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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줌마 아니라 줌바 댄스

<댄싱퀸> <댄스 오브 드래곤> <쉘 위 댄스> 등에서 본 댄서의 도(道)

<댄싱퀸>

수녀원에서 농사를 짓다가 오래간만에 상경한 수녀님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속세의 때라고는 묻지 않은 데다 감수성 예민하며 안목 높기로 소문난 수녀님에게 어울리는 영화라면… 숭고한 신념과 인간적인 두려움 사이에 놓인 수도사들의 이야기라는 예술영화 <신과 인간>? 하지만 수녀님은 마음이 언짢았다. “제가 수녀원에서 올라왔습니다. 날마다 수녀님들만 보고 살아요.” 이건 마치 부서 회식으로 부장님이랑 <오피스> 보는 경우랄까,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서울대 견학 가는 꼴이랄까, 수녀님 죄송합니다. 사실 수녀님은 염두에 둔 영화가 따로 있었다. “저도… &%$ 보고 싶습니다.” 네? “… (단호하게) 댄.싱.퀸.이요.” 아아, 수녀라고 하여 마음에 품은 날라리의 꿈 한 자락이 없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한때 신촌 마돈나 엄정화가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유부녀 10년의 한이 맺힌 춤사위를 풀어헤치는 <댄싱퀸>을 보았다.

몇년이 지나 그 영화가 다시 생각난 건 서랍 한개를 뒤집어엎으며 10년 전에나 하고 다니던 치렁치렁한 목걸이와 팔찌를 몽땅 찾아 걸치고 나서던 날이었다. 살아생전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가 도래할 줄 알았다라면 엄정화가 비슷한 꼴로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는 장면 보고 웃지 말걸 그랬지, 그래도 나는 마돈나 밴드는 안 했잖아? 하지만 한 시간 뒤, 나는 오렌지색 헤어밴드와 형광 연두색 손목밴드를 강제로 장착하고 (더불어 인조 속눈썹도)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OO시 댄스 대회, 줌바 댄스팀의 (다행히도) 둘쨋줄에 서서. 줌바 댄스란 무엇인가, 에어로빅과 라틴 댄스가 혼합된 피트니스의 일종으로 살사와 삼바, 메렝게, 맘보 등이 섞인 운동이다. 1990년대에 콜롬비아 안무가 알베르토 페레스가 창안한 줌바는 현재 180개국에서 1500만 인구가 매주 즐기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애석하게도… 줌마 댄스라 불리고 있다, 아줌마들이 하는 거라고. 한 시간에 1천kcal을 태운다는 소문이 있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아무 소용없다. 춤추고 오면 배고프고 목말라서 양푼 비빔밥을 안주로 대낮에 맥주를 마시게 되지.

어쨌든 형식적으로는 6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무대에 선 열명의 아줌마와 (대낮에 하는 일도 없이 춤추러 다니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뭣해 신분을 숨긴) 한명의 미혼 실업자는 그날 밤 상금 20만원을 타서 애들은 남편한테 맡기고 90년대 가요를 부르며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만세. 줌마 댄스여서 슬픈 (근데 거울을 보면 그 이름이 매우 잘 어울려서 더욱 슬픈) 줌바 댄스를 추는 한국의 아줌마들 대부분은, 사우디에 간 남편을 두고 제비족과 춤바람난 어머님들의 뉴스를 듣다가 <더티 댄싱> <플래시댄스>의 풍문을 거쳐 <열정의 람바다>를 따라하며 자란 세대이다. 다시 말해, 춤과 더불어 태어나 춤과 더불어 성장했다고나 할까. 그러니 아이돌 그룹의 커버 댄스를 들고 나와 자랑하지 마라, 우리는 유튜브가 없던 시대, <열정의 람바다>를 봤다는 사람은 없는데 람바다 댄스를 똑같이 춘다는 사람은 넘쳐나는 초능력을 타고난 아이들이었다.

<쉘 위 댄스>

본 적도 없는 춤을 따라 추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장혁의 숨겨진 ‘로맨틱 댄스 액션 영화’(한치의 과장도 없이, 진짜로 그렇다) <댄스 오브 드래곤>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언뜻 보기에는 1970년대쯤인 듯한 한국이 고향이지만 그것은 외국인 감독의 고증 실수일 뿐, 어엿한 1980년생인 태산은 책으로 사교댄스를 배워 싱가포르 최고의 댄스 학원에 합격하고, DVD로 일주일 만에 소림권법을 익혀 무술 사범과 맞붙는다. 거참, 교과서하고 EBS만 있으면 서울대 들어갈 재목일세.

