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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아역배우 트로이카, 10년 뒤에 다시 모실게요
주성철 2016-08-19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감독은 너무 해외영화제를 겨냥한 영화를 만드시는 것 같아요”라고 한 아역배우가 얘기한 적 있다. 오래전 가졌던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인데(이에 대해 김기덕 감독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얘기한 명언, “그렇게 만들 수 있으면 만들어보세요.”), 실명을 밝힐 수는 없고 지금은 사실상 활동을 접은, 당시 10대 초반의 배우라고만 얘기해두겠다. 발언의 진위 여부를 떠나 몇편을 제외하고는 그들 감독의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 빤한 이 어린 배우가 무슨 의도로 그런 얘기를 꺼냈는지 궁금했다. 어쨌건 무척 진지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물었을 때, 자신은 영화보다 뮤지컬이나 소설을 즐겨 읽는다며 분명 ‘괴테의 <호두까기 인형>’을 좋아한다고 했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을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자신은 다양한 예술을 즐긴다며, 역시 진지했다. 아무튼 얘기할 때 틀린 정보들이 많았지만(-_-;) 배우로서 시종일관 진지하게 보이려 했던 그 배우의 패기가 전혀 고깝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귀여웠고 진심으로 그의 미래가 궁금했다. 그리고 최근 수소문한 바에 따르면, 영화학과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 중이라고 했다.

막내 이예지 기자가 오래도록 공들인, 이번호의 야심찬 커버 겸 특집은 <곡성>의 김환희, <아가씨>의 조은형, <부산행>의 김수안 배우의 만남이다. 먼저 제목으로 뽑은 ‘트로이카’라는 표현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트로이카(troika)라는 말은 원래 말 3필이 나란히 달리며 끄는 탈것의 총칭으로 보통 ‘삼두마차’ 혹은 ‘삼인조’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으로 넘어와서는 꼭 ‘여배우 트로이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말 나온 김에 읊어보자면 1960년대는 남정임, 윤정희, 문희, 1970년대는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1980년대는 원미경, 이미숙, 이보희, 1990년대는 전도연, 심은하, 고소영, (여기까지는 한국영화사를 다룬 책에서도 거의 공론화된 사실처럼 적시되어 있고) 다소 이견이 있을 만한 이후 시기부터 2000년대는 손예진, 임수정, 이나영, 무려 2010년대는 김새론, 김유정, 김소현이 일부 기사에서 언급된 바 있다. 어쨌거나 해묵은 ‘여배우 기근’ 이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유독 한국영화계에서 여배우 트로이카라고 호명하는 데는 마치 ‘농어촌 특별전형’처럼 여배우들을 대한다는 생각에 언제나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다. 이번호의 커버를 장식한 세 배우는 굳이 아역 여배우라서 만남을 청한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주목하는 그냥 배우들이다.

이번 특집 대담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식상한 ‘초심’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마도 기성 배우들이라면 이 어린 배우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더 그런 느낌을 갖게 될 것 같다. 그들이 감독에게 ‘맞춰 잡는’ 방식, 감정에 몰입하기 위한 방편들, 시나리오와 적절한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말하는데 그렇게 어른스러워 보일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세 배우 모두 연출을 꿈꾸고 있었다. 어떤 스마트폰 어플을 쓰면 좋은지 정보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특히 “영화감독이 되면 내가 시나리오를 써서 내가 하고 싶은 배역을 맡아 연기하면 되지 않나”라는 김수안 배우의 말이 유독 꽂혔다. 그러고 보니 거창하게 말해, <민며느리>(1965)에서 감독 겸 주연을 맡았던 최은희 선생을 제외하면 한국영화사에 그런 경우가 진정 드물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배우 출신 방은진 감독도 직접 출연을 겸한 경우가 없고, 최근 배우 문소리 정도만이 <최고의 감독>(2015) 등 자신의 세 단편에서 직접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그래서 세 친구를 다음에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어떻게 생각이 달라졌고, 그 꿈을 위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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