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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균형을 만들다
윤혜지 사진 백종헌 2015-12-03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만든 3년 만의 신작 <괴물의 아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

호소다 마모루가 3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에 그가 데려온 이들은 외관부터가 거칠기 짝이 없다. 곰의 모습을 한 난폭한 괴물과 가슴에 어둠을 품고 버려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인간 아이다. 하지만 <괴물의 아이>는 괴물이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가 아니다. 홀로 성장한 괴물도 몸만 큰 외톨이 어린아이에 다름없다. <괴물의 아이>는 괴물과 아이가 서로를 자라게 하는 이야기다. 전작들과 달리 <괴물의 아이>는 원안과 각본을 호소다 마모루가 홀로 만들었다. 또래의 우정을 그리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애틋하지는 않고, 싸우고 부딪치지만 캐릭터들은 <썸머워즈>보다 격렬하게 약동한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지만 <늑대아이>와 같이 끈끈한 애정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괴물의 아이>는 전작들과 가장 결이 다른 작품이면서 또 가장 호소다 마모루다운 정서를 품고 있다. 괴물과 아이의 서툴고 소란스러운 연대가 호소다 마모루 세계의 균형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혼잡한 도쿄 시부야 거리의 반대편에는 인간들이 모르는 이(異)세계가 존재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쥬텐가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외톨이 소년 렌은 시부야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만난 괴물 쿠마테츠를 따라 쥬텐가이로 흘러든다. 쥬텐가이의 수장 후보인 곰 쿠마테츠와 멧돼지 이오젠은 경쟁 관계에 있다. 하지만 자식도 둘이나 거느린 점잖은 이오젠과 달리 쿠마테츠는 오만불손한 골칫덩이일 뿐이다. 힘을 갖고 싶었던 렌은 큐타라는 새 이름을 얻어 쿠마테츠의 제자가 된다. “부모도 스승도 없이 혼자서 강해져버린” 쿠마테츠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쿠마테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내지 못하는 큐타를 답답해하고, 큐타는 검을 쥘 줄도 모르는 자신에게 냅다 휘두르기부터 가르치는 쿠마테츠를 못 미더워한다. 수행 중인 돼지 햐쿠슈보와 원숭이 타타라는 걸핏하면 싸워대는 쿠마테츠와 큐타의 사이를 중재한다. 쿠마테츠와 큐타는 함께 먹고, 자고, 싸우고, 뒹굴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버리고 어느 사이 큐타도 훌쩍 자라 쥬텐가이의 식구로 인정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쥬텐가이로 들어왔을 때처럼 또다시 우연에 의해 시부야로 돌아가게 된 큐타, 렌은 도서관에서 명석한 소녀 카에데를 만나게 된다. 카에데는 렌에게 인간의 삶과 문화를 가르쳐준다. 글읽기에 재미를 붙인 렌은 대학 진학의 꿈도 갖게 되고 친부의 안부도 궁금해한다. 친부를 만난 렌은 쥬텐가이와 시부야, 괴물의 삶과 인간의 삶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던 중 쿠마테츠와 이오젠이 수장 자리를 놓고 대결을 펼치고 이오젠의 의붓아들이자 또 다른 인간 아이인 이치로히코가 큰 사고를 치게 된다. 폭주한 이치로히코는 시부야와 쥬텐가이를 뒤흔들고, 렌은 이치로히코를 저지하고 세계를 구하려 한다.

일상, 환상 대칭의 구조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썸머워즈>(2009), <늑대아이>(2012)에 이은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장편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는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대칭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한쪽엔 일상이, 다른 한쪽엔 환상이 자리한다. 음양이 나뉘어 있듯 등장하는 캐릭터도 제각각 짝을 이루고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가 이모의 말에 따라 “소녀 시절에 으레 일어나곤 하는 일”로 타임리프를 받아들였듯, <늑대아이>의 하나가 늑대인간임을 고백해오는 연인의 품에 거리낌없이 안길 수 있었듯이 <괴물의 아이>도 심상한 태도로 일상과 환상을 연결한다. 눈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소년은 별세계에 당도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번엔 환상이 일상의 일부가 아닌, 일상과 환상이 비슷한 규모로 공존하는 세계다. 현자의 입을 빌려 “때로는 환상이 진실보다 더 진실하다”라고 말하는 호소다 마모루는 일상과 환상의 접합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하나의 세계가 오롯하게 완성된다고 믿는 감독이다.

