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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현실이 된 영화 <더 킹>이 그려내는 대한민국의 비극
이화정 2017-02-01

현실이 이미 블랙코미디인 마당에 영화의 현실반영, 상징, 풍자, 해학은 무력해진다. <더 킹>은 이 거짓말 같은 시국에 등장해서 진짜가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영화다.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좌지우지했던 그 추악한 집권자들, 악의 ‘얼굴’을 향한 접근이자 도전장이다. 이 시국에 거론되는 어느 누구를 택해도 영화가 될 것 같은, 현실이 웬만한 시나리오의 내러티브를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믿기지 않는 시국에, <더 킹>이 정면 도전장을 던졌다.

2017년 1월19일 목요일. 박근혜 탄핵이 가결되고 40여일이 지났다. 눈뜨자 이 지옥 같은 정국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소식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뉴스다. 돈과 권력에 손을 들어준 판사는 조의연 부장판사다. 지난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구속 역시 기각시킨 전력이 있다. 지난해 인천공항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봤다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값비싼 슈트를 걸치고 흔히 말하는 귀공자 스타일의 페이스. 삼성공화국의 후계자라는 후광을 입은 그가 인파에 둘러싸여 있던 그 광경은, 말로만 들어도 그림으로 그려졌다. 오늘 ‘이 얼굴을 기억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SNS에 포스팅된 조의연 부장판사의 반듯한 얼굴을 함께 겹쳐본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 그리고 그 앞에 기생하는 자들. 악이라 명명되는 그 추상적 단어들은 지금까지 ‘추악함’으로 그려졌다. 민머리와 두둑한 눈두덩, 교활한 눈빛, 두터운 뱃살이 그들을 설명할 손쉬운 요소였다. 하지만 현실의 악은, 국민을 우롱하고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누리는 자들의 얼굴은 이제 변했다. 그들은 한마디로 ‘잘생겼다’. 고가의 옷을 입고, 값비싼 음식을 먹고, 좋은 작품들을 접하는 이들은 자본주의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고귀한 존재다. 시장에 가서 평소 먹지도 않던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말아먹고, 턱받이를 한 채 사회복지시설의 노인에게 죽을 떠먹여주는 ‘이미지 메이킹’은 지난 시대의 전략이 되었다(이런 단언이 과연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유권자에게 역효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저지른 파행에 분노하는 만큼이나 우리는 그들이 검찰에 출두하는 날 신고 있는, 신을 수 있는 명품 슈즈와 패딩 브랜드가 궁금하다. 죄는 벌하되 우린 그들처럼 그 명품을 소비하고 싶다. 차은택이 검찰에 출두할 때 함께 뉴스를 보던 후배의 질문이 떠오른다. “선배가 꽤 잘나가던 감독이나 기자나 교수라고 쳐요. 어느 정도 명망이 있단 말이죠. 어느 날 그런 권한을 준다는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거절할 수 있을까요.”

가랑비에 옷 젖듯 악은 그렇게 사람의 영혼을 오염시킨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쫓아갈 욕망이 눈앞에 있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그 누구의 지시 없이도 그 앞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잘생긴 검사 태수(조인성)는 자신보다 더 잘생긴 검사 한강식(정우성)을 워너비로 삼고 욕망하고 정점을 향해 오른다. 한재림 감독의 <더 킹>은 80년대 전두환 정권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의 집권 아래 호위호식했던 상위 1%의 어느 검사들 이야기다. 라인만 잘 탄다면 ‘대기업 로펌, 연봉 20억~30억원에, 차량, 골프 회원권’쯤 죽을 때까지 누리는 건 일도 아닌, 대한민국 현대사의 수혜자들. 그들은 ‘타깃을 잡고, 기획하여 첩보를 모으고, 그리고 가서 박살내는’ 일을 하며 정재계, 언론 모두 이 플랜 앞에서 작당하고 야합하고 동조하며 떡고물을 챙긴다. 목적을 위해서 굿판을 벌이고, 조폭을 동원하는 뻔뻔함도 그들의 실체다. 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입헌군주제의 ‘왕’과 같은 권력을 누리는 자들. 대통령의 당락과 탄핵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 내 가상의 공간 ‘전략 1부’, 그리고 그 속에 기생하는 태수라는 가상의 인물을 한국 현대사의 실존 인물처럼 그려낸다.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로 사시 합격, 검사의 자리에 올라 권력의 핵심인 한강식 라인을 탄 태수. 그들은 자신들이 아닌 국민의 편에 선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두고, ‘검찰개혁’을 부르짖던, ‘대학도 안 나온 상고 출신의’, ‘대한민국이 (우리가) 어떻게 세운 나란데, 그런 조무래기 새끼가!’라고 주인처럼 말할 수 있는 집단이다. 태수가 돌아보는 이 세계는 졸렬하고 저열하고 우스운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작당 속에,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 비쳐 더없이 씁쓸하고 허탈하다.

