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영화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1954)였다. 박찬욱 감독이 비스콘티의 열렬한 팬인 데다가, 일제강점기를 무대로 한 <아가씨>처럼 <센소> 또한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를 통치하던 때를 배경으로 금지된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와 이성애의 차이는 있지만, <아가씨>에서 조선과 일본의 경계처럼 <센소>에서는 이탈리아 귀족 여성과 오스트리아 점령군의 젊은 장교가 사랑에 빠진다. 박찬욱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센소>를 추천, 상영하면서 ‘비스콘티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 평하기도 했고, 그즈음 서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자회견에 참석해서는 전용관 건립과 자료 보존의 필요성을 얘기하며 <센소>의 예를 들기도 했다. <센소> 도입부에 베니스 펠리체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공연을 재연하는 명장면이 있는데, “베니스 펠리체 극장에서 화재가 났을 때, 재건축을 위해 사용된 것은 사진 자료가 아닌 영화 <센소>였다”는 얘기였다.
당시 그는 이탈리아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하며 비스콘티 영화제를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했었다. 실제로 2006년 크리스마스 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을 상영하기 직전 깜짝 무대인사(?)를 하기도 했다. 예정에도 없던 그 순간을 관객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표현했던 당시 서울아트시네마 관계자에 따르면, 몇편의 이탈리아영화를 상영할 때 여러 감독들이 상영 전에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 소개를 하기로 했는데, 오직 박찬욱 감독만이 약속을 지켜 그 자리에 왔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 현장에는 없었지만, 진짜 시네필 감독의 대단한 정성이라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로코와 그의 형제들>에서 촌스럽고 한없이 순박한 로코(알랭 들롱)의 얼굴에 <아가씨>의 숙희(김태리)가 괜히 겹치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를 결산하는 자리도 마련할 겸,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과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만나는 커버 스토리를 떠올렸다. 물론 이날도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박찬욱 감독은 역시 비스콘티를 필두로 나루세 미키오, 히치콕 감독까지 언급했다. 평소 궁금했던 나홍진 감독의 리스트도 여기 더해본다. 다소 친미적인 성향의 그는 코언 형제를 필두로 마이클 만,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코언 형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짜는지 진정한 대가라고 했고, 아직도 <밀로스 크로싱>(1990)을 처음 봤던 때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마이클 만의 <인사이더>(1999)는 수시로 다시 꺼내 볼 정도로 연출의 교과서라고 했다. 타란티노의 경우 그가 연출한 영화도 영화지만 앞서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트루 로맨스>(1993)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데니스 호퍼와 크리스토퍼 워컨이 나누는 대화는 단연 압권이다. 아무튼 더 긴 시간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남지만, 다음을 또 기약해보려 한다. 두 사람이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복장을 하고 있어 혹여 월간 <객석> 표지로 착각하지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