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마음이 무거운 한주가 있었을까. 매번 이번호 에디토리얼은 무엇에 대해 쓸까, 고민한다. 보통 해당호 잡지의 콘텐츠에 대해 쓰고 싶지만, 괜히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면 꼭 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된다. 이번호만큼은 새로이 페이스북 방송을 시작한 칸국제영화제에 대해 쓰고 싶었다. 칸을 누비고 있는 김혜리, 장영엽, 김성훈 기자의 이야기를 카톡으로 전해 들음과 동시에 야심차게 시작한 장영엽, 김성훈 기자의 페이스북 칸국제영화제 특별방송 ‘씨네라이브’를 보며 갈증을 달랬다. 주변에서 방송 잘 봤다며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껏 장영엽 기자를 남자로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장 기자가 예쁘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고, 김성훈 기자를 남자로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선글라스가 거슬린다는 지적을 많이 했다.
그처럼 일단 칸국제영화제 얘기로 시작하긴 했는데, 결국 이번주 관심사의 흐름은 조영남과 유상무로 시작하여 강남역에 다다랐다. 너도나도 검색어 순위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온갖 해괴한 일들이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나쁘다 혹은 끔찍하다, 라는 수준을 넘어 거의 뭐 초현실에 가깝다. 거의 ‘천만 영화’ 수준의 속도로 초반 흥행 기세를 올리고 있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이번호 칸국제영화제 특집 리포트에 김혜리 편집위원이 쓴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에 공히 좀비가 등장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이번호 ‘영화人’ 코너를 참고하자면, 두 영화의 좀비 동작을 지도한 사람은 흥미롭게도 박재인 안무가라는 한 사람이다). 그동안 한국영화계에서 공포영화는 은근한 흥행 장르였지만 그 속에서도 좀비만큼은 마이너 중의 마이너였다. (아직 <부산행>을 보지는 못했으나) 뭐랄까, 마치 ‘세상 갈 데까지 갔다’는 듯한 체념의 기운이 대중영화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고 느낀다. 돌이켜보면, 무엇을 상상하든 더 나쁜 걸 봐도 상관없다는 관객이(물론 <부산행>은 아직 개봉 전이지만) 요즘처럼 객석을 가득 메웠던 일이 전에 있었나 싶다.
하지만 현실은 더 끔찍하다. 이번호 해외뉴스 칸국제영화제 소식에서, 지난해 하이힐을 신지 않은 여성의 <캐롤> 시사회 입장을 막은 데 대한 항의성 제스처로 수잔 서랜던이 드레스와 하이힐 대신 정장을 입고 플랫슈즈를 신은 채 입장하고, 줄리아 로버츠가 취재진이 보는 데서 하이힐을 벗은 뒤 맨발로 레드카펫을 걸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마음속 박수를 보내고 있을 때, 대한민국 서울의 강남역에서는 너무나도 끔찍한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마치 <부산행>과 그 프리퀄인 <서울역>에 이어 <강남역>이라는 영화도 본 것 같다.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일부 모지리 남자들의 호들갑 떨지 마라, 오버하지 마라, 일반화하지 마라, 라는 반응도 이어졌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그래봐야 하루도 안 된다) 뭐라 말을 덧붙이는 것마저도 힘든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냥 한참 멀었다고 느낀다. 이 나라가. 여기 사는 남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