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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고맙고 애틋하고 따뜻하다. <아주 긴 변명>
송경원 2017-02-15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무명 시절 자신을 먹여살린 아내에 대한 묘한 열등감과 부채의식 탓에 진즉에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선 아내의 죽음을 토대로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지만 진척은 없다. 한편 함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아내의 친구에게도 가족이 있다. 아내 친구의 남편인 요이치(다케하라 피스톨)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버겁다. 요이치의 가족에게 호감을 느낀 사치오는 시간이 날 때 아이들을 돌봐주며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기쁨을 느낀다. 그런 후에야 자신의 무심함에 상처 입었을 아내 나츠코(후카쓰 에리)의 아픔을 조금씩 깨닫는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직접 쓴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아주 긴 변명>은 섬세한 감성과 차분한 시선으로 마음을 나누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본다. 변명이 길어지는 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며 쏟아낸 이기적인 말들은 가시가 되어 타인을 후빈다. 그런 사치오가 요이치의 가족을 돌보며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기쁨을 깨달은 후에 아내의 빈자리를 새삼 깨닫는다. 제대로 된 변명은 그제야 가능하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감독의 설명처럼 영화는 상실의 두께를 확인하는 과정을 담담히 전한다. 여기 두 종류의 결핍이 있다. 첫째는 스스로 자각하는 결핍이다. 재능을 갈망하는 사치오처럼 스스로 모자람을 느끼면 누구나 빈자리를 메우려 애쓴다. 두 번째는 잃고 나서야 깨닫는 빈자리의 무게다. 나를 필요로 하는 타인의 존재는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일상에 가려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내가 필요한 것만큼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존재는 중요하다. 영화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타인이 되는 과정을 되짚어간다. 아내 나츠코가 남기고 간 “뒷정리는 부탁할게”란 대사처럼 지나고 보면 가슴 쓰린 순간들이 곳곳에 배어 있다. 배우들의 모자람 없는 연기에 더해 조급함 없이 인물을 기다릴 줄 아는 담담한 태도가 깊이를 더한다. 슬프고 고맙고 애틋하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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