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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내가 가진 얼굴을 전부 보여주는 날까지
정지혜 사진 오계옥 2015-11-02

<돌연변이> 이광수

“광수씨 표정이 워낙 좋아서 내가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되겠어요. (웃음)” 이광수를 앞에 둔 사진기자의 말이 맞았다. 카메라 앞에 서자 이광수는 익숙하고 편안한 듯 다양한 표정을 이음새 없이 이어나간다. 모델 출신이라 포즈와 표정이 유연한가 싶지만 그보다는 원체 얼굴의 표정이 많은 사람 같다. 눈, 코, 입의 미세한 근육들을 움직이고 눈빛의 강약을 조절하는 그의 얼굴에는 어색함이 없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얼굴 한번 제대로 내보이지 않는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걸까. 권오광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돌연변이>(개봉 10월22일)에서 그는 ‘생선인간’이 된 남자 박구를 연기하며 시종 생선의 탈을 쓰고 나온다. 영화는 ‘돌연변이’를 만들어놓고 특이하다며 환호하던 사람들이 한순간 ‘돌연변이’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려가는 사회파 드라마다. ‘생선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과제를 받아든 이광수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계속해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돌연변이>의 박구는 어떤 얼굴로 기억될까.

“얼굴 한번 제대로 안 나온다는데 광수씨, 그래도 괜찮겠어요?” 이광수가 <돌연변이>(2015)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배우가, 그것도 극의 주인공이 영화 내내 얼굴 한번 안 비치는 역이라고 하니까 지인들이 먼저 나서서 걱정해준 모양이다. 당연했다. 배우에게 얼굴은 그 자체로 이름이 되고 얼굴의 표정이 곧 대사이자 감정이 되니까.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연기를 한다는 건 배우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자 풀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난제였을 것이다. 이광수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는 <돌연변이>를 택했다. 그리고 촬영 시작부터 끝까지 이광수는 제 얼굴 대신 탈을 뒤집어썼다. 그가 얼굴 연기를 포기하고 쓴 탈은 놀랍게도 생선, 생선이었다.

<돌연변이>에서 이광수는 ‘생선인간’이 된 박구라는 인물을 연기한다. 반(半)은 인간이요, 반(半)은 생선인 캐릭터다. 그러니까 박구는 인간이기도 하고 생선이기도 한 셈인데 따지고 보면 인간도 아니고 생선도 아니다. 정의내리기 힘든 불가사의한 존재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박구는 약을 먹고 자고 일어나면 30만원을 주겠다는 제약회사의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생동성 실험에 참여한다. 하지만 개발 중인 신약의 부작용으로 박구의 몸은 그만 생선이 되고 만다. 이 기막힌 사건 앞에서 세상 사람들은 박구를 주목하고 미디어와 기업은 박구를 그럴듯한 상품으로 만들어내려고 안달이다. 생선인간 신드롬이 일며 박구는 일약 스타가 되지만 벼락같던 대중의 관심은 곧 시들해지더니 무섭고 싸늘한 비난이 돼 박구를 몰아붙인다. “이렇게나 독특한 시나리오라니.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생선인간이라는 기막힌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라면 어떻게든 꼭 참여하고 싶었다. 얼굴이 안 나오는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언제 또 있겠나. 얼굴이 나오지 않기에 되레 내가 준비하고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박구를 표현해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하면서도 해내고 싶었다. 욕심이 났다.” 이광수가 박구에 빠진 이유였다.

앞이 훤히 내다보이는 길보다는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가보자고는 했지만 이광수가 마주해야 했던 박구는 녹록지 않았다. “초반에 생선 탈을 제작하기 위해 본을 뜨는 데만 6시간이 걸렸다. 그 뒤로는 특수분장 스탭들도 노하우가 생겨서 다행히 4시간 정도면 분장이 가능해졌다. 탈의 무게만 8kg 정도 나가 나중에는 목이랑 어깨가 아파왔다. 무엇보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촬영 내내 산소통을 끼고 살았다. 탈을 쓰고 동작을 하니까 고개를 돌려도 내가 생각한 각도만큼 돌아간 게 아니어서 초반에 시행착오도 좀 있었다.” 촬영 때마다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야 했던 이광수에게 “잘하고 있다”며 힘을 실어준 건 권오광 감독이었다. “박구를 보면서 다른 언어를 쓰는 여자친구와 연애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더라. (웃음) 그래서 더 많이 광수씨와 이야기하려 했다.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CG 작업으로 어디까지 어떻게 박구의 모습을 보완할 것인지를 계속해서 말해주며 그를 안심시켰다”고 감독은 전한다. 박구가 사랑하는 주진을 연기한 박보영은 리허설 때마다 탈을 쓴 이광수의 동선과 시선의 각도 등을 일일이 확인해주며 그의 손과 발이 돼줬다.

