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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트 그리고 재개봉 를 이해하는 11개의 키워드 (1)
2002-04-06

“이 영화를 퇴짜놨다고? 미쳤군!”

처음 그의 자전거가 우리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20년 전, 외화가 느지막이 수입되던 시절의 한국 관객에게는 꼭 18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동안 10살 소년 엘리엇은 서른의 청년이 됐고, 흥행성 약하다는 이유로 콜럼비아 영화사로부터 <E.T.> 기획을 퇴짜맞았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공동대표가 됐다. 20년이 지나고 재회한 영화 <E.T.>는 예전 그대로이면서 또한 다르다. 요즘 10대 관객의 입맛에도 달라붙는 일급 오락영화라는 점에서 <E.T.>는 여전하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가 완결되는 모멘트가 셀룰로이드 표면이 아닌 관객의 지각 속에 있다는 믿음을 가진 관객에게 <E.T.>는 예전엔 들리지 않던 감정의 박동을 전해온다. 하늘을 나는 희열과 이별에 눈물 흘렸던 소년·소녀들은 이제, 상실감의 그늘이 드리운 가정의 어린 남매 사이에 피어나는 묘한 긴장과 위로, 엄마의 외로움을 읽어낼 것이다. 정확한 연출 리듬에 감탄하고, 엘리엇과 E.T.에게서 분열된 <A.I.>의 데이빗을 보는 여유도 부릴 것이다. 2002년 성년이 되어 돌아온 <E.T.>에 대해 품어봄직한 호기심들을 11개의 색인 아래 모았다. 그리고 유년의 어느 날 근접 조우한 E.T.로 말미암아, 영화의 우주로 눈을 돌린 민동현 감독의 추억담도 싣는다.

