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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살기로 했어 <밤의 해변에서 혼자>
장영엽 2017-03-22

영화의 제목을 듣고 즉각적으로 상상해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김민희가 연기하는 주인공 영희가 밤의 해변을 홀로 걷는 장면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밤의 바닷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오후의 한때, 독일 함부르크와 강릉의 해변을 홀로 걷는 한 여인이 있을 뿐인데, 기묘하게도 이 여인이 주는 인상이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제목과 잘 어우러진다. 그녀는 쓸쓸하면서도 의연하고, 망설이는 듯하면서도 대담하다. 그렇게 밤의 정취를 닮은 여성, 영희가 열아홉 번째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유부남 감독(문성근)과 사랑하다가 이별한 여배우 영희가 외국 어느 도시와 한국 강릉에 머물며 지인들을 만난다는 것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독일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1부에서(촬영한 도시는 함부르크다) 영희는 친분이 있는 언니 지영(서영화)과 독일의 이곳저곳을 거닌다. 영희와 지영의 대화를 통해 지난 사랑에 대한 영희의 마음과 새로운 다짐이 밝혀진다. 2부는 한국 강릉에서 진행된다. 영희는 강릉의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선배 천우(권해효)와 명수(정재영), 준희(송선미)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그들이 떠난 해변가를 거닐다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영화를 찍는 조감독 승희(안재홍)를 만나기도 한다. 그는 영희에게 그녀와 이별한 감독이 영화를 찍기 위해 강릉에 머물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다짐해보고 싶었어.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나답게 사는 거야. 흔들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살기로 했어.” 1부에서 영희는 지영에게 이렇게 말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이처럼 수많은 다짐의 언어로 가득하다. 홍상수의 영화 중 이토록 선언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한 작품이 있었던가 싶다. 이 결연한 표현들이 겹겹이 쌓였을 때 생성되는 희망의 정서가 이 영화엔 있다. 삶의 질곡을 통과하는 여성의 초상을 연기하는 김민희는 존재만으로도 영화의 리듬감을 완성해내는 존재다. 홍상수의 영화세계에는 이제 우연이라는 변수와 김민희라는 상수가 존재하는 것 같다. 스캔들을 둘러싼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가장 긴밀한 영화적 동지로 협업 중인 감독과 여배우의 현재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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