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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그렇게 살지 마세요
주성철 2016-11-04

부끄럽게도 그동안 한국영화계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착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한 오래된 영화인의 얘기에 따르면, 프랑스 유학파 박광수 감독이 이른바 ‘사회파 감독’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칠수와 만수>(1988)로 한국영화계에 등장하던 순간이 과거와 작별하던 순간이다. 이후 이른바 ‘의식 있는 운동권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과거의 구시대적인 여러 악습들이 개선되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영화인도 “그때부터 영화계에 운동권 출신들이 많이 들어왔다”며 “성폭력부터 촌지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들어 영화계가 많이 깨끗해진 데에는 그런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름 일리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영화계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몇년 전 한 배우가 “한국영화계의 본바탕이 좌파다”라고 말하며 이슈가 됐을 때, ‘그런 얘기인가?’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호 ‘영화계_내_성폭력’ 특집을 준비하며 이화정, 송경원, 이예지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실상은 충격적이다. 앞서 말한 그런 막연한 믿음이 참담하게 깨진 것이다. 제보를 받은 영화나 영화인의 경우 피해 당사자와의 연락은 물론,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제보받은 영화에 참여한 최소 1인 이상의 스탭과 PD를 취재했다. 대부분 사실이었고 이니셜로 표기해 기사에 반영했다. 아무래도 공론화하거나 법적 절차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보도 알려질 각오를 해야 하는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작품 계약을 진행 중인 감독과 스탭들의 경우 이번 제보와 관련한 내용들을 해당 투자·배급사에 전달했다. 그리고 사실관계 확인차 연락하게 된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그런 문제가 있는 감독이나 스탭들과의 작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며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해주길 원했다. 그 또한 어떤 변화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기사를 읽으며 자기 얘기라고 느낄 사람이 분명히 있을 터, 앞으로 더이상 그렇게 살지 않길 바란다.

이번호 특집 대담에 참여한 배우 이영진은 “현장에서 성희롱이 일어나면 처벌받을 수 있게 제도화가 되어야 하고, 적어도 눈치 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또한 서로 다른 부서와 부서가 부딪히는 공동 작업이라는 영화예술의 특성상 ‘공감’과 ‘연대’가 중요하다. 실제로 제보자들 중에는 정작 피해 당사자보다 지인들의 제보가 많았다. 하나하나 경청해보면, 어떤 문제제기가 이뤄졌을 때 완전히 묵살되는 경우만큼이나 더 확대해서 퍼지는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가 아닌데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양쪽 모두 중요한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사로 다룬 것처럼 성폭력을 목격했거나, 지인의 성폭력 가해 혹은 피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변인들을 위한 행동 지침 가이드’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나 피해자로 지목되는 사람 모두 고립시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향후 여러 영화인 단체들의 입장 정리도 촉구하는 바이다.

PS. ‘한국영화 블랙박스’에 원승환 필자에 이어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 새로 합류했다. 첫 번째 원고가 바로 독립영화계 내의 젠더 이슈에 관한 것이다. 지난호에 언급했던 모 웹진 성폭력 사건 이후, 그것을 조직 내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로 여겨 총회에서 ‘성차별 금지 및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를 제정하고 ‘성평등 위원회’를 설치했던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사례를 얘기해주었다. 앞으로도 쭉 좋은 기사 기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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