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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단편영화, 날개를 펴다

제13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굴복인생>

제13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11월5일(목)부터 10일(화)까지 6일간 씨네큐브 광화문, 메가박스 아트나인에서 열린다. 국제경쟁작 48편, 국내경쟁작 11편 등 경쟁작 59편을 비롯해 총 88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초청 프로그램으로는 프랑수아 오종의 <빅토르>,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라이브 프럼 쉬바스 댄스 플로어> 등 세계적인 작가의 단편을 소개하는 ‘시네마 올드 앤 뉴’ 섹션, 떠오르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칸 감독주간 단편 특별전’ 등이 마련된다. 배우 특별전의 주인공은 자비에 돌란이다. 그가 출연한 초기 단편들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신진 작가를 만나다’ 섹션에서는 지난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 대상수상작인 원무예 감독의 <레퀴엠>이 앙코르 상영된다. 인생을 주제로 한 세편의 단편으로 영화제는 막을 연다. 6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12편의 추천작을 소개한다.

현실풍자

<굴복인생> Life Smartphone

시에청린 / 중국 / 애니 / 중국 신진 작가를 만나다

<굴복인생>은 스마트폰에 중독된 현대인들의 모습을 꼬집은 중국 애니메이션이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인간들은 누군가의 죽음에도 무감하며 심지어 코앞에 닥친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스마트폰에 박은 코를 들 생각이 없다. 코믹하게 보이던 과장된 일상이 잔혹함과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가를 깨닫기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스 와드> Das Wad

롭 뤼커 / 네덜란드 / 극영화 / 국제경쟁

짐짓 코믹한 분위기를 풍기며 시작한다. 한 유대인이 광활한 모래사막에서 금속 탐지기를 들고 무언가를 찾는다. 그러다 모래 위로 삐죽 솟은 망원경을 발견한다. 그 망원경은 남자의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호기심이 인 남자가 주변을 파자 잠수함의 몸통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잠수함의 해치를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보는 남자. 과연 그 속에서 무엇이 나올까. 이후에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과거는 순식간에 현재로 덮쳐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마테호른>의 배우 르네반트 호프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가 전체 분위기 형성에 일조한다.

선택의 기로에 선 소녀들

<빅터 XX> Victor XX

이안 가리도 / 스페인 / 극영화 / 국제경쟁

남장여자 마리가 바텐더 사라에게 눈길을 준다. 마리는 사라에게 자신을 빅터라고 소개한다. 사라는 빅터가 남자라고 믿는 눈치다. 마리에게는 이미 교제 중인 여자친구가 있다. 마리는 여자친구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몸을 솔직히 드러내지만, 사라에게는 여성성을 가리고 남성의 몸을 흉내낸 채 다가간다. 그녀는 결국 마리와 빅터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마리/빅터가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두명의 여자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다루기 힘든 그녀> Wayward

키이라 리샤드 한센 / 덴마크 / 극영화 / 국제경쟁

주인공은 남자들과 어울리는 보이시한 소녀다. 그녀는 긴 금발을 모자 속에 감추고 남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한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때로는 의도치 않게, 때로는 의도적으로 그녀의 여성적 신체를 인식하도록 강요한다. 스스로의 여성성에 대한 혐오감으로 그녀는 때때로 자학을 선택한다.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향해 있던 칼끝을 타인에게로 돌리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러한 행위는 세상에 맞춰 자신을 바꾸기를 거부하고, 세상을 바꾸기를 선택하는 작은 걸음일 것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트랙> Track

나가타 다케시, 몬노 가즈에 / 일본 / 애니, 실험 / 국제경쟁

일본의 아트 듀오 도쓰카의 작품으로 빛의 움직임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이다. 이들의 작업은 디지털 시대에 스크린을 탐구하는 작업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공중에 그려지는 빛의 그림은 고정된 스크린에서 탈피하는 확장적 스크린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 트래킹숏의 운동감이 빛의 움직임에다 3D 입체영상에 맞먹는 깊이감까지 더한다.

