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 남자가 좋아요
좋은 사람 만나러 가시나 봐요?애인, 만나러 가요!
석이,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민수에게 면회를 간다. 오붓한 외박의 하룻밤을 위한 준비도 끝냈다. 남자들이 즐비한 군대로 민수를 보내놓고 맘 편한 날 없었던 석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철원행 버스를 탄다. 남자친구를 면회 가는, 처음 보는 옆자리 여자와 수다 떠는 그 순간도 그저 즐겁다.
그런데… 우리 민수와는 어떻게…?
네?!... 치, 친구사이예요.
더 늠름하고 씩씩해진 민수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석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목소리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얘기도 없이 깜짝 면회를 온 민수 엄마. 둘의 관계를 묻는 엄마에게 ‘친구사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민수와 석이. 졸지에 엄마를 사이에 두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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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순이가 석이가 된 퀴어물은 저리 가라!more
이것이 바로 순도 99.9% 게이영화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2008년 단편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극장에서 단독 개봉하면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샤방샤방퀴어로맨스 <소년, 소년을 만나다>(이하 <소소만>)의 김조광수 감독이 돌아왔다. <소소만> 개봉 당시 속편 제작을 열망하는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다시 한번 김조광수표 게이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게이로맨스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김조광수 감독은 진정성이 결여된 스토리와 과장된 게이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보통의 퀴어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자신의 영화에서 만회해보고자 했다. 멜로영화의 ‘순이’가 단지 ‘석이’로 바뀐다고 리얼한 퀴어멜로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는 그는 게이들이 사랑하는 모습과 방식, 그리고 현실적 문제를 보다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친구사이?>는 이 같은 감독의 바람을 전제로 시작된 영화다. 이번 영화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10대 시절부터 남달리 연애에 대한 촉이 좋았던 게이 감독의 실제 경험담이 바탕이 되었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속에 반영된 인물들의 캐릭터 행동과 감성 역시 ‘사실성’을 전제로 보여준다. 그런 이유로 민수와 석이 역을 맡은 서지후와 이제훈은 감독을 치밀하게 관찰하며, 부단히 게이가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순도 99.9% 게이로맨스가 탄생하였다.
훌쩍 커진(!) 녀석들의 당돌한 고백 <친구사이?>
재미! 러브 신! 러닝타임! 그 모든 것이 <소소만>의 두 배를 능가한다.
<친구사이?>는 <소소만> 게이 소년들 사랑이야기의 게이 청년 버전이다. <소소만>이 고교생 게이 소년들의 감성적인 첫 사랑을 선보였던 거라면, <친구사이?>는 혈기왕성한 게이 청년들의 연애를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려낸다. 촬영 시작 단계부터 <소소만>의 두 배를 능가하는 러브 신의 농도와 러닝타임으로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던 <친구사이?>는 새로운 민수와 석이를 맡은 신인배우 서지후와 이제훈의 거침없는 연기만으로도 두 배의 재미를 안겨준다. 여기에 20대 게이들에게 닥치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가미되면서 영화는 전작보다 깊어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김조광수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20대로 접어든 게이들이 겪는 가장 큰 현실적 고민은 군입대라고 한다. 석이가 입대한 애인 민수를 면회 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친구사이?>는 이러한 20대 게이청년들의 고민 최전방에 있는 것들은 우울하지 않게 즐거운 리듬으로 풀어낸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명랑, 쾌활한 감독 특유의 성향이 영화 곳곳에 묻어나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운대 일대를 뜨겁게 달군 <친구사이?>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 공식 초청
이번 영화제는 박찬옥, 이송희일, 김동원, 김태식 감독들과 같이 두 번째 작품으로 부산을 찾은 감독들이 포진되어 있다. 여기에 김조광수 감독 역시 <소소만>에 이어 부산에 공식 초청되었다. 매년 제작자의 신분으로 영화제를 찾았던 김조광수 대표는 그가 연출을 시작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로 ‘영화제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영화제의 꽃인 감독으로 초청 받는 것’임을 수줍게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첫 연출작 <소소만>으로 영화제의 꽃이 되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소만>은 온라인 예매 시작과 동시에 2분도 안 되어 전회 매진되고, 영화상영시간보다 긴 1시간 30분 가량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는 등 영화제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다. 이번 초청된 <친구사이?> 역시 온라인 예매 뿐만 아니라 현장 구매 좌석도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표 구하기가 어려워 영화를 볼 수 없었던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해운대에서 진행된 것이 바로 <친구사이?> 번개!! 해운대 바다를 뒤로한 인디라운지에서 이뤄진 감독과 배우들의 즉석 만남은 주말을 맞아 최고조였던 영화제를 열기를 한층 더 뜨겁게 했다. 이 자리는 무엇보다도 포스터와 예고편이 최초로 공개되는 자리였기에 좁은 공간이지만, 라운지에 앉지 못한 팬들은 까치발을 하고서라도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는 것에 집중하였다. 또한 학교 수업을 끝내고 곧바로 해운대로 직행한 교복 차림의 소녀 팬들의 열혈반응을 통해 <친구사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라는 든든한 후원단을 가지고 있는 <친구사이?>. ‘친구들’은 다양한 연령대만큼이나 전국 각 지역에 흩어져있다. 이에 부산 거주하는 ‘친구들’은 솔선수범으로 이번 이벤트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해운대 일대 거리와 상가에 <친구사이?> 포스터를 직접 붙이며 직접 홍보하는 그들의 모습을 종종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게이영화 찍기란….
