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첩방은 전주의 나라, (중략) 얼굴이 이렇게 쉽게 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_-;) 전주국제영화제로 출장을 떠나기 전 문득 윤동주의 시가 떠오른 것은, 2000년 제1회 영화제를 찾았을 때의 숙소가 아직도 잊히질 않기 때문이다. 먼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당시 영화제로부터 제공받은 숙소가 아니었음도 밝힌다. 지금도 그 여관(이라고 적었지만 사실 여인숙에 가까웠던)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예약한 조그만 방에는 침대도 커튼도 없었다. 그런데 쓸데없이 창은 컸고 열대지방처럼 너무나 햇빛이 잘 들었다. 방구석 어디에도 비처럼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방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 대낮까지 잤더니, 정말 하루 만에 얼굴이 시커멓게 타 있었다. 만나는 지인들마다 “전주 오기 전에 어디 좋은 데로 휴가 다녀왔나봐?”라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선크림을 바르고 자라, 창 바로 아래 벽에 딱 붙어서 자라, 같은 빤한 얘기만 늘어놓았다. 그렇게 영화제 마지막날까지 땡볕에서 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일 원치 않는 선탠을 하게 만들었던 햇빛만 거슬렸던 것은 아니다. 침대나 커튼은 없었지만 좌식으로 앉아서 쓸 수 있는 컴퓨터가 있었다. 지금처럼 슬림형 모니터가 아니라 물론 그 당시에도 거의 사라지고 없던, 브라운관이 툭 튀어나온 거대한 모니터였다. 심지어 그걸 누가 훔쳐간다고 모니터가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그런데 키보드가 없는 걸로 봐서 도둑이 있긴 했던 것 같다. 모니터와 본체만 가지고 뭘 한단 말인가. 그리고 비디오데크에는 소비아 주연 <홧김에?>라는 제목의 비디오테이프가 꽂혀 있었다. 그런데 투숙객 중 누군가가 홧김에 뭘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테이프가 씹혀 있어서 빼낼 수도 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 찝찝한 기분으로 일행과 함께, 우리는 다방 커피가 아니라고 항변이라도 하듯 ‘원두커피’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는 카페에 들렀다. 주문을 했더니 바리스타, 아니 주인아주머니께서 커피와 함께 구운 한치를 함께 내오셨다. 아니, 대체 이 한치는 뭐냐고 물었더니 ‘원래 우리 가게는 차를 시키면 한치를 서비스로 준다’고 하셨다. 쿠키도 아니고 커피에 한치라니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래도 공짜로 뭘 더 주시니 좋았다. 거짓말 아니고 그렇게 해서 한잔에 천원이었다. 그게 바로 17년 전 정성일, 김소영 프로그래머가 있던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첫날의 기억이다.
이후 전주국제영화제를 찾는 것은 연중 가장 즐거운 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커피에 한치뿐인 줄 알았더니, 그보다 더한 맛집들이 많았다. 영화제에 머무르게 되는 열흘 가까운 기간에 단 한끼도 같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말그대로 ‘먹방’ 영화제다. 문득 1회 영화제를 떠올린 이유는, 그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봤던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올해의 폐막작이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류승완 감독의 얼굴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벌써 17년 전 일이라니(내 몸무게는 17kg 늘었다), 그동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영화제에 몸담았던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를 전한다. <씨네21>은 올해도 공식 데일리로 참가하여 총 9권의 데일리를 만든다. 나 또한 이번호를 마감하고 전주로 떠난다. 그럼 전주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