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이민지)의 팔에서 흘러나온 진한 액체가 모텔 욕조를 가득 채운 물속으로 퍼져나간다. 그녀는 의지하던 정호 오빠가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린 뒤 홀로 남았다는 고립감을 이기지 못한다. 의식이 흐릿해질 즈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화려한 차림의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 역시 정호를 찾아 이곳에 온 거다. 소현은 곧 제인의 가출 팸에 합류한다. 얼마 뒤 두 사람은 정호가 있다는 인천 파라오나이트로 간다. 그러나 그곳은 폐쇄된 후다. 근처 모텔에서 하룻밤을 맞게 된 두 사람, 이상한 기척에 잠을 깬 소현은 욕실에서 쓰러진 제인을 발견한다. 제인과 소현의 로드무비가 펼쳐질 것처럼 시작하지만, 영화는 예상과는 다른 길을 간다. 영화에는 제인이 이끄는 모계 팸과 병욱이 이끄는 부계 팸 등 두개의 가출 팸이 등장하는데, 영화는 이를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인을 제외한 첫 번째 팸의 멤버들은 두 번째 팸에도 등장하는데, 이들의 관계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후자가 과거인가? 그러나 후자의 결말에서 전자와 같은 미래는 불가능하다. 둘 중 하나는 환상인가? 그렇다면 제인과 소현의 관계는 어디까지가 실제일까? 영화를 곱씹어볼수록 사고는 교정되고 다른 질문이 생성된다. 환상과 실제의 경계에서 헤맬 때쯤 소현의 말이 떠오른다. 새끼발가락 한쪽을 잃은 소현은 제인에게 가끔 발가락이 있는 것처럼 간지러움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을 영화는 형상화하려는 것 같다.
조현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주인공의 서간체 내레이션을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감독의 전작인 단편 <서울집>(2013)과 연관성을 지닌다. 관객에게 제시된 영상보다 미래의 시점에서 놓인 내레이션은 그 자체로 잡힐 수 없을 것 같은 아스라한 시간의 간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디에도 점할 곳 없는 주인공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도 보인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남녀배우상(구교환, 이민지), CGV아트하우스상, 2016년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기대작이다. 매 순간을 방점으로 만드는 구교환의 얼굴과 영화의 끔찍한 상황을 순화시키는 이민지의 말간 얼굴의 대조가 곧, 영화의 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