<친구사이?> 제작 고군분투기
1. 우리는 ‘친구들’입니다.
열악한 제작환경을 뛰어넘은 <친구사이?> 후원단, ‘친구들’의 힘
관객들의 바람에 의해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연장선상으로 두 번째 영화 제작을 시작했지만 같은 열악한 제작환경은 전작과 다를 게 없었다. 이에 <소년, 소년을 만나다> 촬영 당시 힘을 보탰던 후원단 ‘소년단’에 이어 <친구사이?>의 후원단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비록 1만원이라도 제작비를 투자한 제작자들로 프리프로덕션 단계뿐만 아니라 촬영, 그리고 개봉 준비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대한 지지를 몸소 아낌없이 실천하고 있다. 감독 역시 제작자인 그들에게 편집본 시사회를 열어 말뿐만 아닌 관객이자 제작자인 그들과 직접 소통하며 <친구사이?>를 완성시켰다. 이들은 완성된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아닌, 영화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관객들이다. 이들의 십시일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더불어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게 한 기본 동력을 제공했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에 이어 한국 영화 사상 가장 길고 뿌듯한 제작자 크레딧을 보유하게 된 <친구사이?>는 집단으로 창작하고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영화 매체 본연의 특징을 극대화한 남다른 영화다.
2. “촬영.. 다시 연기합니다..”
촬영을 무기한 연기해야 했던 우여곡절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정사씬이요? 아…. 글쎄요…..”
<친구사이?> 김조광수 감독은 크랭크 인을 코앞에 두고 두 번이나 무한정 촬영 일을 연기해야 했다. 그의 다리 힘을 풀리게 했던 것은 다름아닌 캐스팅 불발. 민수와 석이 역할에 걸 맞는 배우들을 찾고자 고군분투했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은 먼저 러브 신 촬영을 할 수 없다는 배우의 한마디였다. 퀴어영화는 찍을 수 있지만 아직 여배우와의 키스 신도 촬영해 본 적 없다며 발길을 돌린 것. 그래. 그럴 수 있지. 이해 할 수 있어. 제작진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캐스팅을 시작했고 이번엔 훈훈한 얼굴에 러브 신도 열심히 하겠다는 어여쁜 청년을 만나게 됐다. 하지만 “내 아들은 동성애 연기 할 수 없어요!”이번엔 다름아닌 배우의 부모님이 나선 것. 배우들에게 동성애에 대해 설명하며 이해 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부모님을 설득시켜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촬영을 2주 앞두고 벌어진 상황에 김조광수 감독은 아들이 새로운 성 정체성을 찾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연기를 한다는 것뿐인데 라며 안타까워했다. 부모들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3월 중순 예정이었던 촬영은 결국 무기한 연기되기 이르렀다. 하. 지. 만. 지성이 감천이면 하늘도 알아준다고 했던가. 불철주야 고생한 스탭들의 노력은 꽃청년 이제훈과 서지후를 캐스팅하는 행운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지금의 순도99.9% 게이로맨스 <친구사이?>를 만들 수 있었다.
3. 하늘이 보고 있다고!!?
민수와 석이 광화문 광장 키스 신 촬영장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
2009년 8월 1일,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 광장 공개! 매일같이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 2009년 8월 5일, <친구사이?>의 민수와 석이, 광화문 광장에서 공개 키스를 감행…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찌는 듯한 한 여름을 시원하게 해 줄 분수대가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은 이를 구경하러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이 시각 분수대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건물 5층 창문에는 김조광수 감독을 필두로 한 촬영 팀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무전기를 통해 서지후와 이제훈에게 분수대를 중심으로 연기 동선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촬영시작! 광화문 광장 한 가운데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분수대를 향해 뛰어간 군복 입은 민수와 평상복 차림의 석이. 북적이는 사람들을 헤치며 손을 잡은 두 청년이 눈을 감고 입을 맞춘다. <친구사이?>의 마지막 장면인 두 게이 청년의 공개 키스 신이었던 것. 멜로영화에 흔하디 흔한 키스 신이지만, 문제는 남자와 남자의 키스 신이라는 사실! 번듯한 두 청년들이 백주 대낮, 주변 직장인들도 즐비한 점심시간에 키스라니!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메라는 건물 안에 숨겨져 있었으니, 100% 실제 상황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스탭들의 우려와 달리 웃으며 신기해만 할 뿐 노여워하는 어르신들도 없었는데……. 다시 한 번 더 촬영하기 위해 두 배우가 막 입을 맞추는 바로 그때, 키가 큰 백인이 다가온 것. 다짜고짜 두 배우에게 하늘이 보고 있다며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생각지도 못했던 외국인의 등장에 연출부가 서둘러 영화 촬영이라고 설명을 했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외국인이 가세, 연출부의 설명을 도왔다. 풍기문란죄로 잡혀갈 것을 걱정은 했어도 광화문 광장에서 두 외국인이 논쟁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다행히 스탭들의 즉각적인 대처로 소란이 마무리되었지만, 감독의 말처럼 게이영화 찍기 힘든 현실을 스탭들 모두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