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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인터뷰
안현진(LA 통신원) 2017-05-19

“연기를 위해 떠올린 이미지는 상처 입은 황소였다”

2017년 5월 24일,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의 문을 여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영화이며, 대단원을 장식하는 마지막 편이다. 잭 스패로우 선장(조니 뎁)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거친 바다를 무대로 한 격전을 펼쳤다. 이번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예고편에 따르면 잭 스패로우는 오랜 악연인 아르만도 살라자르(하비에르 바르뎀)의 유령과 마주해야 한다. 잭 스패로우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던 시절, 스페인 해군의 함장이었던 살라자르는 해전 중에 죽임을 당하는데, 죽으면서 잭 스패로우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살라자르와 그의 해병들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유령선을 이끌며 바다를 떠돈다. 버뮤다 삼각지대, 포세이돈의 삼지창 등 흥미로운 요소를 소재로 고른 새 영화는, 미국 외 일부 지역에서는 <캐리비안의 해적: 살라자르의 복수>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 그만큼 영화 속 악역 살라자르의 비중이 크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살라자르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을 지난 3월3일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전편들 중 한편의 촬영장에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하비에르 바르뎀의 아내인 페넬로페 크루즈는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2011)에 출연했다.-편집자). 그때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됐나.

=맞다. 4편의 촬영장에 간 적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경험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하와이, 로스앤젤레스, 런던에서 촬영했는데, 그때 제리 브룩하이머가 얼마나 능력 있는 제작자인지 알게 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제작팀을 배려하는 스튜디오의 모습이었다. 배우를 배려하는 만큼 제작팀의 작업에 대해서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배우들에게 허락된 재량도 상상 이상이었다. 그래서 5편의 출연 제안이 들어왔을 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질 거란 걸 알았다. 각본을 읽은 뒤 연기하는 배우도 재미있고, 관객도 재밌을 거란 생각에 제안을 수락했다.

-스페인 배우가 할리우드 해적영화의 각본에서 어떤 점을 재밌어했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 해적이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해적이 바다가 아니라 우주를 배경으로 모험을 펼치는 영화였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나서 해적이 되기보다는 해적선이 되고 싶었다. 왜 배우가 됐는지 모르겠다.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됐어야 하는 게 아닌지. (웃음) 어쨌든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나는 어렸을 적에 내가 충분히 놀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연기를 하기보다는 해적이 되어 놀고 싶었던 내 안의 어린아이를 꺼내 마음껏 뛰놀게 했다.

-조니 뎁은 자신의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서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했다고 했다. 당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맞다. 내 아이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촬영할 때만 촬영장에 올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내 캐릭터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촬영장에 왔을 때는 아빠가 거대한 배의 함장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은 뒤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분장도 아이들이 보기에는 징그러울 것 같았다. 하루는 큰아이를 촬영장에 일부러 데려갔다. 혹시 밖에서 분장한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아빠가 진짜 죽은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그랬다.

하비에르 바르뎀.

-함선 위에 서 있는 당신에게 ‘액션’ 사인이 떨어지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던가.

=물론이다. 내 안의 항해사가 깨어나는 걸 느꼈다. 이런 거대한 사이즈의 영화에 출연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돈을 벌 수 있어서고, 다른 하나는 ‘액션’사인을 받았을 때 실제 크기로 축조된 거대한 함선 위에 선 내 모습 때문이다. 내 주위에 200명의 보조출연자가 칼싸움을 하고 있는 걸 보며 나는 진짜 살라자르가 됐다고 느낀다. 거기에 즐거움이 있다. 아이 같은 즐거움이다. 그래서 감독이 “컷”이라고 외치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랐다.

-분장하는 과정은 어땠나.

=한번 분장할 때마다 3시간 정도 걸렸다. 이 영화의 분장팀은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굉장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잠이 깨지 않은 내 얼굴에 “닭가슴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아, 진짜 닭가슴살은 아니다, 내가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다.

-처음 분장을 마치고 거울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분노를 봤다. 바로 내가 원하던 거였다. 캐릭터를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컨셉을 제안했다. 분노를 표현하려는 건 내 아이디어였다. 자랑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또 협동적이었는지 말하고 싶다. 그 과정에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조니 뎁의 캡틴 잭 스패로우 캐릭터가 롤링 스톤스의 뮤지션 키스 리처드를 참고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당신이 연기한 살라자르는 어떤 인물을 참고했나.

=특별히 참고한 인물은 없다. 연기를 위해 떠올린 이미지는 상처 입은 황소였다. 황소는 굴복하느니 죽음을 선택하는 동물이다. 나는 투우를 지지하진 않는다. 어른이 된 뒤에 절대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투우의 굉장한 팬이었고, 할아버지는 투우를 하기 위해 황소를 기르는 일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뭔지 잘 알았고, 죽음 앞의 황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연기했다.

-살라자르는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바다를 떠돈다. 죽으면서 복수를 맹세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개인적으로 복수를 원한 적이 있나.

=물론이다. 20살 때 누군가가 내 코를 주먹으로 쳤다(하비에르 바르뎀의 코는 양쪽의 모양이 확연하게 다르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코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그를 이전에도 알지 못했지만 맞은 뒤에도 누구인지 몰랐다. 이유 없는 폭력이었기에 더욱 끔찍했다. 그 뒤 2년간 그를 찾아다녔다. 적극적인 추적은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언젠가 그를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그를 만났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분노가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냥 그를 보냈다.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과거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움직일 수 없게 했다. 나는 그동안 분노가 나를 얼마나 짓누르고 있었는지 알았고, 또한 내가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날 그를 그냥 보낸 일에 대해 신께 감사한다. 만약 내가 어떤 행동을 했다면 나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결과로 남지 않았을 거다. 복수는 나를 더한 지옥으로 데리고 갔을 거다.

-오랫동안 연기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가 많았을 거다. 촬영이 끝난 뒤까지 남아 있는 기술은 무엇인가? 그리고 다시는 활용하고 싶지 않은 기술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전신마비자를 연기한 <씨 인사이드>(2004)에서 입으로 글씨를 쓰는 걸 배웠다. 두달 동안 침대에 누워 연습했다. <씨 인사이드>의 진짜 주인공은 그렇게 해서 30년 동안 책을 썼다. 나는 편지 봉투에 이름을 쓰는 정도로 끝마쳤다. 그것만으로도 책을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동시에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능력을 지닌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인간이란 정말이지 놀라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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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