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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건축] <비포 선셋>의 프롬나드 플랑테와 뉴욕의 하이 라인, 그리고 서울로 7017
윤웅원(건축가) 2017-06-22

건축과 사랑은 닮았어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

최근에 완공된 서울역 공중보행로를 건축유형으로 분류한다면 최근에 생겨난 형식이다. 더 많이 알려진 것은 뉴욕의 ‘하이 라인’(The High Line)이지만, 첫 번째로 완공된 것은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La Promenade Plantee)다. 이 유형이 새로운 이유는 고가철도, 고가도로가 19세기와 20세기에 만들어진 구조물이고, 이 형식의 구조물이 더이상 필요 없어진 것이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철로가 필요 없어지는 이유는 보통 물류의 이동에 이용되는 철도가 도심에 위치할 이유가 적어진 것 때문이고, 고가도로가 철거되는 이유는 자동차를 우선하던 생각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뉴욕의 하이 라인.

공중보행로의 이유 있는 변형들

공중보행로로는 첫 번째로 만들어진 프롬나드 플랑테는, 1969년 파리 시내 바스티유역으로 연결된 고가철도의 운행이 중단된 후, 바스티유역이 오페라하우스로 개발되고 철로는 1993년에 공중공원으로 계획되었다. 파리를 계속 걸어다니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 <비포 선셋>(2004)에는 이 프롬나드 플랑테가 오랜 시간 동안 나온다. 카페를 나온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가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센강에 도착하기 전 이 공중공원을 걸어간다. 새로운 건축유형의 출현 앞에서 조경건축가 자크 베르젤리와 건축가 필리프 마티유의 계획은 지상의 공원 형식을 그대로 공중으로 옮겨놓는 것이었다.

<비포 선셋>을 보면서 제시와 셀린느가 ‘공중공원’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퐁피두센터 같은 파리의 현대건축들과 비교하면 프롬나드 플랑테의 디자인은 매우 보수적인 접근이다. 마치 파리의 오래된 공원 일부분을 파내서 그대로 공중에 옮겨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무들이 많이 식재된 형태이고, 기존의 도로변 키 큰 가로수와 함께 마치 공원 숲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공중정원’이라는 새로운 형식 자체에 더 의미를 두게 되는 첫 번째 주자의 길이 프롬나드 플랑테의 디자인이다.

철도를 이용한 두 번째 공중정원은 뉴욕의 ‘하이 라인’이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의 성공에 고무되어 실행된 이 공중공원은 뉴욕 맨해튼의 서부지역을 지나는 고가철도를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우디 앨런의 <맨하탄>(1979)의 오프닝 장면에서도 잠깐 나오는 이 고가철도는 화물수송을 위해 운행되다 1980년경에 최종적으로 사용이 중단되었다. 1990년대 들어와서, 방치된 고가철도 위 자생적으로 자라난 잡초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도시탐험가’들과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새롭게 공중공원으로서의 가능성이 부각되었다.

하이 라인은 2009년에 1단계가 완공되었다. 조경건축가 제임스 코너는 나무를 최소화하고, 녹슨 철길 위에 자라나는 잡초들의 모습처럼 다양한 풀들을 이용해서 고가철도를 공원화한 것이다. ‘하이 라인’ 디자인의 단순하면서도 놀라운 점은, 풀의 영역과 보행로의 경계를 흐려지게 만드는 바닥 재료의 구축 방식에 있다. 끝이 삼각형의 형태로 줄어드는 모듈화된 바닥재의 사용은 경계부에서 풀들이 보도로 스며들게 만든다. 아마도 철길 자갈들 사이에 자라난 풀들을 형상화했을 것 같은 이 방식은, 모듈화된 바닥재가 공원의 모든 변화를 수용하는 방식, 마치 동일한 크기의 블록 ‘맨해튼 그리드’ 안에서 마천루들이 다양한 높이와 형태로 변화하는 뉴욕의 도시계획을 닮아 있다.

나무 대신 풀들을 사용해 주변 건물들을 향해 시야를 열어주고, 이는 “다리는 강을 건너기 위해 만들지만 그것은 강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하고, 전에는 익명의 존재였던 강 건너 마을을 이웃으로 드러나게도 한다”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과 같이 도시의 높은 곳을 걷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경험을 느끼는 데 최적화되었다.

