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된다. 그 고난의 디아스포라의 역사 속에서 고려인 예술가들은 카자흐스탄에 고려극장을 세우고 이산의 아픔을 노래로 달래기 시작한다.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고려극장의 전설적인 디바들, 그들의 구술과 노래를 통해 이산과 정착, 고려인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해 전하는 음악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고려극장의 초대 디바이자 고려인 최초의 인민배우인 이함덕 선생과 1970, 80년대에 재즈와 러시아 노래, 한국 노래를 두루 구사하며 월드뮤직을 지향했던 방타마라 선생을 중심으로 고려극장의 여성 디바들의 삶을 조명한다.
이들 여성 예술인들이 말하는 그들의 가족 이야기는 그 자체로 역사적 증거이자 기억의 한 조각이 되어 그 현재적 의미를 되묻는다.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오랫동안 트랜스아시아를 연구해온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연출가인 김소영 감독의 망명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고려인 예술가들 중에서도 여성 예술인들의 삶에 주목한다. 고려인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가는 과정에서 예술이, 음악이 그들에게뿐 아니라 고려인들에게 어떤 힘이 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들 여성들 스스로도 굳건하게 제 뿌리와 정체성을 발견하며 노래하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한다. 감독의 연구 주제이기도 한 ‘번역과 횡단’으로서의 트랜스(trans), 발굴, 발견돼야 할 역(易)으로서의 ‘변화’와 ‘전환’의 의미가 이번 영화를 관통한다. 여성 예술인들 그 자체가 생생한 역사의 증인으로서 충분히 흥미로운 인터뷰이들이다. 여기에 김소영 감독의 실험적 이미지가 영화에 특별한 기운을 더한다. 예컨대 블라디보스토크의 부동항에 선 여인의 형상, 이함덕 선생의 묘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질 때 트래킹 숏으로 훑어가는 공동묘지 장면, 잔잔한 호수 위로 디바들이 부르는 노래의 악보가 겹치는 모습 등에서 애상감이 묻어난다. 채록된 디바의 노래,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고려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귀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