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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의 최승호 감독,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민식 PD, 김보슬 PD 대담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7-08-16

싸워왔고, 싸우고 있고, 싸울 것이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승호 감독, 김보슬 PD, 김민식 PD(왼쪽부터).

“이곳에서 노조가 MBC 블랙리스트를 공개했습니다.” 지난 8월 8일 오후,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MBC 노조 사무실은 오전에 연 기자회견 때문에 책상과 의자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노조원들의 모습을 보니 아직 식지 않은 기자회견의 열기와 흥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했다. 이날 오전에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MBC 노조는 ‘카메라기자 성향 분석표’와 ‘요주의 인물 성향 문건’을 공개해 지난 9년 동안 회사(MBC)가 직원들의 인사를 어떻게 감시, 관리해왔는지 알렸다. 두 문건에는 MBC 보도부문 카메라 기자들의 개인별 성향과 출신, 170일 파업 가담 여부, 노조와의 친소 관계 등이 낱낱이 담겼다. 다큐멘터리 <자백>(2016)을 만들었던 최승호 감독의 신작 <공범자들>은 MBC, KBS, YTN 등 공영 방송 언론인들이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정권의 탄압 때문에 옷을 벗어야 했고, 다른 부서로 쫓겨났으며, 정권과 회사를 상대로 매우 치열하게 싸운 데다가 아직도 싸우고 있다고 얘기하는 작품이다. 최승호 감독,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MBC 기자), 김민식 PD, 김보슬 PD 등도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이며 아직도 MBC 내부에서 투쟁하고 있다. 이들에게 만남을 청해 우리가 왜 공영방송 정상화에 관심을 가져야하는지 물었다. 대담이 진행된 8월 8일은 공교롭게도 9년 전 MB 정권이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해 언론 탄압의 신호탄을 쏜 날이었다.

-오늘(8월 8일) 오전 이곳에서 MBC 노조가 ‘MBC 블랙리스트’를 입수해 공개했는데.

=최승호_ 그동안 (회사가 기자와 PD를 감시,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한) 리스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회사가 파업 참가 직원들을 경중으로 구분하고, 그 사람들을 비제작부서로 보내지 않았나. 비제작부서도 여러 층으로 촘촘히 나뉘었고. 리스트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근거가 드러난 셈이다. 나올 게 드디어 나온 거지.

=김민식_ 회사가 이 리스트를 “정체불명의 괴문서”라 대응했다. 그걸 보면서 제대로 작성된 리스트가 또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개된 문건은 자료 조사 단계에 해당하는 문서고, 그걸 참고해 완성된 버전의 리스트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회사가 갖고 있는 리스트를 보고 싶다.

=신경민_ 파이널한 문서 말이지? (웃음) (공개된 문서에) 카메라 기자만 있는데 회사가 노조의 파업을 겪으면서 더욱 지능화되었고, 그러면서 더 체계적으로 리스트를 작성했겠지.

김민식_ <여왕의 꽃>(극본 박현주)이 비제작부서로 발령나기 전에 연출했던 마지막 주말 드라마인데, 시청률이 20%가 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주말 연속극 시간대에 그만한 시청률이 안 나오고 있다. 당시 드라마국이 평가한 내 인사 고과가 두 번째로 높은 A등급이었다. 인사부가 전체 직원 점수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내 점수를 봤다. ‘얘(김민식)는 지금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높은 점수를 줬냐’고 드라마국에 따졌고, 드라마국은 ‘성과를 냈으니 당연히 줘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인사부가 ‘얘를 왜 성과를 낼 수 있는 자리에 넣었냐’면서 나를 주조정실로 발령냈다. 방송 스위치를 담당하는 주조정실 MD는 성과를 낼 수 없다. 일을 잘하면 방송 사고가 없고, 혹여나 실수해서 자막을 잘못 넣거나 12세 등급을 15세로 바꾸면 무조건 징계를 받는다.

=김보슬_ 나 또한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디테일하게 작성된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평가하는 건 너무 모욕적이지 않나. 노조 발표를 지켜보면서 동료와 ‘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궁금해했다. 본부장이 ‘(우리에게) 일 시키지 마라’고 하는 건 다 알고 있으니까. 블랙리스트가 공개된 후 만난 카메라 기자 중 한명은 ‘내가 왜 세모야? 좀더 분발해야겠다. (웃음)’라고 하더라.

