으로 해소한다. 셰리던은 역시 시나리오를 쓴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법에 호소하기보다 피해자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딱 맞는 방법을 법 밖에서 찾아 고독한 늑대의 태도로 밀어붙이는 방법을 택한다. 범죄 플롯과 금융자본이 휩쓸고 간 현대 미국의 스케치, 유장한 정서가 균형을 이룬 <로스트 인 더스트>에 비해 <윈드 리버>는 훨씬 감정적이다. 보호구역 주변 지역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문화,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들이 성폭력 앞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코멘트는 생략돼 있다. 살인 미스터리는, 해결이랄 것도 없는 압도적인 샘 페킨파풍의 총격전과 플래시백으로 순식간에 풀리고, 영화는 무고한 죽은 자와 비운의 땅을 애도하는 자리로 허위허위 돌아간다.
09/07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운씨는 2009년 구조조정과정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지만 무더기로 정리해고된 동료들과 연대하며 투쟁을 시작했고 싸움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어른들이 싸우는 동안 아이들은 어김없이 자랐다. 한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는 아빠가 감옥에 간 2009년 봄부터 복직한 2016년까지 맏아들 현우의 9살부터 15살을 관찰과 인터뷰로 기록한다. 두 아들은 아직은 옥살이를 한다는 사실이 반드시 죄를 지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엔 어리다. 현우의 가족은 평범한 듯 결코 평범하지 않다. 부부는 일상적으로 어린 두 아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앉혀 아빠의 싸움과 관련된 뉴스를 보게 하고 현장에 데려간다. 아이들이 품는 궁금증과 의구심에 귀를 기울이며 본인조차 정답을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최대한 솔직하게 설명한다. 아빠와 엄마가 옳은 일을 하려고 고생하고 있으니 참아야 한다고 다그치지 않는다. 이 담담한 태도는 소년을 스스로 조용히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의 반응과 고충은 어른들의 염려하는 바와는 사뭇 다르다. 현우는 선거에 입후보한 아빠 동료의 포스터 앞에서 “노동자로 선수교체”라는 슬로건이 틀렸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반박하지 않는다. 뭐, 주먹을 부르쥐고 입술을 깨물며 참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또래들이 그렇듯 현우가 제일 꺼리는 일은 남다르게 보여 일대일 면담에 호출되는 것이다(“이상한 애로 안 보이면 그걸로 돼요”). 장래희망도 특이한 직종을 썼다가는 발표를 시킬까봐 조심한다. 표정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시기에 접어든 10대지만 영화는 김현우라는 개인의 성품을 서서히 드러낸다. 현우는 상냥함을 타고난 아이다. 이기적 불만이라고는 투쟁이 시작된 후 아빠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줄어서 같이 놀 기회가 적다는 정도다. 소년의 근심은 주로 부모를 향한다. 몇년이나 추운 곳에 서 있는 아빠가 안쓰럽고, 예전에 장난감을 졸라서 사지 않았으면 통장 잔고가 얼마일까 헤아려본다. 심지어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막연해 보였던 아빠의 고생에 가시적 목표가 생겨서 좋다고 안도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주고 싶어요.” 부모가 아이에 대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부모에 대해 하는 말이다. 영화가 끝나기 8분 전에야 현우는 아빠와 영웅이라는 두 낱말을 이어서 쓴다. 아빠는 분명 특별하다. 하지만 소년은 아빠처럼 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용기를 주는 약이 있다면?”이라는 감독의 질문에 현우는 위험한 지경에 뛰어들어 오히려 둘 다 죽을 수 있으니 약을 버리겠다고, 아니면 (더 훌륭한) 딴 사람에게 약을 넘기겠다고 대답한다. 아이들은 입력한 대로 출력되는 수식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염려하되 이끌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한영희 감독은 이미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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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모든 것
<우리의 20세기>의 도로시아(아네트 베닝)는 인류학자의 표정으로 본인의 장년과 10대 아들의 성장을 관찰한다. 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행복을 원하지만,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 세상사에도 호기심을 거두지 않는다. 영화 초반 슈퍼마켓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발화하는 장면에서 도로시아의 얼굴에는 경악과 동시에 강 건너 불 구경하는 흥분이 스쳐간다. 아들이 결석사유서 서명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학교에서 통보받아도 감쪽같은 솜씨에 감탄부터 한다. 도로시아는 세입자들과 가족처럼 살며, 다양한 사람을 초대해 파티를 즐긴다. 그것이 아들을 잘 키우는 길 중 하나라 믿는다. 그녀는 본인의 고독과 어려움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모색하고 기웃거리는 50대 여성이다. 지적이고 관대하며 쓸쓸한, 세월과 화해한 자연스런 아름다움. 배우 아네트 베닝의 현재 얼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