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고든(피터 뮬란)과 필(데이비드 카루소)은 건물의 석면제거를 전문으로 해온 공사팀. 오래된 정신병원의 내부공사를 의뢰받은 둘은 마이크, 행크, 고든의 조카 제프를 끌어모은다. 일거리가 줄어드는 추세여서, 고든 일행은 보너스를 위해 1주일 만에 일을 끝내기로 한다. 하지만 정신병원의 음산한 폐곽에 들어선 순간부터, 환청과 함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Review 벽장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살인마도 없고, 따라서 피투성이 시체가 쌓여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헌티드 힐>에서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밀실에 갇힌 것도, ‘귀신들린 집’에 출몰하는 악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세션 나인>의 인물들은, 그저 매일같이 석면가루 날리는 일터를 오간다. 다만 이번에는 사탄숭배, 성적학대 등 불행한 사연을 지닌 환자들을 수용하고, 때로 잔인한 치료를 했다는 소문의 정신병원이 일터라는 것이 다를 뿐.
하지만 그뿐이라고 생각했던 정신병원 내부의 음침한 어둠이야말로, 캐릭터와 관객의 심중에서 공포를 불러내는 영매다. 십수년간 버려져 있었다는 19세기 건물은, 쇠고랑이 달린 침대가 널려 있고 대낮에도 어둑한 지하와 미로처럼 얽힌 복도가 으시시한 공간.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그곳에서, 제각기 다른 불안을 지닌 인물간의 균열이 이빨을 드러낸다. 초보 아빠와 가장의 역할에 심신이 지친 고든은 아내를 때린 죄책감에 시달린다. 지하에서 발견한 금붙이를 독차지하려는 행크와, 과거 그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긴 필은 견원지간. 초짜인 제프는 어둠을 병적으로 무서워하고, 마이크는 옛 환자의 진료기록이 담긴 릴테이프에 집착한다.
다중인격장애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메리 홉스란 여인과 의사의 대화를 담은 릴테이프는 모두 9개. 영화의 제목은 ‘세션 9’, 곧 9번째 테이프에서 밝혀지는 홉스 사건의 전모와 그처럼 핏빛으로 얼룩지는 고든 일행의 파국을 의미한다. <스크림> 이후 한동안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흐름을 주도해온 10대 슬래셔영화를 원치 않았다는 브래드 앤더슨 감독은, 니콜라스 뢰그의 <돈 룩 나우>나 큐브릭의 <샤이닝>처럼 배경과 인물 내면에서 우러나 서서히 목을 죄어드는 심리적인 공포를 지향했다.
<넥스트 스탑 원더랜드> 등 대사와 캐릭터가 강한 로맨틱코미디로 미국 독립영화계의 이목을 끌었던 감독의 전적대로, <세션 나인> 역시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가 살아있는 공포영화다. 좀 과다하다 싶은 살인을 마지막에 몰아놓은 것, 조명과 세트가 끌어가는 과정이 지난한 아쉬움은 있지만, 150만달러의 저예산 소품으로서 즐길 만하다. 황혜림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