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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감독이 펼치는 아티스트 시리즈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

영감이 고갈되어 불면에 빠진 작가 펑정지에는 자신의 주위를 스치는 여성의 희미한 이미지를 좇는다. 그가 좇는 심미적 가상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여성으로 이미지화되었다. 영화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는 기존의 극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어느 한 장르로 설명하기 힘든 예술가 에세이다. 펑정지에가 예술적 뮤즈를 따라가는 느슨한 극적 전개에 창작을 위한 치열한 모색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즉물적 이미지들이 묘하게 얽혀들었다. 그가 가는 공간마다 그녀가 있다. 그런데 다시 돌아보면 그녀는 사라지고 없다. 꿈과 현실과 환상은 점차 경계가 와해되고 영화는 예술가의 궁극적인 내면으로 서서히 파고들어간다.

이 작품은 민병훈 감독이 펼치는 아티스트 시리즈 중 한편이다. 앞서 그는 단편 <감각의 경로>에서 현대화가 김남표를, <페르소나>에서 팝아티스트 마리킴을 다루었으며 차기작 <황제>에서는 젊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다룰 예정이다. 이번 작품에는 중국 여인의 초상 시리즈로 유명한 중국의 현대미술 거장 펑정지에가 직접 출연하여 영화를 이끈다. 저속하고 화려한 양식의 염속예술. 냉소적인 팝아트로 불리는 펑정지에의 예술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여성이다. 영화는 화가의 영원한 예술적 뮤즈인 여성(윤주), 그리고 그 여성이 좇는 예술가, 그리고 화가 펑정지에의 페르소나가 대상화된 남성(서장원) 이 셋이 서로 병행하거나 마주치는 공간의 이미지들을 영상에 담았다. 배우 서장원은 민병훈 감독의 <포도나무를 베어라>에 이어 차기작인 <황제>에도 출연하면서 감독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민병훈 감독의 영화는 피상적 현대성의 세계와 거리가 멀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예술성과 인간의 본질을 탐문하는 극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들을 제작해왔기에 유독 극장 개봉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상업영화 위주의 기존 배급 방식에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해온 민병훈 감독인 만큼 이번 작품에서는 대안적 배급 방식을 기획했다. 소수 극장 개봉 외에도 공동체 상영, 큐레이팅 기획 상영, 온라인 직거래 등을 시도하여 독립영화의 활로를 개척할 예정이라 하니 그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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