최승호_ 세모면 (회사가) 회유 가능한 사람이네. (일동 폭소)

최승호 감독_이명박 정권이 자행한 언론 탄압 때문에 MBC PD를 그만두고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에 합류해 다큐멘터리 <자백>(2016)과 <공범자들>(2017)을 차례로 연출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서울 영등포구을) 의원_29년차 MBC 기자 출신으로 2008년 3월부터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아 촌철살인의 클로징 멘트들을 숱하게 남겼다. 당시 정권이 클로징 멘트를 문제 삼으면서 2009년 4월 경질됐다. 19대, 20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궁무진한 투쟁의 에피소드들

-<공범자들>은 어떻게 봤나.

신경민_ 당시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내 해임이 MBC 장악의 첫 단추처럼 나오는데 그때 (어떤 그림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치들인지) 짐작했으나 (MB 정권의 방송 장악 과정을) 체계적으로 편집한 이 작품을 보니 ‘내가 대단한 역할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정권)에게 어떤 역할이었고, 자기들(김민식, 김보슬)은 또 어떤 존재였는지 쭉 보니 우리가 엄청난 일을 겪은 거다. 러닝타임 때문인지 영화에 들어가지 못한 중요한 사건들과 KBS 구성원들의 투쟁이 많다. 그 내용을 조금 더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최승호_ KBS 구성원들도 엄청난 싸움을 했다. KBS 버전, MBC 버전을 각각 따로 만들 걸 그랬다. (웃음) 지난 9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들이 벌어진 까닭에 그만큼 많이 덜어낼 수밖에 없었다. 편집할 때 무엇을 빼야할지 고민이 컸다.

신경민_ 공범자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도 좀더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최승호_ 대하 TV다큐멘터리였다면 5부작으로 만들어 다 기록했을 텐데.(웃음)

-다큐멘터리를 보면 MB 정권과 그들에게 장악된 MBC가 신경민 앵커의 촌철살인 클로징 멘트를 매우 불편해한 것 같은데. 마지막 클로징 멘트를 다시 보니 울컥하더라( “회사의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 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1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은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간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징하겠습니다.” 당시 신경민 앵커의 마지막 클로징 멘트-편집자).

신경민_ 그 클로징 멘트를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보고 또 봤다. 마지막 방송날 아침, 사장 주재 임원회의에서 내 해임안이 의결됐고 곧바로 통보받았다. 임원회의에서 ‘너는 끝이다. (마지막) 방송을 할 건지 말 건지 결정하라’기에 ‘나한테 결정권이 있는 거냐’고 물어본 뒤 방송을 할지 안 할지 고민하다가 (클로징 멘트를) 썼다. 그 멘트가 인구에 회자되니 마지막 방송을 하길, 클로징 멘트를 쓰길 잘했구나 싶다. 그 방송을 안 했더라면, 내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면…. 마지막 방송은 후배들이나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준 일종의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 변치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1분이었다.

-클로징 멘트가 회사에 큰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고수했던 이유가 뭔가.

신경민_ 시청자들과의 약속이고… 또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당시 <뉴스데스크>의 뉴스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도국장, 부장들이 따로 있었지만 내가 나이가 가장 많고, 직급도 높고, 앵커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뉴스 편집을 시시콜콜 다 바꿀 수는 없고. 앵커는 뉴스를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방향을 전달하는 보완적, 주도적 기능을 하는 역할이다. 클로징 멘트는 편집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하는 의미도 있고. 뉴스를 내 생각으로 보고, 내 생각을 얘기하겠다고 시청자들과 약속했다. 그 과정에서 보도국과 회사 그리고 회사 외부에서 들어온 압박과 압력이 꽤 셌다. (클로징 멘트를) 꼭 해야 하나, 왜 그렇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많았으니까.

