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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4월28일 개막, <씨네21> 기자들이 엄선한 추천작 (5)

<에바 노바> Eva Nova

마르코 슈콥 / 슬로바키아 / 2015년 / 106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스펙트럼

에바는 당대 최고 여배우였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화려했던 삶을 접게 된다. 어느덧 예순이 넘은 에바는 재활원을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연기 활동을 위해 언니에게 맡겼던 아들 도도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편 돈이 필요한 그녀는 마트에서 일하고 다른 사람의 집을 청소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려 한다. 연기 활동도 재개하기로 마음먹지만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화는 ‘한때’ 잘나가던 배우에서 평범한 혹은 그 이하의 삶을 살게 된 에바 노바의 노년을 따라간다. 카메라는 거울과 마주하는 에바의 그늘진 얼굴을 종종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빛을 잃은 그녀의 얼굴에서 들리는 소리 없는 외침이 인상적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달콤한 말은 에바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요원해 보였던 아들과의 화해는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를 불어넣는다. 2015 토론토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FIPRESCI) 수상작.

<코뮌 서울> Communes Seoul

유자경 / 한국 / 2016 / 90분 /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프랑스 중세의 주민자치제를 일컫는 코뮌은 1871년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해 수립된 혁명 자치정부 파리 코뮌을 통해 그 명맥을 이어갔다. 2000년 서울 한폭판에서 코뮌을 꿈꾸는 지식공동체 ‘수유너머’가 있다. 학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밥 먹고 강의 듣고 세미나를 꾸려온 수유너머는 2008년 이후 연구공간 운영에 대한 이견으로 수유너머 N, R, 남산강학원으로 분리되었다. <코뮌 서울>은 재개발 철거로 떠도는 수유너머의 이야기, 그 구성원들이 쏟아낸 말들을 따라간다. 자본과 노동, 철학,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과 철거와 개발을 반복하는 서울의 풍광이 반복되며 기이한 감흥을 자아낸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변명이 아니다.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들에 대한 기록도 아니다. 말과 현실,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격에 대해 한번쯤 되새겨보는 충돌에 관한 이야기다.

<아카펠라> A Cappella

야자키 히토시 / 일본 / 2016년 / 132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스펙트럼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 평화와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던 1969년의 일본. 열여덟살 교코도 친구들과 함께 교복 자율화 추진회를 조직해 거리로 나선다. 그러던 어느 날 교코는 클래식음악감상실에서 대학생 와타루와 유노스케, 그리고 유노스케의 여자친구 엠마를 만난다. 네 명의 청춘들은 자주 어울려 시간을 보내고, 와타루와 가까워진 교코는 사랑과 성에 눈뜨기 시작한다. 교복 자율화 운동에 앞장서는 의식 있는 여고생의 혁명기처럼 시작되던 영화는 이내 청춘들의 ‘절절한 러브 스토리’로 그 모습을 바꾼다. 동성애 이야기로 확장되는 과정이 썩 매끄럽진 않지만, 공들인 미장센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내러티브의 빈틈을 잘 메운다. 드라마 <1리터의 눈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인기 배우 나루미 리코가 교코를 연기했다.

<뮤즈의 아카데미> The Academy of the Muses

호세 루이스 게린 / 스페인 / 2015년 / 92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2011년 특별전, 2012년 디지털 3인3색 등 전주국제영화제와 연을 맺어온 스페인 시네아스트 호세 루이스 게린의 신작. <실비아의 도시에서>(2007) 이후 8년 만에 발표한 장편 극영화다. 바르셀로나 대학교의 낭만주의 언어학 교수 라파엘레 핀투의 강연을 담은 <뮤즈의 아카데미>의 처음은 얼핏 다큐멘터리 같다. 교수의 치열한 강의에 응수하듯 질문을 던지는 현장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뮤즈의 아카데미>는 명백한 픽션이다. 게린은 이미 전작 <실비아의 도시에서>를 통해 보여주었던, 공간 안에 자리한 사람들의 얼굴을 소상하게 비추다가 자연히 그들의 대화로 넘어가 서사를 구축하는 방식을 더욱 다양하고 견고하게 밀어붙였다. 카메라까지 맡은 감독과 사운드 스탭 두명만으로 이뤄진 촬영현장은 자연스러움과 치밀함을 동시에 획득했다. 예술 속 뮤즈의 개념을 경유해 사랑을 탐구하는 것처럼 보이던 영화는 학생과 학생, 교수와 아내, 교수와 학생이 나누는 대화들의 연속만으로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사르디니아의 목자시인들을 만나고 나폴리의 박물관과 아베르누스호를 방문하는 시퀀스들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1953)을 떠올리게 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디지털 리마스터링> Die Bad: Digital Remastering

류승완 / 한국 / 2016년 / 92분 / 폐막작

이례적인 선택이다. 2000년에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8분가량이 줄어든 버전이다. 이충직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선정의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으로 영화제로서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류승완 감독은 독립영화로 출발해 한국 대중영화계에 우뚝 선 감독이 아닌가. 그런데도 류승완 감독은 여전히 독립영화를 만들 때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 후배감독들에게 상징하는 바가 크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상당히 공세적인 작품으로 감독 자신에게도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와 류승완 감독은 지난 17년간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해왔다. 류승완 감독의 첫 작품을 보며 영화제를 처음 만들 때의 정신을 다시 한번 세워보자는 의미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공고를 졸업하고 취직을 못한 석환(류승완)과 성빈(박성빈)은 당구장에서 자신들을 비웃는 한 무리와 싸움을 한다. 석환을 말리다 성빈은 실수로 현수(김수현)를 죽이게 된다. 7년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출소한 성빈은 계속해서 현수의 환영에 시달린다. 그사이 경찰이 된 석환은 성빈을 피하고 성빈은 폭력 조직과 인연을 맺는다. 한편 석환의 동생 상환(류승범)은 동경의 대상이던 조직에 들어간 성빈을 통해 자신도 조직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한다. 영화는 끝내 연이은 난투극으로 석환, 상환 형제의 비극과 마주한다. 인물들이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역동성은 이후 류승완을 ‘한국 장르영화의 혁신’을 상징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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