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버린이 아니라 로건이다. 울버린의 대미를 장식하는 <로건>은 돌연변이로서의 강인한 울버린이 아니라 쇠약해진 로건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뇌에 집중한다. 2029년 알 수 없는 이유로 돌연변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미래, 더이상 엑스맨은 없다. 갈수록 재생력이 약해져 늙고 수척해진 로건(휴 잭맨)은 멕시코 국경지대 은신처에 찰스 교수(패트릭 스튜어트)를 보호 중이다.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찰스 교수는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 간헐적으로 주변을 위협하는 발작까지 일으킨다. 찰스 교수와 함께 떠날 배를 사기 위해 리무진 기사로 일하며 돈을 모으는 로건. 어느 날 낯선 여인이 찾아와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를 캐나다 국경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로건은 로라를 쫓는 기업의 사설경호집단을 피해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는 쓸쓸한 피로감이다. 다리를 질질 끌며 등장하는 울버린은 노쇠한 짐승처럼 보인다. 동시에 이제껏 선보인 울버린 중에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기억조차 오락가락하는 찰스 교수가 버거울 만도 한데 악착같이 찰스 교수를 돌보는 모습은 애틋하기까지 하다. <3:10 투 유마>(2008)를 연출했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서부극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영화 속에 빈번히 인용되는 <셰인>(1953)은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 같은 수정주의 서부극의 정수를 녹여 과감히 히어로영화의 틀 위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늙고 쇠락한 영웅이 소중한 존재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뭉클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모든 히어로물, 아니 숱한 ‘울버린들’이 지나간 자리에 로건을 영원히 잠들게 함으로써 진정한 영웅으로 부활시킨 셈이다. 특히 울버린의 액션은 이제껏 나온 영화 중 가장 수위가 높고 자극적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돌아온 울버린은 살포시 찌르기만 하던 과거 몸놀림에서 벗어나 선혈이 낭자한 하드고어 액션을 자랑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액션 장면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 편이라 찰스 교수, 로건 등 멋진 캐릭터의 변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호흡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보다 멋진 작별이 있을까 싶을 만큼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