-MB 정권은 생후 30개월이 넘는 소는 광우병 위험이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PD수첩>을 탄압했고, 이것이 결국 MBC 탄압의 출발점으로 작용했다. 김보슬 PD는 이 보도 때문에 결혼식을 나흘 앞두고 검찰에 소환됐는데. 영화는 이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보슬_ 몇년 전까지는 괴로웠다. ‘그때 그 일만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가라앉힌 것 같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공범자들>을 보러 갔다가 2012년 파업 때 MBC 구성원들이 싸우는 장면들이 나와 보면서 오열했다. 이용마 선배가 투병하고 있는 장면을 볼 땐 감정이 북받쳐서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가 나간 뒤 체포돼 유치장에 갇히고, 수갑을 찬 채 포승줄에 묶여 경찰차에 올라타 검찰에 수사받으러 갔던 모든 과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사건 이후로 내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자괴감에 시달렸고, (정권으로부터) 너무 칼질을 당해서 정신을 못 차렸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유치장에 들어갔더니 공소시효를 하루 남기고 사기죄로 잡혀들어온 아주머니가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려고 말을 붙이더라. 대답하기 싫어 죽겠는데 “여긴 왜 들어왔수”라고 물어와서 “방송을 잘 못해서 들어왔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가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요즘도 그런 세상이에요?”라고 되묻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최승호_ 당시 조중동의 악의적인 왜곡보도와 이명박 정부의 악의적인 언론탄압 때문에 <PD수첩> 보도를 아직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영화가 현재 모 포털 사이트에서 평점 테러를 당하고 있는데 단골로 등장하는 댓글이 광우병이다. ‘너희는 지금도 미국산 소고기를 안 먹지’ 이런 내용 말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30개월 이상의 소도 다 수입하자고 주장했고, <PD수첩>은 30개월 이상의 소를 수입하는 건 위험하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결국 정부는 미국과 재협상해 수입 소의 연령을 30개월 이내로 조정했는데 시청자들은 이 내용을 모른 채 PD들의 체포와 ‘30개월된 소’만 기억하는 거다.

김보슬_ 영화를 보니 잊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투쟁모드로 빨리 전환됐다. MBC나 KBS 구성원들에게도 그런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이렇게 싸웠고, 당했지만 앞으로 더 싸울 거라고.

신경민_ 당시 영상을 어떻게 구했을까 싶을 만큼 흥미로운 대목이 많이 나오더라.

김민식_ 교양제작국 PD들이 2012년 파업 때 ‘파워 업 <PD수첩>, 제대로 <뉴스데스크>’ 같은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그게 노동조합이 기록으로 남긴 영상들이다.

-<PD수첩> PD들이 포승줄에 묶여 체포되는 이미지는 지금 봐도 굉장히 센데.

최승호_ 이명박 정부에게 <PD수첩> 사태는 (언론 길들이기의) 샘플이 됐던 것 같다. 시청자들에게 언론인이 범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줬고, 그런 탓에 같은 언론인이 굉장히 위축됐던 것 같다.

-영화 후반부는 최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연신 외치는 김민식 PD를 통해 공영방송에 아직도 싸우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보여주는데.

김민식_ 드라마도 코미디 장르만 연출해왔을 만큼 코미디 전문인데 이것이 최고의 코미디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 속 공범자들의 면면을 보면 굉장히 코믹하다. 그들은 되게 나쁜 사람 같지만 그건 자리가 가지고 있는 힘이지 실제로는 매우 허약하고 지질하다. 2012년 파업 때 동료들에게 분노하고 울분에 찬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항상 얘기했다. 피곤하면 싸움이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끼리 웃고 즐기면서 저들을 비웃고 놀려야 오래갈 수 있다. 지난 7월 13일 기저귀까지 찬 채 인사위원회에 출석해 필리버스터를 했다. A4 55쪽 분량의 진술서를 준비해 진술을 이어나갔고, 결국 인사위원회는 오후 6시도 되지 않아 정회됐다. 그걸 하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공범자들>을 보러 간 거다. 이 영화가 내 투쟁 전략을 바꿔놓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인사위원회에 들어가 그들 앞에서 그랬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 할 이유가 있는데 그 증거들이 여기에 다 있다, 여러분(인사위 참석한 임원들)이 다 증인이다, 이 따위로 인사를 해놓고 무슨 사장 놀음을 하는가.” 그리고 “모 본부장님?” 하고 불렀더니 그분이 손을 들더라. 그에게 “본부장님의 후배 직원들은 본부장님에 대해 ‘평소에 건배사를 좋아하는데 경영 본부 개혁에 대한 의지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라고 말해주니 한 임원이 머리를 쥐어뜯는 거다. 자기들끼리 대장 놀이를 하고 있는데 후배들의 평가가 적나라하게 공개되니 얼마나 괴롭겠나. (웃음)

-투쟁 선수가 다 된 것 같다. (웃음)

신경민_ 김재철도 참 코믹했어. (최승호 감독을 바라보며) 그 악당들을 좀더 길게 보여줄 수 없었어? (일동 폭소) 그들이 더 많이 등장하지 않아 아쉬워. 러닝타임이 2시간 반 정도여야 적절한 것 같아.

