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일부러 이 책을 읽으려고 병원에 오기도 합니다. (웃음)” 지난 2013년 선종하신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한국 이름 임인덕 신부 이야기다. 그는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으로 지난 1965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이후, 1972년부터 경북 왜관수도원에서 선교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그는 분도출판사와 베네딕도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출판과 영화 등을 활용해 사목 활동을 벌이며 영화 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 연작,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등은 물론 ‘침묵 3부작’이라 불리는 잉마르 베리만의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겨울빛> <침묵> 등을 출시한 장본인이 바로 그다.
이후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투병 생활을 했던 그에게 큰 힘이 됐던 책이 바로, 타르코프스키가 쓴 글을 모아놓은 수기 형식의 <봉인된 시간>이다. 독일어로 된 책을 읽자마자 한국에 돌아와 판권 계약을 한 뒤 황토색 표지의 초판을 냈고, 이후 <노스텔지아> 현장 사진이 삽입된 현재의 판본으로 다시 출간했다. 10여년 전 직접 왜관수도원을 찾아 그를 인터뷰하며 인연을 맺은 후로 종종 병문안을 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곁에는 항상 <봉인된 시간>이 있었다. 이미 읽었던 책이라 평소에 다시 꺼내 읽을 일은 별로 없는데 병원에 갈 때는 왠지 꼭 가져가서 읽고 또 읽게 된다는 얘기였다.
주변에서 믿지 않을 사람들도 많겠지만(-_-;), 나 또한 가장 좋아하는 영화책 중 하나가 바로 <봉인된 시간>이다. 가을을 맞이해 지난 1, 2년간 출간된 영화책 특집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옛 책을 꺼내보았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타르코프스키 서거 30주년이기도 하다. 그는 <희생>(1986)을 유작으로, 1986년 55살로 세상을 뜨기까지 불과 7편의 장편 극영화만 남겼다. <봉인된 시간>에는 예술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누가 예술을 필요로 하는가, 예술은 도대체 누구에 의해서 사용되어지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그의 깊은 고뇌의 사유가 실려 있다. 그리고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예술은 마치 일종의 사랑 고백과 같은 것이다. 예술은 우리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에게 얽매여 있다는 자백과 같은 것이다. 예술은 고백이다. 예술은 삶의 본디 의미를 표출해주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며 사랑이고 희생이다.” 그렇게 그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 예술을 통해 다른 이들과 엮여 있기에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가르침을 줬다.
<영화감독들의 영화이론>에서 ‘시간의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영화를 두고, 타르코프스키에 대해 ‘시간을 조각하는 사람’이라 표현한 사람이 바로 자크 오몽이다. 이번호 특집에서 자크 오몽의 또 다른 신간을 만날 수 있고 하스미 시게히코, 조너선 로젠봄, 자크 랑시에르의 책도 있다.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와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도 있다. 당장 내일 부산국제영화제로 출장을 떠나면서 가방에 몇권 챙겨갈 생각, 이라고 쓰고 있지만 읽을 시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꽤 괜찮은 추천 목록이라 생각해주시면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