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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 눈으로 말해요
윤혜지 사진 최성열 2016-01-25

<오빠생각> 이희준

사람들 몰래 쓰레기통을 뒤지다 들킨 길고양이 같은 눈을 가진 남자. 매번 “캐릭터를 만들 때 눈부터 시작한다”는 이희준은 ‘갈고리’를 그런 남자라고 상상했다. “너무나 선량한 눈을 타고나서 사나운 인상을 주는 게 정말 어려웠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이희준이 연기한 <오빠생각>의 갈고리는 당대의 불안과 결핍을 스치는 순간들마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선하고 사려 깊은 인물들의 영화인 <오빠생각>에서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불길함을 안기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갈고리는 한때 군인이었지만 전투에서 손을 잃은 뒤 고아들을 데려다 수족처럼 부리며 돈을 벌게 한다. 돈을 모으기 위해 권력자에게 빌붙거나 친일파 후손에게 고개 숙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음 한곳엔 일말의 도의와 꼿꼿한 자존심을 숨겨둔 남자다. 전쟁통의 아비규환을 그리면서도 이한 감독은 갈고리를 끝내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이희준의 말에 의하면 갈고리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분명 그때에 살았음직한 인간”이다. “현장에선 갈고리의 인간적인 모습도 많이 촬영했다. 데리고 있던 아이가 죽자 그 뼛가루를 강에 뿌려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죽을 배식하는 장면도 있었다”고 했다.

공학을 전공한 이희준은 A와 B 없이는 C의 도출을 상상하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이다. “일상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무엇이 원인이 돼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거꾸로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보기를 하나씩 소거해나가다보면 해답이 나오게 마련이다.” 캐릭터에 임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서 캐릭터와 비슷한 모습을 끌어내기보다는 온전히 그 캐릭터가 되어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 인물이 아침엔 어떻게 일어날까, 지금 이 시간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밥 먹고 난 뒤엔 뭘 할까를 생각한다. 이건 배우로서의 영업비밀인데(웃음), 거울을 보며 그 인물로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장 보기 싫은 모습을 찾으려고 한다.” 갈고리도 마찬가지였다. 외팔 연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끼리 만든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이름으로 올린 연극 <나와 할아버지>(2014)에서 착안했다. 상대역인 할아버지가 다리를 잃은 6•25 전쟁 참전용사라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갈고리라면 팔이 없지만 팔이 있는 것처럼 행세할 것 같지 않나. 남자들끼리 있을 땐 부러 갈고리팔을 더 드러내지만, 주미(고아성)가 오면 슬그머니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팔을 뒤로 빼고 있다. 그래도 여자 앞이라고. (웃음)” 일례로 한상렬 소위(임시완)가 그의 막사를 찾아왔을 때, 갈고리는 초라한 막사가 마치 궁전이나 저택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한다. 고작해야 몰래 훔쳐낸 물건인 것을, 제 재산이라도 되는 듯 가지런히 정리해두고는 고르고 골라 한 소위에게 버번을 대접하는 그 모습이 퍽 우습고 짠하다. 손가락으로 술병을 가리키며 “뭐 마실래, 버번?”이라고 한마디 하는 그 찰나에 이희준은 갈고리의 자기애와 욕심, 야망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 장면이 애드리브였다는 건 그래서 더 놀랍다. 아니, 갈고리라는 캐릭터를 그가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무심코 갈고리로서의 모습을 내비치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한주 차이로 이희준의 다른 영화도 개봉한다. <로봇, 소리>에서 그는 위성 찾기에 몰두하는 국정원 직원 진호로 출연한다. ‘눈 이론’은 진호에게도 적용된다. “직업상 위성을 회수해야 되니까 열심히 해관(이성민)을 방해하는 역할이다. 회사 방침에 따라 정확하게 방해하고, 방해하다 영화가 끝난다. (웃음) 그러니 진호라면 내가 전부 다 안다는 식의 눈빛을 가졌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 내 손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그런, 재수 없는 눈빛?” 아직 제목을 공개하긴 이르지만 4월에 있을 결혼식 전까지 촬영을 마칠 차기작도 정해뒀다고 한다. 경사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이희준의 표정과 태도엔 내내 여유와 너그러움이 넘쳤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기보다 더 먼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3년 뒤엔 “어머니 환갑에 맞춰 어머니와 함께 그림 전시를 열겠다”는 개인적 소망이라든지, “쉰살 즈음엔 해온 작품들을 되돌아봤을 때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고, 그래서 어떤 선택들을 해왔는지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돼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친다. 이따금씩 놓일 “망설이는 순간들”에 이희준이 선택하게 될 것들이 궁금하다. “스타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서로 상처주는 일 없이 즐거운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라면, 적어도 나쁜 선택은 하지 않으리라 기대를 걸어본다. 끝내 나쁜 사람은 되지 못했던 갈고리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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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박상윤(stylestory)·헤어 윤상아(끌로에)·메이크업 김정남(끌로에)·의상협찬 아르코 발레노, 프리페 by 미소페, 브로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