김보슬 PD_2003년 MBC에 입사했다. 2005년 에서 한학수 PD와 함께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을 다뤄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8년 11월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광우병’에 대한 보도 때문에 검찰은 사전 연락 없이 MBC를 압수수색했고, 김보슬 PD는 결혼식을 나흘 앞두고 체포돼 고초를 겪어야 했다.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정직 3개월을 받았고 현재 콘텐츠제작국 다큐멘터리부에 있다.

김민식 PD_<논스톱3>(2002), <느낌표>(2004), <레인보우 로망스>(2005) 등 예능 및 시트콤과 <내조의 여왕>(2009),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2010), <글로리아>(2010), <여왕의 꽃>(2015) 등 드라마를 연출했다. 2012년 MBC 170일 파업 당시 노조 부위원장을 맡았고, 현재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고 있다.

“MBC와 인터뷰 안해요”라는 말

-지난 8월 3일 김장겸 MBC 사장, 김재철, 안광한 전 MBC 사장, 백종문 부사장, 박상후 시사제작 부국장 등이 최승호 감독과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를 상대로 <공범자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했는데.

최승호_ 그날 아침 출근했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봉투가 하나 와 있었다. 법원에서 올 게 없는데, 하다가 상영금지가처분 소송일 수 있겠다고 짐작했다. 카메라 기자한테 이걸 들고 찍자 해서 봉투를 개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맞더라. 그걸 확인했을 때 상당히 기뻤다.

김민식_ 이슈가 될 테니까. (웃음)

최승호_ 그래서 찍으라고 했다. 원고 이름들을 차례로 읽고 카메라를 쳐다보며 “법정에 가서 한번 따져봐야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외치고 싶더라고. “만세.” 드디어 흥행 기운이 오는구나. 법원이 이걸 인용한다면 어마어마한 사건이 되는 거다. <PD수첩> 시절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을 두번 당한 적 있다. 그중 하나가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이라는 방송이었는데 당시 국토해양부가 청와대의 압박을 받고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이해하기 힘든 아이템이라 시청률이 잘 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해주니까 가처분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나갔고 이후 법원이 기각하면서 기각 기사가 쭉 나갔다. 그리고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이 될 거라는 기사가 또 나가면서 홍보가 됐다. 이번에도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버틸까 걱정했는데 출연자(MBC 전·현직 사장)들이 흥행을 위해 스스로 희생해주었다. (웃음)

-악당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김민식 PD는 악당들이 왜 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고 보나.

김민식_ 좋은 질문이다. (웃음) 몇달간 싸우면서 느낀 건데 이분들과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아이디어가 별로 없다. 인사위원회에서 필리버스터를 하겠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 변호인단 모집 이벤트까지 벌였는데 정작 그들의 대응은 진술을 왜 이렇게 길게 하냐는 거다. (웃음)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인사위원회가 또 정회됐다. 인사부장이 “김민식이가 원고 55장을 써놨는데 왜 보고를 안 했냐”고 하니 한 임원이 “인사위원회는 인사부 소관이니까 너희들이 얘가 뭘 할지 미리 체크해야지”라고 했다는 거다. 상영금지가처분 신청도 얘들이 앞수를 내다보고 한 게 아니라 사장이 “최승호가 뭔가 한다는데 이걸 그냥 놔둬?”라고 하니 밑에 있는 애들이 티를 내기 위해 소송을 건 거다. 지난 국정농단 사태 때 청와대 참모들이 박근혜한테 ‘국정을 이렇게 운영하시면 탄핵된다’고 말을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상황이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지.

최승호_ 보도본부 이름으로 내놓는 성명서 문법도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다. 사람을 잘못 뽑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민 의원을 쳐다보며) 선배님은 그걸 못 보셨나.

신경민_ 모른다. (일동 폭소) 지금 MBC에 있는 사람 대부분 전혀 모른다. 알던 기자들이 전부 떠나서.

