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승우(이선호)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조용한 시골 마을 삼례로 향한다. 도착한 첫날 밤부터 승우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모텔에서 내려다본 삼례의 밤거리에는 기웃거리는 정체 모를 남자가 있고 건너편 모텔에는 묘령의 여자가 승우에게 뜻모를 눈빛을 보낸다. 다음날 삼례를 둘러보던 승우는 삼례에서 나고 자랐다는 소녀 희인(김보라)과 우연히 만난다. 승우를 보자마자 희인은 그가 삼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간파하며 당돌하게 그를 살핀다. 희인은 승우에게 자신은 ‘유난히 희한한 인간’이며 ‘특별한 인간’이라는 알 수 없는 말만 한다. 삼례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희인이 승우도 싫지 않다. 둘은 함께 삼례를 걷기 시작한다. 희인이 자주 간다는 성당, 희인의 엄마가 묻혀 있다는 기암절벽을 둘러보고 희인의 무당 할머니도 만난다. 하지만 이들 여정을 좇아가봐도 두 사람이 어째서 교감을 나누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승우는 종종 이상한 꿈을 꾼다. 우주의 거대한 행성이 움직이는 듯, 태양의 흑점처럼 보이는 것이 이글거리는 듯하다. 심지어 승우는 희인과 함께 찾은 성당에서 꿈속에서 본 장면을 영적으로 경험한다. 희인도 범상치 않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례를 떠나고 싶은 희인은 자기 방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며 불특정 다수를 향해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런 희인에게 승우는 삼례 밖 세상에서 온 사람이자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처럼 보인다.
영화는 내내 희인의 상처와 아픔 같은 추상의 감정을 환상적으로 반복해 보여준다. 그 때문에 관객이 인물 내면에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 말미, 희인이 자신은 삼례 지역에서 동학 운동을 이끈 이소사 선생의 환생이라 말하기까지 한다. 마치 영화 내내 모호했던 분위기는 이처럼 엄청난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희인의 이 말은 당혹스러운 고백 같다. 승우는 삼례를 떠날 때 시나리오 <삼례>를 완성하지만, 관객은 영화 <삼례>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프로젝트로 선정돼 제작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