★ 재개봉 솔트레이크에서 처음으로 티켓이 팔리기까지

<E.T.> 재개봉에 관한 소문이 처음 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1년 7월이었다. 캐나다 뉴스 사이트 Canoe.ca는 이 영화의 프로듀서 캐슬린 케네디가 20주년 기념 재개봉에 관해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케네디는 1985년 <E.T.>의 후일담을 다룬 동화책 <녹색별의 <E.T.>가 나오기는 했지만 속편은 결코 없을 것이며, 대신 스필버그는 관객을 위한 무언가를 준비중이라고 암시했다. 2001년 가을부터 <E.T.> DVD에 관한 소문이 나돌고 새삼스럽게 <E.T.> 장난감들이 다시 나오면서 이 소문은 점점 믿을 만한 것이 돼갔다. 마침내 2001년 10월20일 <E.T.> 스페셜 에디션 포스터가 공개됐고, 며칠 뒤에는 비공식 예고편까지 인터넷에 등장했다. 2001년 11월이 되자 스필버그는 재개봉에 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E.T.> 티켓이 최초로 판매된 곳은 동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던 솔트레이크 시티였다. “세계가 하나 되는 올림픽이 이 영화를 첫 상영하기에 가장 적당한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2002년 2월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첫 상영을 가진 뒤, <E.T.> 재개봉 준비에는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할리우드 닷컴> 등은 앞 다투어 과거 <E.T.>의 주인공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취재하기 시작했고 NBC는 <E.T.>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며 허쉬는 20년 전 E.T.가 먹던 캔디를 다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개봉한 첫주 박스오피스 3위에 그쳤지만, “나는 엘리엇 같은 소년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 스필버그에게 이 이벤트는 자신의 개인적인 꿈을 보다 완벽한 형태로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 있다·없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0년 만에 귀환한 <E.T.>를 보러 갈 만한 이유가 무엇이건, 추가된 인물이나 플롯을 보는 재미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스필버그는 하다못해 선생님 뒤통수로 출연했던 해리슨 포드의 앞모습을 슬쩍 끼워넣는 애교조차 부리지 않았다. 약 140개 숏을 손질하고 디지털 테크놀러지로 ‘리마스터링’한 신판 <E.T.>는 1990년대 후반 조지 루카스가 내놓은 <스타워즈> 3부작의 스페셜 에디션에 비해 아주 경미한 ‘성형수술’을 거쳤다. 1982년에 볼 수 없던 장면은 두 시퀀스. 엘리엇과 E.T.가 욕실에서 벌이는 해프닝, 그리고 마이클과 거티가 할로윈 날 E.T.를 찾아다니는 장면이다. 클래식 반열에 오른 <E.T.>도 9·11 테러의 여진은 피하지 못했다. 할로윈 가장을 한 아들에게 엄마가 던지는 “너, 테러리스트로 분장하진 않겠지?”라는 대사가 “너, 히피로 분장하진 않겠지?”로 바뀐 것. 이 밖에 20주년판에 생긴 변화는 ‘수정’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본디 모형을 써서 찍었던, 자전거를 타고 날아가는 달 배경의 실루엣이 사람을 써서 재촬영됐고 구름의 흐름, 하늘을 날 때 바람을 받아 흔들리는 옷자락의 표현과 같은 세부가 기술의 발전으로 명확해졌다. 쥘 베르느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된 우주선의 디테일도 다소 현대화됐다. 스필버그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E.T.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로 접근했다. 미세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은 보완됐으나, 열두개의 케이블로 조종되는 인형과 신장 60센티미터 내외의 인간이 모델 안에 들어가 만들어낸 E.T.의 어수룩한 움직임은 그대로다. 어떤 CG의 마술보다 그것이 E.T.의 캐릭터에 걸맞기 때문. 그렇다면 새로운 <E.T.>에서 사라진 것은? 바로 E.T.를 데리고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는 요원들이 들고 있던 총기다. 무장하지 않은 아이들을 추격하면서 어른들이 총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손톱 밑의 가시처럼 불편하게 여겼던 스필버그는 이번 기회에 총들을 CG기술을 이용해 아예 지우거나 무전기로 대체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 올림픽과 모토를 공유하는 블록버스터가 보편화된 요즘에 와서 다시 보는 <E.T.>는 특수효과를 매우 검소하고 겸손한 스타일로 구사한 SF영화이며 산문적인 일상의 실감에 굳게 발 디디고 있는 판타지다. 숭배하는 영화에 더해진 가필을 참지 못하는 순수주의자들을 배려해, <E.T.>의 DVD는 1982년판과 2002년판이 모두 출시된다.

★ 세 남매 ET의 지구인 친구들은 지금

<E.T.>를 찍을 때 일곱살이었던 드류 배리모어는 함께 출연한 두 남자아이가 정말 자기 오빠들인 줄 알았다. 당시 영화치고는 보기 드문 결손가정이었지만, 스필버그가 바라던 대로 “서로의 문제를 이해하며, 깨져버린 가정을 지키고자 손을 잡았던” 세 아이는 그런 착각이 이해될 정도로 서로 닮았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더이상 남매가 아니다.

그들 중 가장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은 열네살의 장남 마이클을 연기한 로버트 맥노튼이다. 그는 <E.T.>에 출연한 뒤 몇편의 TV영화와 극영화 <아이 엠 치즈> 등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87년 이후에는 출연한 작품이 없다. 완전히 연기를 포기한 그는 피닉스로 이사해 우편물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배우로서 미련을 버린 그는 가끔 네살짜리 아들과 함께 <E.T.>를 보는데 그때마다 아들은 “아빠가 아이인 척하고 나오는 영화”라고 말한다.

엘리엇 역의 헨리 토마스는, 비록 예전의 그 소년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꾸준히 영화에 출연해왔다. 애증으로 얽힌 형제 중 섬세하고 연약한 막내를 연기했던 <가을의 전설>이 가장 눈에 띄는 영화. 작지만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동자에 아직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그는 올해 여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출연한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집을 나간 아빠가 멕시코에 간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꼬마 거티의 현재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십대가 되기 전에 이미 알코올과 마약에 빠져 세월을 탕진했던 드류 배리모어는 뒤늦게 개심, <미녀 삼총사> 등에 출연한 배우이자 제작자로 어린 시절을 보상받고 있다.

