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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풀 하우스
김혜리 2016-01-21

※<헤이트풀8>의 결말을 포함한 상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산제이의 슈퍼 팀>

<인사이드 아웃>에서 처음으로 공주 아닌 여성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픽사가 이제 문화적 다양성에도 시선을 돌리는 것일까? <굿 다이노>와 묶어 상영 중인 단편 <산제이의 슈퍼 팀>은 인도계 소년과 아버지의 이야기로 백인 아닌 인간 캐릭터가 주역인 픽사 최초의 작품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한 산제이 파텔 감독의 자전적 회고담인 <산제이의 슈퍼 팀>은, 가족의 힌두교 전통에 거리감을 느끼던 인도계 미국 소년이 아빠의 신을 친근한 애니메이션 우주로 끌어들여 슈퍼 히어로로서 사랑하게 되는 일화를 그린다. 부모에게는 신앙인 종교가, 자식들에겐 문학일 수도 있다. 한 거실에서 화목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지 않겠냐고 파텔 감독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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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풀8>에 대한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나씩 적어보기로 한다. 일단 <헤이트풀8>의 앙상블이 여덟명이 맞긴 한가? 어느 모로 보나 ‘헤이트풀’하지 않은 마부 오비(제임스 파크스)와 마룻장 밑에 숨어 있던 1인을 빼고 꼽아보면 딱 여덟이다. 8과 1/2명이라고 해도 좋다. 솔직히 조 게이지(마이클 매드슨) 같은 인물은 극적 역할이 분명치 않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 8번’이라는 타이틀과 운을 맞추려는 고집의 소산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여덟 번째 장편은 확실한가? <킬 빌> 1, 2부를 각각 온전한 한편의 영화로 치면 <헤이트풀8>는 타란티노의 여덟 번째 장편이 맞다. 옴니버스 <포 룸>과 <그라인드하우스>의 중편까지 꼽으면 역시 8과 1/2 언저리에 해당한다. 타란티노는 열편을 찍으면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그때 가서 다시 <킬 빌> 2부작을 한편으로 친다고 번복해도 1인 시위에 나설 관객은 없을 거다. 여덟편이건 여덟편 반이건 필모그래피가 쌓임에 따라, 팝 문화와 과거 영화들을 바쁘게 실어 나르던 타란티노 영화의 인용 대상은 본인의 전작도 포함하게 됐다.

나는 <헤이트풀8>를 한줄로 요약해야 하는 지면에 전작을 본 관객이라면 쉽게 떠올릴 법한 ‘저수지의 장고’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저수지의 개들>은, 인물 한명 한명의 이름을 챕터 제목으로 삼아 각자의 플래시백과 현재진행 중인 상황이 퍼즐을 맞추어가는 형식이라 <헤이트풀8>와는 다르다(6장으로 구성된 <헤이트풀8>는 제5장에 플래시백을 몰아넣었다). “누가 그랬나?”를 밝히는 후더닛(whodunit) 미스터리라는 점을 <저수지의 개들>과 공유하지만 추리 스릴러로서 <헤이트풀8>의 수수께끼는 대단치 않고 영화의 주된 관심사도 아니다. 독살의 단서는 애초에 관객에게 공유되지도 않으며, 일행이 도착하기 전 잡화점에서 일어난 사건도 밀고 당김 없이 한꺼번에 통째로 제시된다. 사실을 말하자면 관객 역시 답이 중요하지 않음을 안다. 눈보라 속 잡화점에 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커트 러셀)와 마커스 워렌(새뮤얼 L. 잭슨), 흉악범 데이지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 보안관 크리스 매닉스(월튼 고긴스)가 들어서는 순간 타란티노를 아는 관객은 직감한다. 타란티노는 어차피 거의 모두를 죽일 것이다. 문제는 어떤 순서로 어떻게 죽느냐다. 약한 불 위에서 서서히 끓어오르는 뚜껑 덮인 여러 개의 냄비 중 어느 냄비가 먼저 넘칠 것인가? 조디(채닝 테이텀)가 도머그 일행을 맞이하며 동료들에게 명심시키듯 이 게임의 이름은 인내다(“The name of this game is patience”). 한편 타란티노는 <헤이트풀8>를 장고의 후일담으로 구상했지만 그렇게 설정하고 나니 방정식이 깔끔하게 성립하지 않아 고쳤다고 한다. 장고는 살아남을 거라는 관객의 예측을 꺼린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저수지의 개들>이나 <장고: 분노의 추적자>(이하 <장고>)보다 <헤이트풀8>와 더 비슷한 타란티노의 과거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의 오프닝과 트럼프 게임 시퀀스라고 할 수도 있다. 