일어나지 않은 승리의 서사

정재계, 조폭, 언론이 복잡하게 얽혀 서로의 이익에 봉사하는 한국 현대사, 권력층의 추악한 모습을 담아낸 <더 킹>은 일견 진부하게 비칠 만큼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가진 전형적인 내러티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 면에서 확연히 달라졌다는 데 주목하게 된다. 영화에서 권력 내부로 진입해 권력의 쾌락을 맛보고 결국 각성을 하는 자는 검사 태수다. 그간 한국영화에서 정의를 실현할 역할을 형사가 대변해왔다면, 최근 들어 부쩍 권력 가까이 있는 검사가 영화적 정의를 대변할 인물로 묘사된다. 살인 혐의로 체포된 <검사외전>(2016)의 다혈질 검사 변재욱(황정민)은 권력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대처할 ‘내부자’다. 그는 사기꾼 치원(강동원)을 이용해 반격에 나선다. ‘이기는 게 곧 정의지’라는 개념으로 돈 되는 변호에 매달리던 <성난 변호사>(2015)의 변호사 변호성(이선균)이 여대생 살인사건 배후의 부와 권력의 실체에 대항하는 서사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베테랑>(2015)에서 정의감 하나로 직진하는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명동 한복판에서 안하무인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곤죽이 되도록 패주는 직접적이고 통쾌한 쾌감이다. 하지만 ‘사건’ 하나가 조명되고, 이를 뒤짚을 통쾌한 반전은 얼마든 가능하지만 유의할 지점은 우리가 열광하는 이 단죄는 어디까지나 일어나지 않은 영화적 결말과 해소라는 점에 있다. 당장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이 준 허탈감과 박근혜 정권의 실체, 그리고 저 멀리 박정희 정권부터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영향권 아래 안간힘을 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단죄도 해결도 아직은 섣부른 단어처럼 보인다. 막장으로 치닫는 현실의 서사에 우리가 기대해볼 법한 영화적 ‘정의로움’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더 킹>이 허하지 않는 건 그리하여 비자금 조성을 통해 권력층의 내부를 해부하고 있는 <내부자들>의 족보 없는 검사 우장훈(조승우)이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와 모의하여 대한민국 여론을 움직이는 유력 일간지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와 재벌을 단죄하는 승리의 서사다. 단 한번도 승리의 서사를 가져보지 못한, 그래서 오늘도 다가오는 토요일 광화문광장에 나갈 촛불을 챙겨야 하는 현실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영화적 쾌감을 맛보는 것조차 이제 사치가 되었다.

현대사의 비극과 악이 여기 있다

한재림 감독은 그 수렁에서 발을 뺀 검사 태수에게 영화 전체의 내레이션을 맡김으로써 그 자신이 가담했던 죄, 오염된 한국 현대사를 반추할 기회를 준다. 거부로 군림하다가 술과 마약, 여자에 빠져 나락에 떨어진 마틴 스코시즈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의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그는 철저하게 성공하고 처절하게 망가진다. 그렇게 폐인이 된 그의 시각에서 영화가 바라보는 이 사회를 향한 비극성은 한층 짙어진다. 그는 <더 킹>의 사태가 “태수가 저지른 죄악이라기보다 대한민국의 비극이라고 봤다”고 말한다. 별 볼일 없는 태수가 검사가 되고, 권력의 자리에 서고, 고꾸라지기까지 한 악당의 서사에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사건과 역대 대통령의 실제 자료화면으로 채워넣는다. 영화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실제 자료화면이 주는 효과와 노림수는 명백하다. 태수와 전략 1부는 허구지만 한국 상업영화 중 가장 많은 실제 뉴스화면을 사용했을 법한 <더 킹>은 전략 1부의 모의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우리가 거쳐온 현대사에 유기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 비극성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과 서거, 노제에 이르는 ‘비극’의 화면 앞에서 결국 감정적 동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저도 검사 출신이긴 하지만 이런 검찰, 썩어빠진 검찰 때문에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와 있는 겁니다.” 우병우 국정농단 국정조사 5차 청문회.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해 던진 일갈이다. 서울대 법학과 졸업, 검사 출신 우병우는 김경진 의원의 검사 선배. 같은 검찰이지만 그들의 삶의 궤적이 어떻게 달랐고, 달라질지 복잡한 생각이 오간다. 질문한 기자에게 따가운 레이저를 발사하고, 조사받으러 간 자리에서 검찰의 고개를 조아리게 하는 자. ‘아니요’와 ‘모릅니다’라는 말 하나로 어지럽혀진 국정의 한가운데서 유유하게 빠져나갈 태세를 하는 우병우의 얼굴은 잊기 힘든 현대사의 ‘악’의 이미지가 되었다. <관상>(2013)을 통해 권력가의 얼굴을 해부한 한재림 감독은 이제 보다 더 직접적인 메스로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의 실체, 그 얼굴에 다가선다.

<더 킹>은 그렇게 악의 얼굴에 혹하고, 결국 혹사당하고 있는 대한민국과 분리할 수 없는 기시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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