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부르카 아래서 커다란 눈이 반짝였다. “이란은 분명 전통적이고 봉건적 잔재가 강하지만, 여느 다른 나라처럼 이를 극복하려는 근대적인 노력과 행동 또한 있는 곳이다. 영화 <숨겨진 반쪽>의 제목은 사회와 역사 속에 숨어있는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자, 전세계 사람들에게 그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로만 알려져 있는 이란의 숨겨진 진실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서울여성영화제(www.wffis.or.kr)에 특별전이 열리는 이란의 타흐미네 밀라니 감독을 지난 6일 기자회견과 8일 국제포럼장에서 만났다. 지난해 <숨겨진…> 개봉 이후 반이슬람혁명죄 등으로 구속됐던 그는 전세계 영화인의 석방운동과 하타미 이란 대통령의 중재로 일시적으로 풀려나 있는 상태다. “24년전 이란에서 (호메이니)혁명이 일어난 뒤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이 3~4년씩 폐쇄될 당시 나는 18살의 건축학도 1년생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죽거나 퇴학 당하는 모습을 보며 왜 순수한 우리 세대가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내내 의문에 시달렸다.” 남편에게 자신의 공산주의 활동과 첫사람의 이야기를 못했던 <숨겨진…>의 주인공 페레시테처럼, 밀라니도 89년 데뷔이래 이런 의문을 가슴에 묻은 채 아동물이나 에스에프물 등을 찍으며 살아왔다. 그런 밀라니의 작품은 이란 개혁파의 상징인 하타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인 99년 <두 여인>부터 급격히 바뀐다. 재능있는 여대생 페레시테가 가족과 사회의 구속으로 좌절된 삶을 살아간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감독은 처음으로 “암울했던” 70년대말 이란의 문화혁명을 언급했다. <숨겨진…>은 이란에서 최초로 이 시기를 다룬 영화로 기록된다. “우파는 이슬람 혁명을 비난했다고, 좌파는 자신들을 교조적인 모습으로 그렸다고 비판했다. 허나 이 작품은 반체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묻혀지고 왜곡됐던 우리 세대, 나라를 사랑하고 호기심 넘치던 그 빛나던 이들의 모습을 되찾고자 한 것이었다. 나는 이 침묵을 깨뜨린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탄식의 전설>에서 여러 계층의 이란 여성들의 삶을 따뜻하게 보여줬던 그는 여성의 문제도 점차 정치적 맥락에서 파악하게 된다. “이슬람 자체가 비난의 대상일 순 없다. 남성들에 의해 해석돼 `이슬람'이라는 이름이 붙은 법이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앞으로 찍을 7번째 영화 <다섯번째 반응>에서는 이런 투쟁과정을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의 곁에는 제작자이자 <숨겨진…>의 남자주인공 역을 맡았던 남편 모하마드 닉빈이 있었다. 평소 건축회사를 운영하며 이 수입으로 영화를 찍어나가는 이들은, 부부이자 영화로 투쟁해나가는 동지였다. <숨겨진…>과 <탄식의…>는 남은 영화제 기간(12일까지)에도 감상할 수 있다. 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