김민식_ 주조정실 MD로서 뉴스를 보면 MBC를 20년 동안 다녔는데 앵커부터 기자까지 아무도 모르겠더라. (웃음)

-많은 시민들이 KBS와 MBC에 아직도 싸우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모른다. 공영방송이 정상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최승호_ 공범자들을 축출하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공범자와 그들 주변에서 방송국을 망친 사람들을 청산해야 한다. 그다음에 MBC를 복원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김민식 PD는 드라마국으로, 김보슬 PD는 <PD수첩>으로 돌아가 공영방송을 제대로 살리기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지난 9년 동안 잃어버린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율성이다. MBC는 지난 수십년 동안 자율성 하나로 버텨온 방송사다. 하지만 공범자들이 불과 몇년 만에 전부 말아먹었다. ‘너 아니면 안 돼’라는 정신으로 일을 해야 제대로 된 취재와 프로그램이 나오는데 영화에서 나왔듯이 안광한 전 MBC 사장은 ‘너 아니어도 돼’라며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살아 온 기자와 PD들을 대체 가능한 인물로 만들어버렸다.

김보슬_ 오늘 콘텐츠제작국 총회에서 내일(8월9일)부터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제 뭘 더 기다리나, 우리가 당했던 것들을 모으면 차고 넘친다, 더이상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등 회사가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제작국 PD들이 이 의견에 동의했고, 내일부터 제작 거부 투쟁에 동참할 계획이다.

-지난해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JTBC의 보도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김보슬_ 저거 다 MBC가 했던 건데. 원래의 MBC였다면 누구보다 잘했을 것이고, 제보도 이쪽으로 왔을 텐데…. 어느 순간 “MBC가 저런 보도를 할 수 있나요?” “MBC와 인터뷰 안 해요”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우리도 MBC 뉴스를 본 지 오래됐다. 너무 괴롭고 속상하고 짜증나서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보도의 신뢰성에 대해 우리 스스로 의심하고 있으니까.

-MBC의 투쟁에서 더 필요한 게 뭔가.

김민식_ 단순하게 김장겸 한명만 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아래는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범자들>을 꼭 봤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쟤(MBC)들은 정권에 빌붙는다고 생각할까봐, 지난 9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안 보시면…. ‘뉴스타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 때 내가 “김장겸은 물러나라”라고 외치자 한 관객이 “당신들은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다가 이제 와서 왜 그러냐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댓글을 쓴 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

-얼마 전 이효성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이 임명되면서 4기 방통위가 구성됐는데. 정부와 국회는 공영방송 정상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지 궁금하다.

신경민_ 방통위 상임위원 다섯명을 구성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다. 하루라도 빨리 해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도 쉽지 않았고. 상임위원회 다섯명을 살펴보면 현실적으로 (대통령 추천 두명, 여당 추천 한명, 야당 추천 한명)4 대 (야당 추천)1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명박근혜’ 정권처럼 불법적인 방법을 쓸 수도 없고, 쓰지 않는다. 언론 개혁과 적폐 청산에 대한 방향이 분명하니 완급 조절이 중요하되, 법과 원칙에 맞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나아가면 된다. 김장겸이 위장 귀순을 할 리 없지만 하게 된다면 위장 귀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생각하고, (위장 귀순을 처리할) 원칙을 정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최근 노종면 기자가 YTN에 복귀한 것처럼 MBC의 수많은 기자와 PD들이 복직할 수 있을까.

신경민_ 첫 번째 단계는 해직자 복직이다. 이용마 기자가 보도국에 다시 걸어들어가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선배로서, 국회의원으로서 꼭 보고싶다. 하나만 더 얘기하고 싶다. 김장겸과 고대영 KBS 사장이 임기 보장을 요구해왔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했고, 앞으로도 얘기할 거다. 좋다, 우리는 법과 원칙대로 할 거다. 임기를 보장하라는 조항이 분명히 있지만 무법자 내지는 악당의 임기까지 보장하라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건 당신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거다. 다만 김장겸이든 고대영이든 자격과 자질이 없다는 게 판명된다면 단 1초도 공영방송에 있어선 안 된다.

-오랜만에 클로징 멘트를 듣는 느낌이다. (웃음)

(모두)_ 하하하.

김민식_ 역시, 신경민 앵커였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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