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오스카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공로상을 수상한 스탠리 도넌 감독이 <사랑은 비를 타고>의 한 대목을 재연, 노래와 탭댄스를 펼쳐보인 무대였다. 거장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마련한 자리?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은 비를 타고>가 52년 당시 오스카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등 주요 부문 후보로도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오스카 주최쪽은 그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늦게나마 사과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영화야, 미안해. 내 늦은 사과를 받아줘”라고.
어떤 깊은 뜻이 있었든, 취향과 노선의 문제였든,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얻고도 오스카에서 외면당한 비운의 영화(인) 리스트도 영화제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앨프리드 히치콕은 <레베카> <이창> <싸이코> 등으로 5차례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나, 늘 후보에 그치는 등 오스카와 최악의 궁합을 보여온 영화인 중 하나. 오스카는 늘 들러리로 만족해야 했던 히치콕 감독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 지난 68년 주로 제작자에게 수여하는 공로상인 어빙 탈버그상을 안기기도 했다.
후보 지명 횟수로 보면, 로버트 앨트먼도 히치콕만큼이나 불운하다. 알트만은 <매쉬>부터 올해의 <고스포드 파크>까지 감독상 후보에 5회 올랐지만,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등으로 4번이나 감독상 후보에만 지명된 스탠리 큐브릭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배를 마신 리들리 스콧은 마틴 스코시즈, 데이비드 린치와 더불어 이제까지 3차례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오스카와 사이가 안 좋은 영화인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가 스파이크 리. 그와 오스카의 인연은 <똑바로 살아라>로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이 전부다.
오스카는 배우들의 커리어에도 명암을 남겼다. <오즈의 마법사>로 스타덤에 올랐던 주디 갤런드는 줄곧 오스카로부터 외면을 당했고, 그 쇼크로 끝내 재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렌 클로스 역시 오스카와 친하지 않은 배우. <위험한 정사>를 비롯해 모두 5차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오스카가 역대로 무시해온 영역인 코미디 장르에서 스타덤을 굳힌 짐 캐리는 <트루먼 쇼> <맨 온 더 문> 등에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음에도 불구하고 주연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톰 크루즈는 세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아직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경우. 모건 프리먼, 새뮤얼 잭슨, 에드 해리스, 하비 카이틀, 게리 올드먼, 제니퍼 제이슨 리 등은 역할 이미지의 반골 기질 때문에 오스카의 호감을 얻지 못한 배우들.
서부영화와 코미디 등 특정 장르에 대한 비호감의 이력도 읽을 수 있다. 존 포드의 <수색자>가 오스카에서 미끄러진 것이나,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가 외면을 당한 것은 그런 이유. 프리츠 랑의 <매트로폴리스>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난>은 오스카의 자국영화 중심적인 선택에서 피해를 본 경우. 가장 많은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지만, 단 한 부문에서도 수상하지 못한 비운의 작품들도 있다. 허버트 로스 감독의 77년작 <터닝 포인트>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85년작 <칼라 퍼플>은 각각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나, 단 한 부문에서도 수상하지 못했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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