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오브 컵스>는 줄거리를 요약하기 힘든 작품이다. 단순히 요약하자면 극작가 릭(크리스천 베일)의 가족, 사랑, 일을 포함한 삶 자체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단단한 삶이 아니라 파편화된 모호한 삶이다. 영화의 내레이션은 이것을 이상적인 공간을 찾아나선 한 남자의 여정이라고도, 혹은 진주를 찾는 어린 왕자 또는 기사의 이야기라고도 설명한다. 그러나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도시를 떠도는 한 남자의 방탕하고도 사색적이며 파편화된 이야기다. 영화 내내 사람들의 대화 사이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삽입된다. 내레이션의 주체는 전지적 서술자, 혹은 릭을 포함한 극중 인물들의 목소리로도 나타난다. 이러한 다중화자 방식은 테렌스 맬릭 영화의 특징 중 하나다.
테렌스 맬릭이 전작에서 탐구해온 자연에 대한 찬미는 약해진 인상이다. 초반 인서트를 제외하면 자연보다는 도시 공간에 초점을 맞춘다. 도시에서도 영상미라고 뭉뚱그려 표현되는 그의 탐미적인 방식은 유지된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잘 만들어진 영상화된 패션 화보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미지는 줄거리에서 떨어져 나왔으나 그것을 파악하기 힘든 상태로 접합되어 있으며, 잘 만들어졌지만 그 안에 영혼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어떤 알리바이가 존재한다. 이 영화는 삶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파편화된 삶, 즉 꿈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꿈 이미지를 나누고 모으는 표지의 역할을 하는 것은 타로다. 극의 제목 역시 타로 종류 중 하나다. 이야기는 달, 매달린 남자, 은둔자 등 타로를 챕터로 삼아 진행된다. 여기에서 꿈 이미지는 실제의 파편과도 같다. 테렌스 맬릭은 아마 실제에 의존하지 않은 파편 조각의 연결만으로 그것의 가치를 발견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뉴 월드>(2005) 이후 맬릭과 함께 작업을 이어온 촬영감독 에마누엘 루베스키를 비롯해 프로덕션 디자이너 잭 피스크, 음악의 하난 타운센드 등 그의 동료들이 이번 작품에도 의기투합했다. 그의 전작이 그랬듯 죽은 동생의 이야기, 감독이자 극작가인 감독 등 감독의 실제 사연이 영화 곳곳에 파편처럼 숨어 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