이 세 아이에겐 누구도 진짜 얼굴을 알지 못하는 형제 하나가 더 있었다. E.T.를 연기한 난쟁이 배우 팻 빌런이 그다. E.T.는 다리 없는 장애인과 두명의 난쟁이가 번갈아 인형 속에 들어가 연기했는데, 빌런은 그중에서도 메인 배우에 해당했다. 그는 촬영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지만, 맥노튼은 주말마다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 놀곤 했던 그가 “진정 인생을 즐겼다”고 기억한다.

★ 1982년, 미국 언론 “<미지와의 조우> 비공식 속편격인 작은 영화”

<E.T.>는 1982년 6월11일 미국 극장가에 착륙했다. 일단 <E.T.>는 <조스> <미지와의 조우> <레이더스>로 연타석 만루홈런을 날린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이라는 프로필만으로도 안 보면 큰일나는 구경거리(must-see phenomenon)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의 실체가 불러온 파장은 예상된 ‘이벤트’ 이상이었다.

<E.T.>가 영화사의 슈퍼스타로 등재된 지 오래된 지금으로서는 생경하지만 개봉 당시 리뷰들은 공통적으로 <E.T.>가 모험담과 특수효과가 만발한 대작을 즐기던 스필버그가 정서에 호소한 ‘작은’ 영화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미지와의 조우>에 대한 비공식적 속편이라고 묘사했다. <박스오피스 매거진>은 <E.T.>를 예술품이라기보다 선물 같은 영화이며 특히 극장주들에게 큰 선물이라고 썼다. 로저 에버트는 호평에 덧붙여 그해 칸 영화제에서 <E.T.>의 자전거가 날아오르는 장면이 냉정한 저널리스트조차 숨죽이게 했던 일을 회상했다. <버라이어티>는 “디즈니가 만들지 않은 최고의 디즈니영화”라는 표현으로 가족오락물로서의 가치를 강조했다. 평자들의 호평이 집중된 대목은 엘리엇 역 헨리 토마스의 연기와 E.T.를 창조한 상상력. <E.T.>는 1982년 LA비평가협회 작품상과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고 오스카 시상식에서 오리지널 스코어, 음향, 음향효과 편집, 시각효과 4개 부문 트로피를 안았다. 그해 작품상은 리처드 아텐보로의 <간디>에 돌아갔다.

★ 1984년, 한국 극장 “에라! 맥주나 한잔!”

1984년 8월3일자 조선일보는 한 칼럼에 <E.T.>를 ‘구경하러’ 몰려든 가족들의 사진을 실었다. 당시 <E.T.>는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였고, 정부요원들이 E.T.를 조사하는 장면처럼 “동양의 조그만 나라 관객들은 미국의 그 거대한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하이테크놀러지의 영화였다. 광고 역시 이 영화가 얼마나 볼 만한지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마닐라의 어느 거지는 동냥을 해서 기어코 이 영화를 두번씩이나 보았다”, “마이클 잭슨은 왜 이 영화를 36번이나 보았을까?”, “단숨에 전국 40만 관객이 눈시울을 적셨다!” 등이 <E.T.>의 카피. ‘연소자 관람가’였던 <E.T.>에는 연소자 관람불가에 해당할 만한 광고문안도 하나 있었으니, “고향별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에라! 맥주나 한잔!”이었다.▶ 빅히트 그리고 재개봉 <E.T.>를 이해하는 11개의 키워드 (1)

▶ 빅히트 그리고 재개봉 <E.T.>를 이해하는 11개의 키워드 (2)

▶ 민동현 감독의 첫사랑에 바치는 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