악명 높은 나치 장교 란다(크리스토프 왈츠)가 프랑스 농부의 집을 찾아와 이웃 유대인 가족이 숨어 있는 지하실 위에서 장광설로 협박하는 <바스터즈>의 도입 시퀀스는 2차 대전기 유럽 전역의 유대인이 맛보았을 공포를 오로지 테이블 위의 대화로 체험하게 만든다. 여기서 란다는 허풍과 거짓말, 일화를 빌려 혐오와 정치관을 압축해 쏟아내는데 <헤이트풀8>의 대사가 갖는 기능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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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풀8>는 연극적인가? ‘영화적’이지 않다는 뜻이라면 동의할 수 없지만, 무대극 스타일을 전폭 채용했고, 극장 체험의 측면을 감독이 중요시했다는 의미라면 맞다. 어찌 보면 <헤이트풀8>의 다른 키워드는 ‘극장’일지도 모른다. 타란티노는 2년 전 <헤이트풀8>의 시나리오가 유출되자 제작을 포기했다가 각본 낭독회의 좋은 반응에 고무돼 다시 영화에 착수했고, 장차 연극으로 무대에 올릴 뜻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00개 극장에서 70mm 필름 로드쇼 상영을 하며 옛날풍으로 서곡과 중간 휴식시간을 두어 관객이 중간에 이야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객석에 복귀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미니의 잡화점을 무대를 연상시키는 원룸 구조로 디자인한 데에는 울트라 파나비전 70mm라는 광활한 포맷이 작용했다. 따라서 <헤이트풀8>의 블로킹은 다분히 연극적이고, 어떤 경우건 세트의 반 이상이 화각에 잡히므로 조명도 곳곳을 밝힌다. 식탁 위에는 수직 라이트가 떨어지고 첫 번째 죽음 이후 인물들은 등잔과 촛불을 ‘무대’ 구석구석에 놓는다. 연극 관객처럼 우리는 근경의 대화와 원경 인물의 움직임에 동시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데 연극에서 그렇듯 대화 당사자 이외의 배우들은 대체로 침묵한다. 이것은 조금 부자연스런 인상을 주는데 그 사이를 메우는 데 커피가 지대하게 공헌한다. 인물들은 커피 원두와 물을 찾고 맛을 품평하며 적잖은 시간을 보낸다(타란티노가 커피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펄프 픽션>의 지미(쿠엔틴 타란티노)네 집 장면에서 익히 입증된 바 있다). 이 밖에도 <헤이트풀8>는 3장 이후에 단일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의 기교를 서슴없이 들여온다. 고장난 빗장은 새 인물들의 등장에 매번 코믹한 방점을 찍고, 바깥 날씨는 외관 인서트 대신 지붕 사이로 흩날리는 눈발과 바람 소리로 줄곧 암시된다. 쓸데없이 먼 마구간의 위치도 몇몇 인물이 ‘무대’를 벗어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사건의 진도가 순조롭게 나갈 수 있도록 안배한 배치로 보인다. 로드쇼 형식으로 <헤이트풀8>를 관람할 수 있는 나라의 관객은 중간 휴식 직후 “15분 후…”로 시작되는, 쇼의 주최자 타란티노의 내레이션을 일종의 ‘마중’으로 받아들일 터다. 이와 같은 구성과 블로킹, 콘티가 가장 경제적이고 아름다운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재미있는 도전이자 즐길 만한 서비스임은 분명하다. 타란티노는 그렇게 남북전쟁 후 미국의 갈등과 불신을 한눈에 조감하게 만드는 극장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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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질문. <헤이트풀8>는 여성혐오적인가? 앙상블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데이지 도머그는 확실히 제일 지독한 꼴을 당한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도머그가 다른 ‘헤이트풀’한 남성 인물보다 이 영화에서 부드러운 대접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차별일 것이다. 도머그는 침, 피, 주먹, 스튜, 급기야 혈육의 혈육(血肉)까지 이 영화가 뱉어내는 모든 찌꺼기를 얼굴로 받아낸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기죽거나 여성성을 빌미로 자비를 호소하지 않는다(그녀가 겪는 폭력 중 성적인 추행은 없다). 