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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피 흘리고 싶다
윤가은(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2017-09-07

생리에 관해서라면 내게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생리 주기는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인가. 분명 끝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닥쳐와 당황하기를 20년째다. 생리통은 또 어떤가. 10대 초반부터 1년에 열두번씩, 매우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겪어온 고통이지만 이상하게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외려 나이가 들수록 또 몸의 컨디션에 따라, 매번 새롭고 다양한 통증이 세심하고 풍성하게 느껴지니 신비로운 영역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알쏭달쏭 모르겠는 건, 도대체 왜 생리대는 아무리 많이 사다놓아도 필요할 때는 똑 떨어지고 없는가 하는 거다. 어디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없는 물건인데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이 의아함은 결국 첫 번째 미스터리와 만나는데, 결국 모든 문제는 거기서 발생하는 것 같다. 생리 주기는 너무 자주 지나치게 빨리 돌아온다.

얼마 전에도 갑자기 생리대가 떨어져 난감했다. 나름 마트나 드러그스토어의 세일 기간을 꼼꼼히 챙겨 몇달치를 사다놓곤 했는데, 막상 필요할 때 바닥이 나 진땀을 뺐다. 결국 황급히 편의점으로 달려가 아무 생리대나 샀는데 궁합도 잘 맞지 않고 값도 비싸 후회막심했다. 그래서 이번엔 큰맘 먹고 아예 1년치 정도 사서 쟁여놓기로 했다. 그러곤 밤새 인터넷을 뒤져 저렴하면서도 평가가 그럭저럭 괜찮은 생리대를 찾아냈다. 마침내 장바구니에 한가득 호기롭게 담아 결제하려는 참에 생리대 대란이 터졌다.

여성환경연대가 가장 많이 팔리는 국산 생리대 10종류를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했는데, 대부분의 제품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특히 많은 부작용이 보고된 한 제품은 사용한 뒤 생리 양이 현저히 줄어 2~3일 만에 생리가 끝나거나 생리 불순이 심해지거나 전에 없던 생리통과 발진, 질염 등이 생겼다는 사례가 속출했다. 심지어 난소에 혹이 생겨 큰 수술을 했다는 무시무시한 일화도 전해졌다. 대다수 기업이 생리대에 전성분 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면세품이 되자 그만큼 가격을 올려 비싸게 팔고 있다는 사실 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모든 게 괴담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실화였다.

그 와중에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를 다시 보니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읽혔다. 영화의 오프닝, 생리에 무지한 채로 첫 생리를 시작한 캐리는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다. 하지만 친구들은 탐폰과 생리대를 던지며 캐리를 조롱하고, 이후 그녀는 잠재되었던 초능력을 발현하며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 영화의 숨은 주제는 ‘생리 시작한 여자를 건들지 마라’가 아닐까. 한달에 꼬박 일주일을 통증과 우울에 시달리며 고스란히 피 흘려야 하는 운명도 괴로워 죽겠는데, 그런 여성들에게 이런 개똥 같은 소비재로 병까지 안겨주다니! 불량품 환불이야 당연한 일이고, 그동안 원인 모를 고통에 맘고생하며 들인 시간과 비용은 과연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 도대체 안전하게 피 흘리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 일인가. 생리대까지 걱정하기에, 생리 주기는 너무 자주 지나치게 빨리 돌아온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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