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판매원 정수(하정우)는 집으로 가는 길에 하도터널 붕괴로 매몰된다. 의식을 찾은 정수는 자신이 터널 안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에 깔렸음을 알게 된다. 구조대책본부 김대경 대장(오달수)의 노력과 아내 세현(배두나)의 무사 염원에도 불구하고 매몰된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그를 구하는 건 요원해 보인다. 구조가 지지부진해지면서 구조 작업을 둘러싼 여론이 분열된다. 게다가 인근 제2터널 완공의 재개를 위해서도 구조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영화 시작 후 곧바로 하도터널이 붕괴된다. 스피디한 초반 전개가 김성훈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2014)와 구성 면에서 닮았다. 남은 90%는 사고 이후, 붕괴된 터널 안과 밖의 급박한 상황이다. 터널 안에서 가능한 액션, 생존에 필요한 도구와 활용 방법, 휴대폰 같은 소통 도구 등이 장르를 흥미롭게 구축할 요소로 사용된다. 소재로 볼 때 터널 붕괴사고를 다룬 롭 코언의 <데이라잇>(1996)이나 로드리고 코르테스의 <베리드>(2010)처럼 매몰된 개인을 그린 재난액션영화가 떠오르지만 <터널>은 온전히 장르영화의 성격을 띠지 않는다. 터널 안에서 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정수는 무인도에 갇힌 <캐스트 어웨이>(2001)나 화성에서 지구로 소환되길 기다리는 <마션>(2015)의 주인공처럼, 종종 장르의 바깥에서 혼자만의 여가 시간을 갖기도 한다. 반대로 우왕좌왕하는 터널 밖의 부조리한 상황이나 대처방식은 봉준호의 <괴물>(2006)을 떠올리게 만든다. 애초 부실시공으로 사건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언론은 특종 인터뷰에만 목을 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제 잇속 차리기에 바쁜 정치인들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포스트 4·16’이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맞이하는 관객으로서는,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현재를 대입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중 누구라도 정수처럼 될 수 있는 불안한 사회. <터널>은 지금의 세태를 풍자한 씁쓸한 블랙코미디다. 터널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정수와 그를 구조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김대경 대장. 얼굴도 모른 채 전화기로만 소통하는 그들의 묘한 우정은 비현실에 가깝지만, 그래서 감독이 이 사회를 향해 전하는 가장 적극적인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