그러기는커녕 도머그는 도발하고, 코피를 흘리며 멍든 눈으로 윙크하고, 부러진 앞니를 뱉고, 자신의 혐의가 적힌 영장을 훈장인 양 자랑스럽게 훑어본다. 가로로 넓고 피부 표현이 적나라한 <헤이트풀8>의 화면은 배우의 클로즈업을 험한 산과 계곡의 풍경처럼 보여주는데 첫 번째로 실현된 예가 마차에서 주먹을 맞은 직후의 도머그의 얼굴이다. 다음 순간 카메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도머그의 푸석한 얼굴에 한동안 머문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곧 이 영화의 모든 동력이 최약자로 보이는 도머그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니거’라는 극히 거북한 말을 밥 먹듯 대사로 넣는 타란티노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그가 성차별주의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팸 그리어의 <재키 브라운>과 우마 서먼의 <킬 빌>을 창조한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캐릭터로서 도머그는 여덟, 혹은 아홉 인물 가운데 단연 독창적인 악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천방지축 어린아이인가 하면 가수이고 협상가이며 무엇보다 무리 중 다른 누구보다 거짓말에 능하고 대담한 ‘배우’다. 덧붙이자면 <헤이트풀8>의 제니퍼 제이슨 리는 조연상뿐 아니라, 역대 최고의 경청 연기를 한 공적으로 기념돼야 마땅하다. 다른 인물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동안 한손이 수갑으로 결박된 채 빈틈없이 리액션하는 그녀를 보라!

여성 묘사의 문제로 돌아가자. 도머그가 이 영화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는 아니다. 오전으로 플래시백하는 5장 ‘네명의 승객’에는 백인 남편과 당당히 잡화점을 경영하는 흑인 여성 미니(데이나 고리에)와 종업원 젬마(벨리다 오위노), 그리고 뉴질랜드계 마부 식스호스 주디(조이 벨)가 등장한다. 세 여성은 긍지를 갖고 본인의 일을 즐기며 이방인에게 쾌활한 호의를 베푼다. 미니와 젬마, 바에 걸터앉은 주디를 잡은 숏은 <헤이트풀8>를 통틀어 유일하게 평화로운 이미지다. 굳이 <헤이트풀8>가 공격하는 표적을 찾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남성성 쪽이다. 처음도 아니지만 타란티노는 흑인 남성의 성적 기능에 대한 가십을 늘어놓는 취미가 있다. 영화의 3장을 마감하는 총격전은 마커스 워렌이 남군 퇴역 장군 스미더스(브루스 던)를 도발해 일어난다. 도발의 방아쇠는 스미더스의 아들 체스터를 혹한의 벌판에서 성폭행하고 죽인 추억담이다. 그리고 이어진 제4장은 워렌의 성기가 역습의 총탄에 공격당하는 순간 종료된다. 앞서 워렌은 담요를 보상으로 체스터의 얼굴 앞에 들이댔던 성기를, 북군이 흑인 병사에게 지급한 제복과 마찬가지인 가짜 희망에 빗댄다. 잠시 후 영화는 그 물건을 난사한다. 우리는 비유를 늘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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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이다. 마커스 워렌이 소중히 품에 넣고 다니던 링컨 대통령의 편지는 진짜였을까? 우선 <헤이트풀8>에서 진술의 참과 거짓은 궁극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을 전제하자. 크리스 매닉스가 본인 주장대로 레드락의 신임 보안관인지, 킬러 열다섯명이 정말 도머그를 구출하러 오고 있는지, 관객은 끝까지 확인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영화에서 링컨의 편지를 처음 입에 올리는 인물은 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다. 워렌이 건네준 종이를 루스는 경건히 받아든다. 무자비하기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인물들 가운데 루스는 그나마 평등과 법치를 존중하려는 <헤이트풀8>의 리버럴이다. 아니 적어도 리버럴이 되고자 애쓰는 인물이라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그는 현상금 사냥꾼이지만 형 집행은 법의 손에 맡긴다는 원칙이 있고 얼어 죽을 지경의 사람들을 어쨌거나 외면하지 못해 마차에 태우며, 워렌을 ‘니거’ 대신 ‘블랙 펠로’라 부른다. 피를 토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죽음을 막는 고귀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한데 워렌이 그토록 애장하던 링컨의 편지가 가짜라고 말하는 시점은, ‘리버럴’ 루스가 의심을 드러낸 직후다. 