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소설가, 극작가, 배우, 영화감독, 가수, 인권 운동가…. 이토록 수많은 역할을 능히 해낸 사람이 있다.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명에 손꼽히는 마야 안젤루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전방위 활동에 걸쳐 펼친 올곧은 주장은 마틴 루터 킹, 버락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등 시대를 뒤흔든 인사들에게 거대한 ‘말씀’이 되었다. 빌 클린턴은 1993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녀의 시 <아침의 맥박>(On the Pulse of Morning)을 낭송한 바 있다.
2014년 5월 세상을 떠난 마야 안젤루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내놓은 작품은 자서전 <엄마, 나 그리고 엄마>(2013)였다. 길었던 삶의 끝을 눈앞에 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더듬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를 회고했다. 스스로 사진가 같은 기억력을 자랑하던 마야 안젤루는 날 때부터 눈감는 그 순간까지 어머니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 자신의 삶을 가만히 포개어 모녀의 추억을 연대별로 늘어놓는다.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에서 태어나 여성으로서 그리고 흑인으로서 숱한 고생과 상처를 딛고 자라 세상 사람들에게 이름을 떨친 그녀의 일생에는 어머니에게서 얻은 대쪽 같은 가르침이 곳곳에 묻어 있다. 사실 둘의 관계가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서부터 마야 안젤루는 어머니를 레이디라고 칭했고,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되어서야 미혼모인 자신을 그대로 끌어안아준 그녀를 비로소 어머니라 부를 수 있었다. 비비언 백스터는 평생 딸의 뜻을 지지했다. 부유한 환경을 거절하고 자립하던 때에도, 돈벌이를 위해 스트립 댄서가 된다고 했을 때에도 그녀 곁에서 힘든 결정을 응원했다. 그때마다 어머니가 딸에게 건넨 조언은 둘 사이를 넘어 2016년을 사는 모든 인류가 가슴에 새길 말로 가득하다. “사랑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치유하는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에서 상상 불가능한 높이까지 오를 수 있도록 돕는지” 알리기 위해 세상에 나온 <엄마, 나 그리고 엄마>를 작가의 또 다른 에세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2009)와 함께 읽는다면 그 감동이 배가될 것이다.
우리집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너는 자유의 몸이 되는 거야. 아칸소에서 헨더슨 할머니에게 배운 것과 나한테 배운 것이 있으니 옳고 그른 걸 판단할 수 있겠지. 옳은 일을 해라. 남의 유혹에 넘어가서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잊으면 안 돼.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또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맞춰나가야 하겠지만, 남한테 휘둘려서 네 생각을 바꾸면 안 된다. 그리고 기억하렴. 넌 언제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102쪽)
너는 네 할 일만 다하면 돼. 그러면 그 사람들이 죽지 않는 한 너를 다시 찾아올 거다. 너를 얼마나 푸대접했는지 잊어버릴 수 있고, 잊어버린 척할 수도 있어. 하지만 두고 보렴.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엄마가 옆에 있어주마. 앞으로 내가 너를 보살피고, 네가 보살펴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면 누가 됐건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살펴줄 거야. 내가 여기 있잖니. 난 내 모든 걸 가지고 왔다. 네 엄마니까.(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