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칭에 참가한 이강현 작가가 <불의 전쟁>의 기획 의도와 강점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KOCCA)과 부산국제영화제가 주최하고 아시아필름마켓이 주관하는 신화창조 프로젝트 피칭이 10월8일부터 이틀 동안 벡스코에서 열렸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신화창조 프로젝트 피칭은 KOCCA가 2009년부터 주최해온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선정된 작품 가운데 일부 작품의 창작자가 직접 피칭을 하는 자리다. 스토리 창작자들은 피칭을 통해 국내외 제작자, 투자자, 영상 관련 기관과 비즈니스 관계자들과 미팅을 갖게 된다. 지난해 공모대전의 수상작인 17편 중 대상작인 <화원(畵員): 밀사화의 비밀>을 포함한 8편의 작가들이 피칭에 나섰다. KOCCA 콘텐츠코리아랩본부 김상현 본부장은 공모전 이후 피칭과 비즈니스 매칭으로까지 이어지는 그간의 콘텐츠 개발 과정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KOCCA는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고 실질적인 판권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2011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김원석 작가의 <국경없는 의사회>가 TV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2012년 수상작 <닥터 이방인>의 드라마화, 2011년의 <궁극의 아이>의 소설화, <더 파이브>의 웹툰화와 영화화, <도둑맞은 책>의 연극화, 2010년 수상작 <조선 총잡이>의 드라마화 등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이 자리를 잡았고 여기서 눈에 띈 1차 스토리가 영화화 등 2차 창작물로 만들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더 단축되고 있다는 게 의미 있는 지점이다.” 현재 KOCCA는 신화창조 프로젝트와 더불어 국내 우수 콘텐츠를 발굴해 해외 제작사, 투자사와 연계시키는 로드쇼 형태의 ‘K-스토리 피칭’ 사업도 진행 중이다.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에 이어 조만간 미국 LA에서도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김상현 본부장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 발굴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신화창조 프로젝트 피칭에 참가한 작품들의 소재와 장르는 다양하다. 강민선 작가의 <치어걸스>는 1986년 거제도를 배경으로 거제고 축구부를 응원하는 치어걸들의 이야기다. 당시 거제의 지역 경제를 이끌던 조선소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이야기로까지 확장되면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갈등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는 청춘 가족 드라마다. 문숙현 작가의 액션 시대극 <의병 사진사>는 대한제국 당시 추문의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돈을 벌던 한 사진가가 주인공이다. 그가 일본에 맞서 싸우는 의병대의 사진을 찍게 되면서 그 스스로 민족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조찬양 작가의 <말라깽이 피그 애니>는 이번 피칭의 유일한 애니메이션으로 말라깽이 돼지 ‘애니’의 거식증 탈출기다. 조찬양 작가는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민지형 작가의 사극 코미디물 <조선공무원: 오희길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말단 관리 오희길이 <조선왕조실록>을 사수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다. 작가는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조선 최초의 ‘공무원 히어로’ 오희길과 그를 돕는 ‘어벤져스’급 민초들,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까지 한번에 다 볼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김형석 작가는 <배드파파>를 16부작 TV드라마 대본과 장편소설로 만들 계획을 밝혔다. 승부조작 루머로 몰락한 전직 복싱 챔피언이 이종격투기 선수가 돼 승리를 이어가기까지의 비밀스러운 속사정을 좇는다. <귀신이 산다>(2004), <베사메무쵸>(2001)의 각본을 쓴 장재영 작가는 “<화원(畵員): 밀사화의 비밀>을 통해 조선 궁중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정조의 화성 행차를 앞두고 벌어지는 도화서 화원들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한편, 1992년 세상을 놀라게 한 ‘시한부 종말론’을 소재로 한 추종남 작가의 미스터리 스릴러물 <신의 아이들>도 색다른 접근의 작품이다. 추 작가는 “종교적 구원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죽음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삶을 원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중 심리, 그들의 절망을 이용하려는 악당을 그린다”고 의도를 설명한다. 조선 세종 8년에 일어난 ‘한성 대화재’를 기반으로 한 이강현 작가의 <불의 전쟁>도 흥미로운 재난액션 스릴러물이다. 작가는 “한양의 연쇄방화사건의 공통점이 서서히 드러나고 신무기를 개발하려는 무국적 무장단체의 존재까지 밝혀진다. 사료에 기반해 시한폭탄, 수중폭탄, 세총통 등 각종 낯선 무기가 등장한다”며 새로운 액션 사극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가들은 피칭에 참여하기 두달 전부터 현직 영화인들의 멘토링과 피칭 전문가의 교육을 받으며 준비를 거듭했다. 참가자들의 교육과정을 총괄한 인디플러그 고영재 대표는 “기존의 영화제 피칭이 감독과 투자자 중심이었다면, 신화창조 프로젝트 피칭은 원천 소스를 만든 작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가의 이야기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영화, 드라마 제작자나 출판사와의 연계가 가능한 이유”라며 이번 피칭의 특징을 짚었다. 작가들의 멘토로 참가한 서울독립영화제의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피칭 참가자들은 이미 완성된 자기 작품을 갖고 있는 작가들이다. 작품 그 자체에 대한 멘토링을 하기보다는 ‘원작을 어떻게 하면 시나리오화할 수 있는가’, ‘영화산업 종사자들과의 비즈니스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등 보다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차원의 정보를 나누는 자리였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피칭에 참여한 작가들이 이번 프로젝트로 기대하는 바는 무엇이고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 <배드파파>의 김형석 작가는 “물론 제작사나 투자사와의 계약이 성사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욕심을 내기보다는 내 작품을 좀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멘토링이나 비즈니스 미팅을 통해 상대방이 내 이야기의 어떤 점을 좋게 보고 있는지 등을 파악해 이야기의 강점을 예리하게 살려가는 데 힘을 쏟을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치어걸스>의 강민선 작가도 비슷한 생각이다. “피칭에 참여하기 전에는 피칭이 단순히 보여주기식 행사로 그치면 어쩌나 우려했던 게 사실이다. 막상 준비해보니 현직 영화인들의 강의와 피칭 전문 강사의 도움으로 내 시나리오를 좀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다듬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도 한번의 피칭으로 여러 명의 제작자와 투자자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회인가. 신진 작가에게는 영화계 인맥을 쌓고 넓혀나갈 수 있는 좋은 자리다.” <의병 사진사>의 문숙현 작가의 기대는 어떨까. “KOCCA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피칭이 제일 알찼다. 만족도가 높았다.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은 작가들에게는 피칭으로 만난 동료 작가들과 서로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자극이 된다. 콘텐츠 사업은 가능성 있는 씨앗을 오래도록 지켜보며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런 자리가 지속되길 바란다.” 새로운 스토리를 발굴해 유통, 제작 가능한 콘텐츠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신화창조 프로젝트 피칭의 작품들, 신진 작가들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