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1일 서울광장에서 시작된 제17회 퀴어문화축제 퀴어 퍼레이드 모습.
게이 클럽에서 벌어진 올랜도 참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이자 혐오/증오범죄로 기록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미국 전역에 동성결혼이 인정된 지 꼭 1년 만이다.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로 불리는 6월,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자긍심 행진이 이어지는 시기에 벌어진 참사다. 전세계 성소수자들이 애통함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참사 소식이 전해진 직후 추모 행사가 열렸다. 서울광장에 5만명이 모인 역대 최대 규모의 퀴어 퍼레이드의 흥분은 단 하루 만에 바다 건너 소식에 고통으로 내려앉았다. 동성혼과 같은 제도적 보장의 수준과 관계없이 성소수자 개인이 생명을 위협받는 현실은,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증오와, 공포와, 차별의 선동이 있는 한 어디에나 벌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LGBT에 대한 폭력
그렇다. 문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와, 공포와, 차별선동이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아가씨>가 2주도 되기 전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고, 토드 헤인즈의 <캐롤>이 뜻밖의 흥행을 거두고, 개봉을 앞둔 한국의 게이 합창단을 다룬 이동하 감독의 다큐멘터리 <위켄즈>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것이 환영받는 뉴스가 되더라도, 영화관 바깥의 거리에서는 온도차가 있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지난 총선이었다. 사실상 동성애와 이슬람에 대한 혐오만을 공약으로 내세운 기독자유당이 2.64%의 정당득표를 함으로써 정당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원내 정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은 개신교계가 주최한 국회기도회에서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 다 반대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 대표급 인사들이 앞다투어 자랑스럽게 헌법상 평등원칙에도 반대하고 인권에 ‘반대’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심각한 것은 이것이 그저 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대 국회에서 김한길, 최원식 의원은 각각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을 철회했고, 성적지향•성별정체성과 별다른 관계도 없었던 인권교육지원법안도 대표발의자인 유승민 의원이 자진철회하기에 이르렀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박원순 시장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사과하면서까지 서울시민이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선포를 거부했다. 이 소식에 성소수자들은 서울시청 로비를 6일간 점거해 무지개농성을 벌였고, 급격히 떨어진 박원순 시장에 대한 지지율은 메르스 사태까지 좀처럼 오르지 못했다. 동성애에 대해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한 교육부의 성교육표준안도, 성평등조례에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을 삭제하라고 한 여성가족부의 지시도, 모두 이렇게 국가기관이 나서서 벌인 행동들이었다. 사법부 역시 최근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혼인신고 불수리가 적법하다면서 소수자 보호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을 저버렸다.
미디어에 대한 규제도 심각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동성간의 키스장면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JTBC의 <선암여고 탐정단>, 윤성호 감독 등이 연출한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tvN의 <SNL 코리아>에 대해 징계 등의 조치를 내렸다. 2009년 내려진 퀴어영화 <친구사이?>에 대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이 대법원에서까지 취소되었지만, 동성애에 대한 검열은 오히려 심해지기만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차별과 규제는 그 자체로 성소수자들을 해친다. 성소수자들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도적 보호 없이 혐오와 증오의 말과 태도, 폭력과 인권침해가 겹치면 성소수자들의 생존은 곧바로 위협받는다. 2013년 발표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3159명의 응답자 중 41.5%에 이르렀고, 이러한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 자살시도와 자해시도의 비율은 각각 40.9%와 48.1%로 나타났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연구용역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17% 가량이 정체성 때문에 해고 등 비자발적 퇴사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런 한국 상황에 대해 우려가 높아지면서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대한민국에 대해 “사회 전반에 만연한 LGBT에 대한 폭력, 혐오발언과 같은 강한 차별적 태도에 관해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소위 ‘전환치료’의 선전, 혐오표현,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폭력을 포함한 어떤 종류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인 형태로 분명하게 명시할 것을 요구하는 등 강경한 권고를 내렸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자유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의장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 현실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혐오와 증오의 한계
보수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선동, 이에 발맞춘 국가의 차별과 배제는 이미 많은 성소수자들과 그 가족, 친구들에게 상흔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방해와 비방이 오히려 급격한 퀴어문화축제의 성장을 이끌듯, 더 많은 사람들의 저항을 불러모으는 것도 사실이다. 퀴어영화에 대한 관심과 대중화도 사회문제화된 이들이 자극한 성소수자에 대한 호기심 또는 공감의 욕구 때문일지도 모른다.
혐오/증오범죄를 ‘메시지 전달 범죄’라고 한다. 표적이 된 소수자 집단 전체를 상대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라져버리라는, 공포 속에 숨어들어가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올랜도 총기난사는 전세계 성소수자들을 상대로 잔인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지만 이런 혐오와 증오의 한계는 명확하다. 증오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긴 역사 속에서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혐오와 증오와 폭력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함께 추모하고, 더 많이 모이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은 존재의 드러냄을 만들어낸다.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불러세운다. 그래서 혐오와 증오의 메시지는 언제나 과녁을 벗어나 미끄러진다. 물론 깊은 슬픔과 애도와 고통의 시간은 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서로를 향한 다독임의 시간이기도 하다.
영화관 안과 밖이 온도차가 있다고 했지만 변치 않는 사실은 그 안이든 밖이든, 또 스크린 속 배우나 감독과 스탭 사이에서도, 성소수자는 바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성소수자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또 성소수자가 아닌 당신이 바로 옆자리의 성소수자와 함께 웃고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서로 물들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가장 따뜻한 색 무지개를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