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는 맨날 웃는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다. (웃음)” 실제로 웃음이 많은 편이고, 그래서 곧잘 제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배수지이지만, 스물둘 또래의 친구들처럼 그녀도 다양한 감정을 품고 산다. 하지만 타고난 근성과 긍정의 기운은 숨길 수가 없다. 인터뷰 당일에도, 감기에 심하게 걸려 기침을 해대면서도 피로한 티는 내지 않는다. 코를 찡긋거리고 웃으며 “힘을 내야지”라고 말할 뿐이다. “밝고, 당차고, 독하다. 그런데 당차고 독한 모습을 장식적으로 내비치지 않는다.” <도리화가>의 이종필 감독이 표현한 수지의 캐릭터는 곧장 진채선의 모습과 포개진다. <도리화가>는 신재효의 제자 진채선이 조선 최초의 여류 소리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판소리 가락에 실어 펼쳐놓는다. 진채선은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금기에 맞서 제 꿈을 이룬 깨어 있는 여성이었다.
<건축학개론>(2012) 이후 두 번째 영화에 출연하기까지 신중을 기하는 시간이 길었지만 <도리화가>는 단번에 수지의 마음을 훔쳤다. “이전 작품(드라마 <구가의서>)이 사극이어서 다음 작품은 현대극을 했으면 싶었는데 <도리화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건 내 거다’ 싶어 감독님께 바로 답을 드렸다. 소리를 너무나 하고 싶어 하고, 원하는 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아 속상해 주저앉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꿈을 이뤄가는 채선의 모습에 감정이입이 잘됐다. 가수의 꿈을 키워가던 시절에 내가 경험한 감정과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다.” 채선과 자신의 공통분모가 “깡, 독기, 끈질김”이라고 말한 수지는 “연습생 시절엔 잠자는 게 사치라고 생각할 정도로 새벽까지 연습실에서 연습하며 나 자신을 호되게 혼내곤 했다”고 말했다.
<도리화가>의 채선이 되는 과정에서도 깡과 독기가 필요했다. 1년간 박애리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가수라는 신분이 무색하게 판소리 발성은 낯설었다. 소리를 내는 법부터 새로 익혀야 했다. “선생님에게 배운 소리를 잊지 않으려고 매번 소리를 녹음해 쉬지 않고 들”으며 <춘향전>의 <사랑가>와 <심청전>의 <쑥대머리>를 외웠다. 어려운 대목에선 판소리 대역을 쓸 법도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100% 내 소리였으면 했다. 그러고 싶다고 내가 많이 우겼다. (웃음) 판소리하는 분의 소리는 못 따라가겠지만, 진심을 담아서 진정성 있게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싶었다.” 상투를 틀어 올리고 얼굴에 검게 숯칠을 해 남장 연기를 했을 때도, 거울을 보며 한숨 짓는 대신 “나를 버리고 캐릭터에 제대로 녹아들 수 있겠구나 싶어 너무 좋았다”고 한다. “처음엔 분장한 얼굴을 보고 충격받았는데(웃음) 곧 적응되더라. 예뻐 보이려 했다면 캐릭터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을 것 같다.” 드라마 <드림하이>로 연기 신고식을 치르고, <건축학개론>을 통해 국민 첫사랑이라 불릴 때만 해도 ‘연기돌’의 이미지가 강했던 수지는 어느덧 배우의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의 제니퍼 로렌스, <사이드 이펙트>(2013)의 루니 마라, <스턱 인 러브>(2012)의 릴리 콜린스의 이름을 대며, 뻔하지 않고 신선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수지. 연기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다. “현실의 때가 많이 묻어 능글맞기도 하고 지질하기도 한 다큐멘터리 PD”가 된 수지는 내년에 만날 수 있다고. 복숭아꽃, 자두꽃이 질투할 만큼 어여쁜 수지의 내년이 벌써부터 흥미로울 거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