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1주기를 맞아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가사와 멜로디가 재생되며 견디기 힘든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서 국정화 반대 콘서트를 준비 중인 이승환에게 한 네티즌이, 번호표라도 뽑고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신해철 다음은 네 차례”라며 살해 협박을 하는 것을 보니, 그냥 이것저것 많이 떠올리고 써서 고인에게 좋은 것(글)들만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신해철이 영화음악가로서의 욕심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쏜다>(2007) 개봉 당시 직접 인터뷰했을 때, 그는 “<오멘>(1976) 영화음악을 맡은 제리 골드스미스를 너무 좋아한다”며 “영화음악감독은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타이틀이 아니라, 기회만 된다면 본격적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욕심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하얀 비요일>(1991)에 작곡가 서영진의 노래 <하얀 비요일>과 <그대의 품에 다시 안기어> 두곡을 부르는 것으로 첫 O.S.T 작업을 하게 된 그는, 이후 ‘넥스트’를 결성하고서 작곡과 프로듀서를 맡아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1993)를 통해 본격적인 음악감독 신고식을 치렀다. 전자가 가수로서의 인기에 기댄 특별 참여 형식이었다면, 후자는 음악의 설계자로서 상영시간 전체를 조율하고 관장한 첫 번째 음악감독 데뷔작이라 부를 만하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과거 영화진흥공사 시절, 영상과 음악을 맞추기 위해, 손으로 밀어 필름 프레임을 맞추던 기사님들이 ‘영화는 역시 손맛이야’ 그랬던 기억이 난다. (웃음) 그렇게 고된 후반작업이 끝나면 그 어르신들이랑 밤새 술을 마셨다”며 자신이 오래전부터 한국영화와 함께한 ‘영화인’이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후 거의 혼자서 작곡, 작사, 프로듀싱에 믹싱까지 소화했음은 물론이고 테크노 음악에 심취했던 당시 그 자신의 변화의 궤적이 녹아든 <세기말>(1999) O.S.T, 링거 투혼까지 벌였던, 극장 관람객은 채 1만명도 안 되는데 O.S.T는 무려 50만장 이상 팔린 진기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정글 스토리>(1996) O.S.T 등과 13부작 국산 TV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1997)까지 포함하면, TV와 영화를 오가며 ‘음악감독’으로 총 5편을 작업했다. <세기말>의 경우 소령(이재은)이 흐느적대는 모습 위에 겹쳐지는 트립합풍 음악처럼 이른바 ‘컷과 음악이 딱 맞아떨어지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디지털 작업이 가능하지 않은 시기였기에 화면을 캡처해 컴퓨터에 넣고 프레임 단위로 맞춘 것이었다. 당시 뉴욕에 있던 신해철은 <세기말>의 러시 필름을 일일이 받아보며 그처럼 수고스럽게 작업한 것이다. 또한 당시 영화음악 시장은 익숙한 팝 음악을 선곡하는 방식의 O.S.T가 큰 인기였기에 “카페에서 대화하는 장면에 쓰인 음악도 전부 창작”이었다는 그 고집과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저런 생각들에 잠겨 마감 중인데, 곧 tvN에서 방영할 <응답하라 1988> 예고편에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무한궤도 신해철의 앳된 얼굴이 떴다 사라진다. 아, 한동안 이 기분이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