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의천도룡기>를 추억하며, 알파고의 승리를 지켜보며
주성철 2016-03-18

<씨네21>의 이번호 특집은 ‘중드’다. 지난해 말부터 화제였던 <랑야방: 권력의 기록>을 시작으로 <씨네21>의 알파고 윤혜지 기자가 쓴 친절한 입문기를 따라가보시길. 단순히 ‘무협 드라마’일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에게, 스타일도 물량도 우리가 생각했던 수준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게 단 하나의 중드를 꼽으라면, 엄밀하게 말해 TVB 방송국의 ‘홍드’라고 할 수 있는 추억의 <의천도룡기>(1986)다. 장무기로 출연한 양조위, 그의 아버지 장취산으로 출연한 임달화 모두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몇회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성인이 된 장무기 역의 양조위가 물속에서 어푸어푸하며 섹시하게 일어나 화면을 자신의 얼굴로 꽉 채우던 그 회의 마지막 정지화면이 잊히지 않는다. 양조위라는 대스타가 탄생하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중경삼림>에서 경찰관 양조위가 모자를 벗으며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의 왕정문 앞으로 걸어올 때의 그 정면 숏과 맞먹는 ‘심쿵’ 장면이었다. 그리고 네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양조위가 보여준, 그 특유의 어찌할 줄 모르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표정은 이후 <비정성시>와 <해피 투게더> 등에서 보게 되는 그 모습 그대로다.

물론 가장 빠져들었던 배우는 바로 조민 역의 여미한이다. 이후 특별한 영화 출연작이 없어 기억하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의천도룡기>에서만큼은 최고였다. 이를 계기로 양조위와 실제 사귀기도 했었다. 그리고 무려 30년 전 드라마라 완성도는 지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영웅본색>의 택시회사 사장으로 유명한 증강이 금모사왕 사손으로 출연했는데, 금발 사자머리 가발하며 사자후를 내뱉을 때의 금이빨 등 이제는 귀엽다고 말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황당하다. 한국의 영조와 정조, 위화도회군과 임진왜란이 그러하듯 중드도 세월이 흘러 계속 새로운 얼굴로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특집에서 확인하시길.

한편, 알파고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영화들을 묶어 여러 기사들이 쏟아졌지만, 내가 무심히 떠올린 영화는 <로봇 앤 프랭크>(2012)였다. 왕년의 금고털이범이었던 프랭크(프랭크 란젤라)는 자신의 전성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열쇠를 따는 로봇 VGC-60L을 보면서 든든한 ‘공범’으로 끌어들인다. 바둑도 도둑도 로봇이 월등한 것이다. 이번에 흥미로웠던 것은 중계 태도였다. 거의 모든 방송국에서 대국 중계를 했는데, 대부분 알파고를 ‘얘’나 ‘쟤’로 지칭하며 똘똘한 어린이처럼 묘사했다. 심지어 어떤 해설자는 “이 아이가 저 자리에 둘 줄은 몰랐네요”라고 말해서 아찔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놀라운 대결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고 우리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한 방송국의 제목처럼 감히 ‘인공지능의 도전’이 아니라, <무한도전>의 레전드 편 중 하나인 인간과 지하철의 달리기 시합을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니 알파고 함부로 얘나 쟤라 부르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네번이나 이겨본 사람이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