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타VR의 치매체험 단편드라마 <당신의 기억은 안녕하십니까> 촬영현장.
고프로 hero4 카메라와 엔타니야 220도 렌즈를 활용해 360도 3D 영상을 촬영 중이다.
한국에서 VR 촬영은 아직 대중에게 생소하다. 그래서 벤타VR 전우열 대표와 광고 영상 제작회사 붕우의 노성언 감독, 두 VR 촬영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실전 VR 촬영 팁을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전우열 대표는 지난해 VR 단편영화 <타임 패러독스>를 제작한 바 있고, 노성언 감독은 동국대 예술대학원과 함께 ‘포스트 시네마’라는 VR 스터디를 진행하며 VR 영상을 찍고 있다. 아래 내용만 숙지하면 어디 가서 전문가인 척할 수 있을 것이다.
-VR 촬영에 최적인 카메라가 따로 있나.
=한국에서는 고프로(GoPro) 카메라가 많이 쓰이긴 한다. 작고 가벼운 데다가 비용이 경제적이니까.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소니 알파 A7이나 니콘 D5 같은 DSLR이 사용되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알렉사, 레드에픽 같은 영화 촬영에 주로 투입되는 카메라로 찍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드물다(크고 비싸니까). 이처럼 VR 촬영을 위해 태어난 카메라는 따로 없다. 또, VR 촬영에서 카메라 기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그 이유는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에 있다).
-카메라가 많을수록 영상의 완성도가 좋아지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카메라 종류와 숫자는 영상의 완성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카메라를 1대 쓰든, 100대 쓰든 360도 방향의 공간을 꽉 채워서 촬영하면 그게 VR이다. 최근 출시된 LG 360 캠에서 광각렌즈를 달면 화각이 무려 200도까지 지원되는 까닭에 두대만 있어도 360도를 찍을 수 있다. 개수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에도 카메라를 많이 장착하는 건 스티칭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함이다. 스티칭 작업은 각각의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작업이다(뒤에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카메라가 많을수록 스티칭 작업량이 많아지지만, 그만큼 영상의 왜곡은 덜하기 때문에 연결 작업이 수월하다.
360도 방향의 모든 공간을 화면에 담아내고, 관객(감상자)이 어느 공간의 화면을 먼저 볼지 모른다는 점에서 VR는 프레임이라는 경계가 뚜렷한 영화와 상당히 다르다. 붕우의 노성언 감독은 “프레임 안에 있는 시간과 공간만 신경쓰는 전통적인 영화와 다른 차원의 시간과 공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를 촬영할 때 프레임에 보이는 공간만 신경쓰면 되지만, VR은 모든 공간을 이야기나 설정에 맞게 찍어야 한다는 얘기다.
-어안렌즈가 VR 촬영에 정말 효과적인가.
=어안렌즈(fish-eye lens)는 사각이 180도가 넘는 초광각렌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수면을 볼 때 180도 시야를 가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볼록 튀어나온 렌즈 모양이 물고기 눈을 닮기도 했다). VR 촬영할 때 어안렌즈가 즐겨 사용되는 이유는 적은 수의 카메라로 360도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칭 작업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든다. 하지만 웬만한 광각렌즈보다 화상이 비뚤어지게 찍히다보니 이미지가 왜곡되는 건 단점이다. 카메라가 많으면 표준렌즈를 사용하면 된다.
-카메라는 어떤 방식으로 리그에 장착해야 하나.
=카메라에 담기는 데이터양을 고려해 보통 10~16대가 리그에 장착된다. 카메라를 리그 장비에 장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원형이든, 5각형이든 360도 방향의 모든 풍경을 찍으면 된다. 양안 시차(좌우 눈의 간격)가 6cm가량인데, 카메라간의 거리가 시차보다 길수록 피사체의 좌우 움직임이 커지니 카메라간의 거리를 가깝게 장착하는 게 중요하다. 카메라 지지대를 세우는 공간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까닭에 따로 촬영해야 한다. 아무리 카메라에 잘 장착해 찍더라도 피사체가 움직이면 이미지 왜곡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최근 릭스(Lix)가 개발한 ‘왜곡 없는 VR 촬영을 위한 팬스티칭 카메라 리그 시스템’은 이름대로 이미지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특수 리그라고 한다. 노성언 감독은 “아직 특허 출원을 준비하고 있어 자세한 리그 운용 원리를 밝힐 수 없지만, 카메라 패닝(panning)처럼 리그에 장착된 카메라가 움직이는 피사체를 따라 움직이는 원리라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촬영보다 스티칭 작업이 더 중요하다던데 사실인가.
=그렇다. 유튜브 같은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VR 영상들을 보면 공간만 촬영되어 있거나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카메라에서 일정 거리 떨어진 채 찍힌 경우가 많다. 공간만 촬영되어 있는 영상은 감상자에게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VR 영상에서 움직이는 피사체(인물, 동물)가 카메라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스티칭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다. 앞에서 짧게 언급한 대로 스티칭 작업은 각각의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자연스럽게 이어붙이는 후반작업이다. 멀리 있는 풍경은 이어붙이기가 쉬운 반면, 피사체가 카메라와 가까이 있거나 카메라와 카메라의 경계에서 움직일 경우 각각의 영상을 연결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전우열 대표는 “나무나 건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피사체가 왜곡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움직이는 인물이 왜곡되면 화면이 이상하게 보인다”며 “그래서 촬영하기 전부터 스티칭 작업을 고려해 인물을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칭 작업은 크게 4가지 과정으로 진행된다. 먼저, 스티칭 작업을 하기 전에 각각의 카메라가 찍은 영상들을 180도 화면에 연결해 붙여놓는다. 360도 영상이 평면의 화면에 펼쳐놓은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다. 그 이미지를 스티칭 프로그램에 불러내 360도 공간 안에 자동으로 심어놓는다. 영상의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를 보면서 조명, 색, 형태 같은 왜곡된 부분을 일일이 찾아 보정한다. 그렇게 작업한 360도 영상, 자막, 움직임, 컴퓨터그래픽(CG) 모두 합성하면 작업이 끝난다.
-조명과 사운드도 영상처럼 360도 모두 고려해 설계되어야 하나.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360도 공간 모두 카메라에 담기는 까닭에 조명을 세팅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게 사실이다. 화면에 조명이 보이면 안 되니까. 모든 영상을 자연광으로만 찍을 수도 없지 않나. 그럼에도 조명을 세팅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전우열 대표는 “360도 공간 전부 한꺼번에 찍지 않고 각각 120도로 공간을 세개로 나눠서 순서대로 찍었다”고 밝혔다. 120도씩 촬영해 스티칭 작업에서 연결했다는 얘기다. 조명을 전부 세팅한 뒤 후반작업에서 조명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삭제하는 방법도 있다. 노성언 감독은 “이런 경우에는 조명을 어디에다 세팅할 건지 후반작업팀과 치밀하게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명만큼이나 사운드 설계도 꽤 복잡하다. 일반영화에서 사운드는 프레임을 기준으로 크게 화면 안 소리와 화면 밖 소리 그리고 음악을 신경쓰면 된다. 하지만 VR은 360도 공간 모두 등장하는 데다가 감상자가 어떤 공간과 이야기를 어떤 순서로 보는가에 따라 소리 역시 달라져야 한다. 한 사운드 디자이너는 “소리가 단순히 평면 프레임에서 360도 공간으로 확장된 개념이 아니다. 사용자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앞뒤좌우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의 방향과 거리감까지 설계해야 하는데, 당장 그걸 구현하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