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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를 감독한 사나이
2001-03-17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영화화 제안한 뮤지션 라이 쿠더

몇번인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빔 벤더스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의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를 읊조리는 천사 다미엘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처음 본 이후, 그의 <베를린 천사의 시>만큼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는 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서커스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슬픈 음악과 닉 케이브의 음울한 노래들은 항상 귓가를 맴돌며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어설프게 리메이크한 <시티 오브 엔젤>은 오히려 <베를린 천사의 시>의

상대적인 가치를 높이는 셈이었고, 그럴수록 빔 벤더스에 대한 팬으로서의 존경심은 커져만 갔다.

문제는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인 87년에 만들어진 <베를린 천사의 시> 이후, 그가 선보인 일련의 작품들 대부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범작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의 속편인 <멀고도 가까운>마저도, 전작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소비했을 뿐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빔 벤더스 스스로 자신의 이전 작품들과는 분명히 다른 작품임을 공언한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존재는 참으로

소중하다. 그러나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빔 벤더스가 보여준 실험정신과 열정이, 그에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이를 영화화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은 라이 쿠더에게서 힘입은 바 크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영화를 빔 벤더스가 오랜만에

선보인 수작으로 평가하기 이전에, 이를 가능하게 했던 라이 쿠더의 영화로 봐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영화팬들에게도 그닥 낯선 이름이 아니겠지만 라이 쿠더는, 팝계에서는 거의 신화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거물급 인사다. 47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잡기 시작한 그가 명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17살 되던 해에 최고의 블루스 가수 중 한명인 제키 드셰논 등과 함께 공연한

이후부터였다. 그가 18살의 나이에 지금은 전설적인 인물들이 된 타지 마할, 에드 캐시디 등과 함께 록밴드 ‘Rising Sons’를 결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명성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Rising Sons는 녹음을

다 끝낸 음반을 출시도 못해보고 해체되어야 하는 불운한 운명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Rising Sons의 음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라이 쿠더는 프로듀서 데리 멜처를 만나는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테리 멜처는 능력있는

기타리스트들을 꼽아 자신의 음반 프로듀싱작업에 세션맨으로 기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던 인물. 그를 통해 Captain Beefheart

And His Magic Band, 랜디 뉴먼 그리고 롤링 스톤스 등의 앨범에 참여하게된 라이 쿠더는 점차 독립적인 작품활동까지 할 수

있는 연주가로 성장을 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그 스스로 보컬, 기타, 만돌린, 베이스 등을 담당해 1970년 발매한 전설적인 첫

앨범 `ry Cooder`였다. ‘블루스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가장 완벽하게 실현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말해주듯, 그만의 스타일로 연주한

블루스가 인정받게 된 것이었다.

이후 그의 오랜 동료가 되는 침 켈트너, 짐 디킨슨 등을 만나 72년에 발매한 두 번째 앨범 `into The Purple Valley`와

74년에 발매한 세 번째 앨범 `Boomer’s Story`를 통해 자신의 초기 음악세계를 규정짓는 3부작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를 대중적인 스타로 만들었던 것은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레게리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만든 `It’s All Over Now`가 수록된

74년 앨범 `paradise And Lunch`였다. 그렇게 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는 지속적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키며, 95년까지 7장의 앨범을 더 발표한다.

어쩌면 전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대중음악인의 길을 걷던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자신의 첫 앨범을 발매했던 해인 70년에 `pacific

Vibrations`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의 음악을 담당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상업영화와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 계기가 된 작품은

월터 힐 감독의 80년작 <롱 라이더스>. 이후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1984), <자니 핸섬>(1989), <제로니모>(1993),

<라스트맨 스탠딩>(1996), <프라이머리 칼라스>(1998)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 작업에 참여하면서 영화음악가로도 명성을 쌓게 된다.

하지만 그의 영화 관련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빔 벤더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파리, 텍사스> (1984)의 음악을 담당한 것과

이를 통해 빔 벤더스의 최근작 중 하나인 (1997)에도 참여한 것이었다.

여하튼 라이 쿠더가 자신과 무려 9작품이나 연속으로 작업을 함께한 월터 힐 감독이 아닌 빔 벤더스에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영화화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자신의 발굴한 그 세계적인 음악인들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담아줄 인물이, 평소 영화 속의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보여온 빔 벤더스임을 그간의 영화작업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동명의 음반이 그랬던 것처럼 대중음악가이자 영화음악가인 동시에 음반기획자이기도 한 라이 쿠더라는 인물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밖에 없다.

빔 벤더스에게는 조금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공식 홈페이지 http://www.buenavista-socialclub.com/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www.cinecube.net/cine/buenavista/buena.html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음반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www.bvsc.co.kr/

PBS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홈페이지 http://www.pbs.org/buenavista/

라이 쿠더 홈페이지 http://rycooder.members.easyspace.com/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bandee@channel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