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이 두 번째 장편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5월4일 개봉하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다. 단편 <남매의 집>(2008)과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만든 장편영화 <짐승의 끝>(2010), 첫 장편 상업영화 <늑대소년>(2012)으로 이어지는 조성희 감독의 세계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초현실적인 풍경, 만화적이면서도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비주얼리스트의 탄생을 알렸다. 그런 그의 첫 탐정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역시 ‘조성희 월드’의 인장을 선명히 새긴 작품이다. 여전히 그 이후가 기대되는, 재기 넘치는 감독이 창조해낸 다크 히어로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의 리뷰와 더불어 조성희 감독, 주연배우 이제훈과의 만남을 통해 이 작품의 밑그림을 추리해보시라.

“저는 <말타의 매> 같은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재학 시절, 조성희 감독은 지도교수인 오승욱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씨네21> 911호). 그런 걸 누가 보겠냐며 오승욱 감독은 말렸다지만, 누아르 장르와 탐정영화에 대한 호기심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성희 감독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뒤, 그는 기어코 자기만의 탐정영화를 만들었다. 그 작품이 바로 조성희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이다.

할리우드 누아르영화의 영향

주머니에 캐러멜을 넣고 다니는 청년 탐정이 <탐정 홍길동>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탐정이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아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움직인다는 점이 다르다. 홍길동(이제훈)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어머니를 죽인 ‘그놈’의 얼굴이다. 졸개들을 취조하다 우연히 어머니를 죽인 김병덕(박근형)의 거처를 알게 된 길동은 그가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지만, 이미 김병덕은 누군가에게 납치됐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원수의 손녀들, 동이(노정의)와 말순(김하나)이다. 김병덕을 찾게 되면 아이들을 이용해 그를 협박하려던 길동은 김병덕의 흔적을 좇으며 어린 자매와 기묘한 동행을 하게 된다.

<탐정 홍길동>을 준비하며 조성희 감독이 떠올렸던 건 1950, 60년대 할리우드 누아르영화였다. 안개 자욱한 밤거리를 고독하게 걷는 탐정, 골목에서 어른거리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짙은 여운을 남기는 일련의 누아르영화들은 <탐정 홍길동>의 비주얼을 구현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음영이 드리워진 길동의 얼굴,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자동차의 뿌연 플래시라이트, 자욱한 안개 속에서 진행되는 액션 신은 이 영화의 무드를 조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건 누아르 장르의 분위기를 조성하되 노스탤지어의 정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빌리 배트>를 보며 그렇게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만화의 주인공 케빈이 그리는 만화 속 만화, <빌리 배트>를 보면 그 옛날 미국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장면마다 묻어나는 게 무척 근사하게 보였다. 그런 점을 우리 영화에도 반영하고 싶었다.”<탐정 홍길동>의 시간적 배경이 영화적으로는 불분명하게 묘사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굳이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정해놓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누아르 장르의 탐정물을 영화의 DNA로 삼고 있다고 하지만, <탐정 홍길동>의 홍길동은 샘 스페이드, 필립 말로 같은 누아르영화의 고전적인 탐정보다 조성희 감독의 인장이 더욱 선명하게 엿보이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길동에게는 한국과 해외를 막론하고 탐정을 다룬 수많은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던 마초성이 결여되어 있다. 담뱃갑 대신 캐러멜을 주머니에 넣고, 미녀 대신 아이들과 동행하는 길동은 가장 마초적인 장르 중 하나인 탐정물에 소년성을 덧입힌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중년의 향취를 풍기는 인물이 아니었으면 했다. 담배도 안 피우고, 욕도 안 하고, 부하직원을 윽박지르지도 않는 인물을 만든 건 개인적으로 그런 취향에 더 끌리기 때문인 것 같다”고 조성희 감독은 말했지만, 그런 인물을 보게 되기가 여전히 어려운 장르가 탐정물이라는 점에서 홍길동은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탐정의 조력자가 아이들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단편 <남매의 집>부터 <탐정 홍길동>에 이르기까지, 조성희 감독은 작품마다 아역배우들에게 일정 역할을 부여해왔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건 그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동이와 말순은 원수의 자손이라는 점에서 길동에게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적 긴장감을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거짓말이 특기’인 길동이 수사를 위해 위장 신분을 들이밀 때마다 특유의 솔직함으로 길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말순의 활약은 대단하다. 말순이 갇혀 있는 길동을 위해 작은 창으로 탈출해 총을 가져다주는 장면에서는 이 소녀가 언제, 어떻게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졸이는 이들이 많을 거라 짐작한다. <남매의 집>에서 낯선 자의 설득에 결국 방문을 열어주고 만 두 남매처럼, 가장 위험한 상황과 가장 천진난만한 존재들을 공존하게 해 영화의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데 조성희 감독은 남다른 재능이 있고, <탐정 홍길동>에서도 이러한 그의 장점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러나 탐정과 동행하는 인물이 어린아이들이라는 점은 동시에 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다. <탐정 홍길동>이 보여주고자 하는 탐정의 모습인 ‘나쁜 놈보다 더 나쁜’ 다크 히어로라는 특성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정없이 건달들에게 총을 쏘던 길동은, 동이와 말순이 무려 원수가 애지중지하는 자손들임에도 그들에게 온전히 냉정할 수 없다. 원수와 가장 가까운 존재들과 동행한다는 데에서 오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충분히 묘사되지 못했다는 건 <탐정 홍길동>의 가장 아쉬운 점이다. 아이들과 동행하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다크 히어로로서 홍길동의 잔혹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부족하다는 점도 캐릭터 묘사에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야기

“<살인의 추억>처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야기에 끌린다”는 조성희 감독의 말대로, <탐정 홍길동>은 속편에 대한 여운을 강하게 남기는 작품이다. “<공포의 외인구단> 속 마동탁”처럼, 번쩍거리는 안경에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화의 악당, 강성일(김성균)마저 사실은 거대한 퍼즐의 일부였다고 <탐정 홍길동>은 말한다. 본격적인 추리에 주목하기보다 고독한 청년 탐정이 과거를 극복하고 진정한 명탐정으로 탄생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그 뒷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두 번째 장편영화를 통해 초현실적인 풍경과 풋풋하고 만화적인 주인공, 개성 있는 조력자들을 선보인 조성희 감독은 다시 한번 ‘조성희 사가’의 다음 버전을 궁금해하게 만들었다. 최근의 한국영화계에서 상업영화를 만들며 이토록 선명하게 자신의 인장을 유지하는 감독이 드물다는 점에서, <탐정 홍길동>은 흥미로우며 주목해야 할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