서울로 7017.

서울역 고가보행길, ‘서울로 7017’은 1970년에 완공된 만리재로와 퇴계로를 연결하는 고가도로를 재활용해서 만든 세 번째 공중공원이다. 숲을 공중으로 옮겨온 ‘프롬나드 플랑테’와 들판을 옮겨온 ‘하이 라인’ 이후에 어떤 디자인이 공중공원에 가능한 것인지는 궁금한 점이었다. 공원을 계획한 네덜란드 건축가 위니 마스는 이 계획에 ‘서울 수목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고가도로 위에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필요한 흙을 제공할 수 있는 원통형 콘크리트 화분을 사용해서 식재되었다. 벤치로도 사용될 수 있는 콘크리트 원통들은 고가도로 위에 섬처럼 흩어져 있다. 처음 계획안의 배치도를 보았을 때 ‘트리시티’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렘쿨하스의 ‘다운스 뷰 파크’(Downsview Park) 디자인을 축소시켜 적용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디자인은 스케일이 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른 디자인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트리시티에서 숲으로서의 원은 서울로에서 화분의 원으로 변화되었다. 숲이 화분으로 바뀌었을 때 각각의 나무는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된다.

서울로의 나무들은 이름의 가나다 순서로 배치되었다. 이 배치는 아마도 서울로의 나무들이 자연에서 정보의 대상으로 변화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스텔라>(2014)같이 무언가 배울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을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자동차 도로로 이루어지는 고가도로 주변의 도시풍경이 충분하지 못했는지, 그도 아니면 주변에서 디자인 요소로 끌고 올 수 있는 게 없었는지 서울로의 나무들은 이름순으로 배치되었다. 조경박람회를 연상하게 하는 이 방식은 어쩌면 우리가 가변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공중보행로라는 ‘같은 형식’에 파리, 뉴욕, 서울은 다르게 반응한다.

<비포 선셋>

특정한 장소를 위해 설계된

건축과 사랑이 닮은 점은 그것이 ‘사이트 스페시픽’(특정한 장소를 위해 설계된)하다는 점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주체가 있지만 그 장소와 그 순간의 산물이다. 시간이 지나고 장소가 달라진 사랑을 보는 것은 낯선 일이다. 같은 사람이어도 다른 사람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와 같이 9년 간격으로 찍은 세개의 ‘비포’ 시리즈 중 <비포 선셋>은 두 번째 영화이다. 6개월 후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비포 선라이즈>(1995)의 제시와 셀린느가 9년이 지난 후 파리에서 다시 만나는 몇 시간을 영화로 만들었다. 빈에서 있었던 셀린느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제시는 파리에서 책 사인회를 갖는다. 설명회가 끝나갈 무렵 제시는 사람들 사이에서 셀린느를 발견한다.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제시와 셀린느는 책방과 카페와 거리, 그리고 공중공원, 유람선을 타고 파리를 걸으며 지난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 대화한다.

흔히 파리의 도시구조를 사각형 그리드 블록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있지만, 파리의 도시 형태는 불규칙한 길과 다양한 형태의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좁고 불규칙한 길들은 자동차보다는 보행을 권장하는 형태다. 제시가 비행기 시간에 쫓기면서도 파리의 거리를 지나서 찾아간 셀린느의 집은 이런 불규칙한 블록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여행자들이 보게 되는 블록 밖 도로 안쪽으로 다양한 형태의 집과 공간들이 존재한다. 이 집들 사이의 중정에서 시작한 파티 초대를 뒤로하고, 제시는 셀린느의 방에 도착한다. 셀린느가 제시를 앞에 두고,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를 그리워하는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를 부르는 인상적인 장면이 끝나면, 니나 시몬의 <Just in Time>이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끝이난다. 그들이 빈의 사랑이 아닌 파리의 사랑을 하게 될지는 <비포 미드나잇>(2013)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쓰다가 니나 시몬의 음악을 자주 듣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익숙한 방식인 유튜브로 그녀의 음악을 틀어놓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음악을 듣는 것일 텐데도 기억 속 니나 시몬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어느 시절 자주 듣던 음악을 지금 이곳에서 듣는 것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시간과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여전히 니나 시몬의 음악이 좋은 것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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