매닉스가 ‘니거’가 대통령의 펜팔이라니 어불성설이라고 조소하자 루스도 좌중의 동요에 휩쓸려 “사람들 말대로 너희 종족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군”이라고 신뢰를 거둔다. 이에 워렌이 불쑥 편지는 가짜라고 확인해주며 루스의 나이브함을 비웃는다. 그리고 당신은 흑인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모른다고 못 박는다. 그런데 “어차피 당신이 대화해본 흑인이라고는 나뿐이겠지만”이라고 전제하는 워렌의 어조에는 너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허탈한 위악이 어려 있다. 어쩌면 편지는 진짜였고 워렌은 루스의 제스처뿐인 존중에 환멸을 느껴 고발에 수긍한 것인지도 모른다. 편지가 가짜라고 말한 직후 돌연 흑인 학살자 스미더스를 죽이기 위해 포석 깔기에 들어가는 워렌의 행동도 이 가설에 부합한다. 반면 링컨의 편지가 정말 백인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워렌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라스트신에서야 전문이 공개되는 편지의 구절구절에 포함돼 있을 흑인 장교 워렌의 희망과 상상이 다른 여운을 남긴다. 죽음 앞에서 편지를 읽어 내리던 매닉스가 “이 대목 실감나네”(Nice touch)라고 칭찬할 때 워렌은 낄낄댄다. 혹시나 편지가 진짜였다면 그는 마지막으로 매닉스를 비웃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도 처참히 죽어가는 중인 두 인물이 총을 쓰지 않고, 굳이 힘들게 법에 규정된 방식으로 도머그의 형을 ‘집행’하는 <헤이트풀8>의 대단원에는 카타르시스가 전무하다. 그러나 밀폐된 ‘포스트 남북전쟁 극장’에 갇힌 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의로운 행위의 범위는 거기까지다. 한 생명이라도 덜 해치는 것이 정의라는 휴머니즘적 사고방식은 이 카오스 한참 너머에 있다. 이 결말은 다시, <헤이트풀8>가 오마주를 바치고 있는 <괴물>(1982)의 마지막 광경과 포개진다. <괴물>에서 생존한 흑인(키스 데이비드)과 백인(커트 러셀) 두 남자는 주고받는다. “우리도 죽겠지?” “죽는 게 맞는 일이겠지.” “그래도 잠시 기다려볼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반목과 불신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지평에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헤이트풀8>의 관객은, 다가오는 사신의 발걸음을 세는 피투성이 두 인물과 더불어 적막 속에 갇힌다. 타란티노는 이 미결의 시간을 영화의 끝을 넘어 현재까지 연장하는 데에 성공한다.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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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유명한 스티브

<스티브 잡스>에서 뜻밖의 캐스팅은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사고 친 후에> 등의 코미디로 유명한 배우 세스 로건이다. 그가 연기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고등학생 스티브 잡스와 처음 만나 애플을 공동 창립한 동료이며, 3장 구조로 에런 소킨이 구성한 <스티브 잡스>에서 15년에 걸쳐 잡스 주변을 공전하는 여섯 주변 인물 중 한명이다. 코미디 전작에서와 비슷하게 감당하기 힘든 상황 앞에 당황한 무던한 남자를 연기하면서도 로건은 전에 볼 수 없던 페이소스와 분노의 강도를 서서히 높여간다. 워즈니악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잡스에게 거듭 무시당하면서도 “(오랜 친구인) 나 아니면 누가 이해하겠어”라는 순진한 태도를 견지한다. 배려를 모르는 잡스와 일하기 위해 나름의 대응 기술을 개발한 여타 인물과의 차이다. 그러나 잡스에게 워즈니악은 범용한 무리 중 하나일 뿐이다. 컴퓨터는 예술품이 아니라고 다시 말해보라는 잡스에게, 워즈니악은 둘만의 게임이라도 즐기듯 순순히 운을 띄우지만 “X까!”라고 받아치는 잡스의 돌아선 얼굴에 떠오른 경멸은 진짜다. 차곡차곡 상처가 쌓인 워즈니악이 마침내 잡스에게 맞서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통렬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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