우리는 또한 술이 없어도 막춤을 불사하는 흥에 겨운 세대이기도 했다. 식민지 시대 모던걸들은 1937년, 잡지 <삼천리>에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글을 투고해 “건전한 사교오락장”인 댄스홀을 허가해달라고 졸랐다는데, 그 피를 이어받은 우리 또한 콜라텍(콜라만 파는 디스코텍)에서 건전한 사교를 즐기곤 했으나… <유나의 거리>에 나오는 콜라텍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인들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콜라텍. 영화 <바람의 전설>(과 그외 숱한 증거들)을 보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교댄스는 정말 사교를 위한 댄스이다. 소를 키우면서 50년 동안 원앙처럼 다정하게 지내온 노부부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할머니의 취미는 사교댄스였고, 할아버지는 왕복 한 시간 운전만 하며 읍내에서 대기한다고 했다. 이유는 “마누라하고 함께 춤추는 것보단 나아서”. 이것이 50년 잉꼬부부의 비결인가, 최악보다는 차악을.

우리의 줌바 댄스팀에도 일흔인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할머니는 단 한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홀연히 대회장에 나타나 댄스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70대로선 첨단인 그 일을 감당한 이유도 그거였을까, 영감하고 함께 춤추는 것보단 나아서. 댄스의 혼은 뜨거웠으나 스텝은 매우 자주 틀리던 그 할아버지는 무대 첫줄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이유는 잘해서가 아니라 “나이가 많으니까 다양성 점수를 획득할 수 있어서”였다.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다니, 나보다 잔인한 댄스 선생님 같으니라고.) 하지만 댄스에 몸을 사르는 중년들이 나오는 매우 훌륭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조연 중의 한명이 정치평론가(이던가 뭐였던가…) 변모씨를 닮은 것이 유일한 흠인 <쉘 위 댄스>에서 댄스 강사가 그랬다, 댄스는 스텝이 아니에요, 온몸으로 음악을 즐기는 거지.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음악을 즐겼다. (그리고 나는, 내 꼴을 구경 온 친구가 평하기를, “모든 동작이 정확했지만 영혼이 없어.”) <쉘 위 댄스>에서는 이렇게도 말한다, “(파트너를) 마중 나가는 게 아니라 맞아들이는 거예요.”

스무살을 넘긴 이후 (그러니까 성장이 끝나고 노화가 시작된 이후) 한번도 반가운 적이 없었던 새해가 왔다. 1X년 동안 스텝은 매번 틀렸고, 기꺼이 세월을 맞아들이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가능할까, 늦지 않았을까, 셸 위 댄스?

다리 찢기가 안 되더라도…

댄서의 혼에 기름을 붓는 두세 가지 것들

<댄싱퀸>

내부의 적

집에선 거의 무용지물이어서 가구만도 못한(가구는 가만히라도 있으니까, 어지르지 않고) <댄싱퀸>의 남편 황정민은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딱 한 가지 일을 한다, 오디션에 나갈까 망설이는 아내 비웃기. 가구만도 못한 녀석이 비아냥거리자 분기탱천한 엄정화는 오디션에 나갔다가 (일단 떨어지고) 댄싱퀸이 되고야 만다. 내가 댄스 대회 나갈 때도 그런 녀석이 하나 있었지. 강사가 “정원씨 내부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며 대회 나가자 했다고 자랑하니까, 그런 불꽃이 있으면 네 복부 지방이나 태우라고 그랬어.

<스트리트댄스: 라틴 배틀>

외부의 도발

<스트리트댄스: 라틴 배틀>의 애쉬가 유럽 8개국을 순회하면서 댄서들을 모아 팀을 만든 건 댄스 배틀에 나갔다가 팝콘 세례를 맞는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다. <댄서의 순정>의 영새(박건형)가 다리도 안 찢어지는 댄스 초보 꼬마(문근영)를 데리고 3개월 만에 댄스 대회에 나가 우승하겠다는 되지도 않는 꿈을 꾸는 것도 그래야 말은 안 돼도 영화는 되니까, 아니 부잣집 아들의 도발 탓이다. 그리고 내가 줌바 댄스를 배우기 시작한 건 “그거 잘못하면 줌마 댄스 되는데…”라며 말끝을 흐린, 우리 동네 진상 이웃 덕분이었다.

<댄스 오브 드래곤>

그래도 역시 외모

번역하자면 ‘용춤’의 주인공 태산(장혁)은 불혹에 발레를 시작한 내 지인보다도 춤을 못 추는데 댄스 학원 오디션에 합격한다. 그에게 슈퍼 패스를 적용한 심사위원은 여자, 역시 근육과 얼굴인가. 그때까진 댄스를 책으로 배워서 그렇다 쳐도, 정식으로 배운 다음 대회에 나갔는데도 우리 태산이 춤은 왜 저 모양일까, 중요한 건 이기는 게 아니라더니 저럴 줄 알고 미리 그런 거였어. 하지만 프로에게도 외모는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노가 되어 자서전 <마오쩌둥의 마지막 댄서>를 쓴 리춘신은 중국 시골에서 태어났다길래 어디서 발레를 봤던 걸까 궁금했는데, 책을 읽으니 이랬다. 베이징에서 내려온 전문가들이 시골 꼬마들을 발탁한 1차 기준은 외모, 2차 기준은 다리 찢기, 춤은 안 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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