<도깨비불>

<10월이 지나가다> October I s Over

미구엘 세아브라 로페즈, 카렌 애커만 / 브라질, 포르투갈 / 극영화 / 국제경쟁

이 작품은 필름 시대, 그중에서도 고다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제목의 10월은 에이젠슈테인의 <10월>을 가리킨다. ‘필름은 낡은 것이 되었다’는 선언을 바탕으로 붉은 옷을 입고 필름 카메라를 든 어린아이를 감독으로 등장시킨다. 이것은 낡고 닳은 필름을 젊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겠다는 상징적인 선언이다. 이미 과거의 것이 된 필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그것을 향수로 소비하는 데 대한 저항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배우를 위하여

<케이시 모텟 클라인, 배우의 탄생> Kacey Mottet Klein , Birth of an Actor

우르슬라 마이어 / 스위스 / 다큐멘터리 / 국제경쟁

이 작품은 감독 우르슬라 마이어가 <홈> <시스터> 등에서 함께 작업한 아역배우 케이시 모텟 클라인을 주인공으로 해 만든 다큐멘터리다. 독특한 점이라면 영화를 이끌어가는 시선이 감독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배우의 1인칭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케이시의 배우론을 ‘삶은 B(탄생)와 D(죽음) 사이의 C(선택)’라는 유명한 격언을 인용해 서술하면 ‘배우의 삶은 A(액션)와 C(컷) 사이의 B’ 같다. 여기에서 B는 무수한 탄생을 전제로 한 탄생의 B(Birth)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순간적인 존재의 표식으로의 B(Breath)가 될 수도 있고, 영원한 사이의 존재로서의 B(Between)이기도 하다.

<메소드> Method

박준형 / 한국 / 극영화 / 국제경쟁

촬영이 시작되면 배역에 몰입하지만 컷 하는 순간 연기는 끝나야 한다. 그러나 감정 역시 이에 맞춰 깨끗이 자를 수 있을까. 한 여자가 총에 맞은 채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다. 여자를 죽인 이로 보이는 남자가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곧이어 컷 소리와 함께 그곳이 촬영현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재밌는 것은 컷 이후에도 여전히 흑백화면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감독은 배우가 권총 자살을 하는 장면이 좀더 리얼하기를 원한다. 완벽한 연기에 대한 섬뜩한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메소드 연기론을 비튼다.

집으로 가는 먼 길

<에르킨의 귀향> The Return of Erkin

마리아 구스코바 / 러시아 / 극영화 / 국제경쟁

에르킨이 14년간 복역 후 출소한다. 그는 사죄하기 위해 찾아간 집에서 몰매를 맞은 뒤 쫓겨나고 가족에게는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결국 길에서 첫날 밤을 보내게 된 에르킨. 어디에도 그가 있을 곳은 없는 것만 같다. 배우의 무표정과 배경이 강조된 텅 빈 화면은 에르킨의 외로움과 황량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한다. 슬로 시네마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저주> The Curse

파이잘 불리파 / 영국, 모로코 / 극영화 / 칸 감독주간 단편 특별전

파틴은 연상의 연인을 만나기 위해 이웃 마을을 오간다. 어느 날 그녀가 연인과 나란히 누워 있는 광경을 한 소년이 가만히 지켜본다. 이를 뒤늦게 눈치챈 파틴은 화들짝 놀라 일어나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소년은 그녀가 늙은 남자와 잤다고 떠벌리며 몇몇 아이들과 파틴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한다. 클로즈업된 파틴의 얼굴 표정, 황량한 길이 주는 아득함과 파틴의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이 주는 압박감이 시종일관 긴장감을 형성한다. 실제보다 더 무서운 소문과 소문을 막기 위해 결국은 소문이 실현되는 과정이 아이러니하다. 한 여성이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통해 여성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수작.

과거 활용법

<도깨비불>

김나경 / 한국 / 극영화 / 국내경쟁

영화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도깨비불에 홀린 것만 같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형원은 이상한 불빛에 홀려 어두운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쓰러진 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그를 집으로 데려온다. 얼마 뒤 정신을 차린 남자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 이후 형원과 그의 아내가 사는 집에 돈뭉치가 든 상자가 배달되기 시작한다. 한국 고전 설화를 그대로 현대적인 배경에 옮겨온 듯한 작품이다. 한국적인 공포의 원형에 대한 고민과 시도가 돋보인다.

<희광이>

장만민 / 한국 / 극영화 / 국내경쟁

일단 한국 단편으로는 이례적인 소재가 눈길을 끈다. 1830년 조선의 천주교 박해 상황이 그 배경이다. 동이와 다래는 천주를 믿는 연인이다. 동이는 박해를 피해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다래는 체포된 뒤에도 신념을 꺾지 않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다. 숲에 숨어 있던 동이는 다래의 목을 벤 백정 현과 마주친다. 목을 베는 사람과 그의 칼에 목을 베일 운명에 처한 자의 묘한 관계가 중심이 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신념의 증명으로서의 말의 힘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