전작 세편의 기운을 고스란히 품은 채로 거기서 한발 더 딛는 <괴물의 아이>는 서사적으로는 <늑대아이>의 연장에, 구조적으로는 <썸머워즈>의 연장에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친모의 여성서사로 이루어진 <늑대아이>는 하나가 늑대인간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육아일기가 중심이었고, <괴물의 아이>는 버려진 소년이 유사 아버지를 만나 연대하며 청년으로 자라는 동안의 남성서사를 따르고 있다. <괴물의 아이>는 피로 이어진 좁고 긴밀한 관계로부터 나아가 대안적 가족관계의 가능성까지 너른 품으로 긍정한다. 잔혹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하던 무드가 다소 휘발된 대신 이야기는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을 폭발시키며 투박하고 과감하게 굴러간다. 분위기가 전환된 데엔 전작 세편의 각본을 모두 담당했던 세심한 필치의 여성작가 오쿠데라 사토코가 각본에서 빠지고 호소다 마모루가 홀로 원안과 각본을 썼다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늑대아이>는 고향인 도야마현을, <썸머워즈>는 나가노현 우에다를 배경으로 하는 등 대체로 한적한 교외에서 이야기를 전개해온 호소다 마모루는 <괴물의 아이>에서 최초로 도시를 무대로 하는 활극을 그렸다. 액션영화라 불러도 좋을 <썸머워즈>와 비교해서도 <괴물의 아이>의 액션 연출은 월등히 박력 있고 역동적이다. 쿠마테츠와 이오젠의 대결은 물씬 풍겨오는 땀냄새에 육중한 무게감마저 생생히 느껴진다. 전체 컷수가 1540컷으로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 중 가장 컷수가 많고 숏을 짧게 구성해 호흡도 빠른 편이다. 호소다 마모루와 줄곧 함께 작품을 만든 사이토 유이치로 프로듀서에 의하면 <괴물의 아이>는 “콘티도 그간 한 페이지에 5컷으로 그린 데 반해 <괴물의 아이>는 액션 신의 흐름이 최대한 끊김 없이 유지되도록 한 페이지에 6컷 콘티를 진행했다. 종이도 A4용지보다 더 큰 사이즈의 B4용지로 바꾸어 전보다 더 섬세한 작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과거의 흔적과 <괴물의 아이>를 잇는 호소다 마모루만의 인장은 여전히 확연하다. 대체로 그 흔적은 카메라의 이동으로 드러나는데 달리고 있을 때의 1인칭 시점숏과 수평 패닝숏이 대표적이다. 아메와 유키가 야생성을 깨우치는 장면을 아이들이 거세게 산속을 달리는 1인칭 시점숏으로 표현했던 <늑대아이>에서처럼 <괴물의 아이>에서도 쥬텐가이에 도착한 렌이 괴물들 사이를 달리며 도망다니는 장면을 1인칭 시점숏으로 그렸다. 이제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에서 달리는 1인칭 시점숏은 이세계로의 입문 과정 혹은 통과의례처럼 여겨진다. <늑대아이>의 그 시점숏을 만들어낸 CG디렉터 호리베 료가 이번에도 같은 역할로 참여했다. 또한 수평 패닝숏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알리곤 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마코토가 치아키를 만나기 위해 전력질주하던 그 시간, <썸머워즈>에서 할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는 나츠키를 위로하기 위해 겐지가 나츠키에게 손깍지를 끼었던 그때처럼. 렌에게도 두 차례의 수평 패닝숏이 새로운 관계를 불러온다. 카에데가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멀찌감치 서 있던 렌이 프레임 왼쪽에서 나타난다. 곧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렌은 프레임 바깥에서 카에데를 괴롭히는 남학생들에게 한방씩을 먹인다. 다시 카메라가 왼쪽으로 움직이자 남학생들을 쓰러뜨리고는 가만히 서 있는 렌이 보이고 그다음 장면에서 카에데와 렌은 친구가 된다. 렌이 친부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프레임 바깥으로 벗어난 친부가 렌을 향해 달려오는 순간 렌과 친부의 관계는 소원하던 이전과 사뭇 달라져 있다.

호소다 마모루는 <괴물의 아이>에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관계도를 가져왔다. 잃어버린 다리에 대한 복수로 전설 속 흰 고래를 찾아다니는 에이해브 선장은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에서 가슴에 깊은 구멍이 뚫린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그려진다. 마치 의식이라도 갖춘 듯 심후한 존재로 묘사되는 흰 고래는 신이 될 자격을 갖춘 자들이 모인 지성적인 괴물 세계의 은유다. 왜 <모비딕>일까. <모비딕>은 모험소설이기 이전에 방대하고 애정어린 고래학전서이기도 했다. 허먼 멜빌도 호소다 마모루처럼 자연과 만물에 외경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었다. 원시의 세계를 사랑하는 호소다 마모루가 허먼 멜빌의 소설에 매혹된 것은 우연만이 아닐 것 같다. 호소다 마모루는 줄곧 야생의 삶을 존엄하고 숭고하게 그려왔다. 동물 세계에 대한 경외감이 넘치던 <늑대아이>까지 가지 않더라도, 하다못해 고등학생의 시시한 일상에서까지 중요한 진실을 깨우쳐주는 것은 어디선가 날아온 무당벌레였으니까(<시간을 달리는 소녀>).

둘이 하나 되어 완전해지다

가슴에 깊은 구멍이 뚫린 인간, 렌과 이치로히코는 괴물들의 보살핌으로 성장한다. 렌은 쿠마테츠의 도움으로 “가슴속에 자기만의 검”도 품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렌은 더이상 검을 들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검객이 된다. 호소다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은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엔딩곡까지가 이야기의 일부다. <괴물의 아이>의 막바지엔 미스터 칠드런의 <Starting Over>가 흐른다. “무언가가 끝나고 또 무언가가 시작되는구나. 그렇게 줄곧 이 세계는 돌고 있네. 무언가가 끝나고 또 무언가가 시작되는구나. 분명 분명.” 호소다 마모루의 주인공들이 그래왔듯 쿠마테츠와 렌도 이별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주인공들처럼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 죽음에 가까워지던 쿠마테츠는 정령신이 되어 렌의 가슴 안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다. 어둠을 품고 살아온 소년은 공허한 가슴에 희망과 온정을 싹틔운다. 둘은 하나가 되며 완전해진다. 각자로 존재하며 서로를 자라게 하는 괴물과 아이처럼,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도 스스로 균형을 잡으며 완성돼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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