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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기 요괴와 사랑에 빠졌다
김성훈 2015-11-10

<몬스터 헌트> 라맨 허 감독

라맨 허 감독.

24억2천만위안을 벌어들이며 올해 상반기 수입영화 최고의 수익을 올렸던 <분노의 질주: 더 세븐>도 채소 무를 쏙 빼닮은 아기 요괴 우바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중국 영화산업에서 <몬스터 헌트> 흥행이 의미가 있다면, 우바라는 귀여운 요괴 캐릭터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입소문이 잘 퍼지면 스타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흥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 하나의 비결을 꼽자면, 라맨 허 감독의 재능 있는 연출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앞으로 그의 이름을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홍콩 출신으로 드림웍스 애니메이터로 경력을 쌓다가 <슈렉3>(2007), <쿵푸팬더: 다섯 용사의 비밀>(2008) 등 여러 애니메이션을 연출하고, 중국으로 돌아와 <몬스터 헌트>를 만든 라맨 허 감독과 서면으로 나눈 대화를 전한다.

-<몬스터 헌트> 연출은 어떻게 제안받았나.

=미국에서 이 영화의 제작자인 빌 콩에게 고향 홍콩으로 돌아가 애니메이션을 만들 거라고 얘기했다. 빌 콩은 오래 알고 지냈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제작자다. 하지만 그때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2년이 지난 뒤, 그가 실사영화를 연출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물어왔다.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을 해왔던 까닭에 잘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게 <몬스터 헌트>였다.

-이 영화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어왔기에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시각효과(VFX)가 결합된 작품을 만드는 건 빌 콩의 생각이었다. 앞에서 얘기한 대로 실사영화 연출 경험이 없었기에 이 프로젝트를 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동시에 실사영화 연출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 흥미로울 것 같았다. 또 배우들이 가상의 요괴 캐릭터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어 행복했다.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했나. 특별히 영감을 받은 고대 설화가 있나.

=빌 콩이 <파이어스톰>(2014)을 연출한 원금린 감독을 작가라며 소개해줬다. 원금린 감독과 함께 중국 요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걸 소재로 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야기는 주로 중국 고대 신화인 <산해경>과 <요재지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영화에는 다양한 요괴들이 나온다. 대부분의 요괴가 무섭기보다 친숙했다.

=촬영 전에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괴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처음에 만든 요괴의 대부분이 너무 서구적이거나 너무 용 같아 보였다. 용은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에서 이미 사용된 캐릭터라 좀더 특별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헬리콥터처럼 하늘을 나는 아주 작은 요괴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얘기만 들어도 어디에도 없는 캐릭터 같지 않나. 관객이 자연을 좀더 친숙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 이끼나 곰팡이 같은 것들을 본떠 캐릭터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채소 무를 본떠 만든 주인공 우바가 가장 귀여웠다.

=우바가 무처럼 생기긴 했지만 처음부터 무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은 아니다. 캐릭터 디자인을 진행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슈퍼마켓에 들렀는데 통통한 무가 보였다. 저게 우바다 싶었다. (웃음) 우리 시각효과팀의 기술 덕분에 우바가 생생하게 만들어져 실제 배우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소재와 캐릭터, 이야기의 배경은 중국적이지만 이야기는 인간과 요괴가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많은 관객을 불러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이 영화의 주제는 감독인 나뿐만 아니라 원금린, 의상과 프로듀서로 <몬스터 헌트>에 참여한 해중문(<황비홍>(1991) 미술, <첨밀밀>(1997) 미술, <무협>(2001) 예술감독 등), 제작자 빌 콩 등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해왔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주제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몬스터 헌트>는 올해 여름 시장에서 크게 흥행했다. 이야기의 어떤 점이 중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나.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다. 6살 소년부터 70대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를 하나로 묶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들 대부분 영화 속 요괴 캐릭터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마도 박스오피스에서 흥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영화가 성공한 건 행운이다.

-당신의 첫 연출작은 <슬리피 가이>(Sleepy Guy, 1994)라는 제목의 단편애니메이션이다.

=<슬리피 가이>는 미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PDI(Pacific Date Images,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 시리즈 제작)에서 일하고 있을 때 만든 작품이다. 이후 PDI가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일부가 되었다. 단편이었지만 영화 만들기의 A부터 Z까지 모두 익힐 수 있었다. 동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애니메이션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나.

=내 인생에서 애니메이션을 선택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애니메이션은 홍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홍콩에 애니메이션 산업이 있고,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아주 간단한 애니메이션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을 1년 정도 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그걸 카메라로 찍었는데 그게 내 삶에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금방 애니메이션과 사랑에 빠졌다.

-미국으로 건너간 건 언제인가.

=대학을 졸업한 뒤 홍콩에서 광고에 들어갈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 그때는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일일이 그려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다. 몇년이 지난 뒤, 미국에서 컴퓨터 애니메이션 시대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큰 자극을 받았다. 캐나다로 건너가 여름 코스를 등록해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배웠다. 교육이 끝나고 몇달이 지났을까, 운이 좋게도 PDI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때 미국으로 건너가게 됐다.

-<슈렉> 시리즈를 비롯해 <마다가스카> <장화 신은 고양이> <쿵푸팬더: 다섯 용사의 비밀> 등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다. 그런 경력들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작업하는 모든 순간이 배울 수 있는 큰 기회였다. 애니메이션 <개미>(1998, 감독 에릭 다넬, 팀 존슨, 로렌스 구터먼)를 작업할 때 캐릭터 디자인과 애니메이션에서의 움직임에 대해 배웠다. <슈렉>을 할 때는 스토리보드를 만들 기회를 얻기도 했다. 스토리보드를 짜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들이 <몬스터 헌트>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중국 애니메이션이 이제 막 중국 관객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홍콩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주로 일을 하다가 중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작업해보니 어떤가.

=사실 <몬스터 헌트>를 만들기 전에 드림웍스가 나를 여러 나라로 보내 일을 시킨 적이 있다. 덕분에 인도와 대만 그리고 중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 한국에도 드림웍스 일로 출장 온 적이 있다. 어쨌거나 중국에서 일을 하는 건 무척 흥분된다. 재능 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들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한 가지 어려운 건 언어다. 내 북경어 실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소통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로는 잘못된 의사소통 때문에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몬스터 헌트2>가 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몬스터 헌트>의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한다.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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