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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그렇게 끝없이 사랑 앞에서
정지혜 사진 백종헌 2016-02-22

<남과 여> 전도연

사랑에 관해서라면, 마땅히 전도연에게 물어야 했다. 스크린의 전도연은 사랑의 기척을, 감정의 행간에 묻어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예민하게 읽어내려왔다. “인간은 다 복합적이지 않나. 시나리오를 읽을 때면 활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마음을 느끼게 되니까 그걸 또 표현해보고 싶고. 관객도 함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을 온전히 믿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랑이라는 게 있을까. 그런데도 영화로든, 책으로든 ‘사랑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 그래서 계속 좇게 된다.” 확신은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신기루 같은 사랑으로의 출구를 향해 전도연은 무수한 두드림을 이어왔다. 그래서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이라는 한 가지 이야기에 꽂혀 그것만 말해온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장르나 인물이 처한 상황 때문에 내가 변신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내가 한 이야기는 사랑이었다 .”(한 예로 <피도 눈물도 없이>(2002) 때도 전도연은 액션 누아르물 속의 ‘수진’이라는 인물에 앞서 멜로의 감성을 지닌 ‘수진’ 역에 대해 말했다.)

<남과 여>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상민 역시도 사랑 앞에 무력하다. 전도연은 “연기한 역할 중 가장 정적인 캐릭터”라고 말하며 상민을 쉽게 속을 읽을 수 없는 여자라고 말한다. “상민은 삶에 소극적이고 표현하기보다는 안에 담고 있는 게 더 많은 여자다. 차갑고 건조해 보이기까지 한. 인간 전도연과는 성향적으로 많이 달랐다. (<멋진 하루>(2008)와 <남과 여>를 함께 작업한 이윤기 감독은 전도연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불같은 열정을 지닌 배우’라고 일러준다.) 그런 상민이 되게 매력적으로 보이더라.” 상민은 디자인숍을 운영하며, 남편은 정신과 전문의다. 자폐증 아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아이에게 집착”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아이의 치료차 방문한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그녀는 불현듯 기홍(공유)이라는 유부남과 맞닥뜨린다. 그것을 사랑의 순간이라고 말해도 좋다. “예기치 못한 사고 같은 만남이다. 누구나 한번쯤 예상 밖의 사랑을 꿈꾸지 않나. 핀란드에서의 만남은 상민에게 판타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에서 기홍과 재회했을 때 상민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전도연은 <남과 여>를 제안받고 어떻게든 상민을 외면해보려 한 때가 있었다. “<하녀>(2010) 촬영 때부터 접한 작품이었다. 이윤기 감독님의 영화적 정서를 지지하지만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아 두세번 고사했다. (기혼 남녀의 사랑이라는 데) 관객이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고 상민을 연기할 때 감정적으로도 쉽지 않아 보였다. 나 자신, 관객에게 상민의 감정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의 문제도 있었고. 그런데 아무리 밀어내도 자꾸 시나리오가 내 옆에 와 있더라. 운명적인 끌림이었다.”

<남과 여>는 지난해 전도연의 작업들과 하나의 집(集)으로 묶일 만하다. <협녀, 칼의 기억>(2014), <무뢰한>(2014), <남과 여> 순으로 촬영을 거듭하면서 그녀는 장르적 변주 안에서 자기식의 멜로 서사를 다지는 듯 보였다. <무뢰한>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평단의 애정 어린 격려를 받기도 했고, <협녀, 칼의 기억>에 쏟아진 아쉬움의 말들을 감내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고르는 내 기준이 뭘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더라. 이야기(아마도 영화의 중심 ‘사건’일 것이다) 속의 인물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 안에 이야기가 있는 편을 더 선호해왔다. 그 경우에 배우도 연기하기가 쉽지 않고 관객도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건 하나에 기대 끝까지 달려가는 스토리텔링보다 전도연은 인물의 내적 여진에 리액션을 하고 그것으로 액션을 만들어가는 데 더 마음이 갔다. 하지만 전도연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누군가는 나보고 ‘독고다이’라고 하는데 인정한다. (웃음) 그렇지만 배우는 자기 세상에 갇혀 작업할 수 없다. 내가 아티스트는 아니잖나.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니 올해는 적응을 좀 해보려고 한다. 좀더 이야기에 집중하는 작품을 만나고 싶어졌다. 잘할 수 있을까. 앞으로가 좀 막막하긴 하다.”

푸념과 걱정을 뒤섞어내도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전도연이라면 늘 그래왔듯, 야물딱지게 다 해보일 것이라고. “드라마를 할 것 같다. CF모델로 시작해 TV드라마로 데뷔했던 내게 드라마는 해야 할 숙제였다. 내가 힘든 작품을 즐겨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니다. 드라마에서조차 영화처럼 힘든 역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 말을 힌트 삼아 그녀의 시도가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해본다. “인물의 감정보다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보면 배우는 좀더 소모적으로 쓰일 수 있다. 그때조차도 내가 아직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뭘까를 고민하며 연기해야겠지. 아직 못 해본 이야기가 너무 많다.” 여전히가 아니다. 전도연은 그렇게 끝없이 사랑 앞에서, 영화 안에서 뜨거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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