얼굴을 대신해 그는 걸음걸이와 몸짓 그리고 목소리로 연기하는 데 집중해나갔다. “박구는 뼈가 변형되면서 점점 생선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보폭을 좁게 해봤다. 또 지느러미로 변해가는 손에는 미끈한 액체가 묻어나는 터라 물건을 번번이 떨어뜨렸을 거다. 그래서 항상 물건의 밑을 받치고 드는 모습을 취해봤다. 또 몸이 아픈 사람이기도 해 낮은 톤에 말도 어눌하고 천천히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탈을 쓰다보니 어쩔 수 없이 100% 후시녹음을 해야 했는데 대신 현장에서 최대한 감정을 살려 연기하려 집중했다.” 박구는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을 향한 세상의 일방적인 열광과 비아냥을 고스란히 자기 안으로 삭인다. “박구는 어떻게 이 모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근데 촬영을 거듭할수록 박구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커졌다. 청년 박구도 남들처럼 취직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평범한 삶을 꿈꿨을 텐데. 그런 욕심과 욕망이 왜 없었겠나. 그런데 그런 마음이 있다 한들 생선인간이 된 박구가 할 수 있는 게 있었을까. 박구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지만 그가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도 분명 있었다.” 박구를 향한 이광수의 연민이자 이광수가 연기한 박구에 대한 관객의 연민이 생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박구뿐만 아니라 이광수는 종종 극 안에서 보는 이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는 190cm라는 보기 드문 큰 키에 군살 하나 없이 마른 그의 외형도 한몫한다.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2013)에서 ‘썬더맨’ 복장으로 와이어를 타고 무대 한가운데로 내려올 때나 응원석에 앉아 동료를 응원할 때도, 맥없는 사람이 참 열심히도 한다는 인상을 주며 시선을 한번 더 가게끔 만든다. “밥 먹는 모습조차 불쌍해 보이는” 영화 <좋은 친구들>(2014)의 민수 역시 애처로운 표정들로 기억될 만한 순간이 많다. <좋은 친구들>을 함께한 백지선 프로듀서는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2012)에서 그가 보여준 진지한 정극 연기가 정말 좋았다. 키 큰 사람 특유의 약간은 굽은 등과 다양한 표정이 보는 이에게 동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그게 배우로서 엄청난 장점이 될 것 같았다”고 말한다.

지난 5년여 동안 이광수는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이하 <런닝맨>)에서 ‘웃긴 놈’이 돼 뛰고 또 뛰어왔다. 그 모습이 익숙한 관객에게는 이광수의 진지하면서도 안쓰러운 표정이 상당히 낯설 수 있다. “바보같이 보이지 않을까, 혹여 진지한 순간인데 관객이 내 얼굴을 보고 웃지나 않을까, 에 대한 고민은 수도 없이 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건 내가 고민한다고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히도 <런닝맨>을 통해 한국뿐 아니라 중국, 홍콩, 베트남 등에서 정말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아시아의 프린스’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인 애칭이다. 그런 팬들의 지지가 발판이 돼 지금 이렇게 내가 작품을 할 수 있게 된 면도 분명 있다. 게다가 <런닝맨>을 통해 함께해오고 있는 멤버들, ‘사람’을 얻었다. 정말 큰 선물이다. 프로그램이 폐지되지 않는 한 나는 끝까지 함께할 거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조금씩 자신의 다음을 그려보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적어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달려왔다. 연기도 예능 활동도 점점 재미있어진다. 내 인생이 좀더 흥미로워지고 있달까.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 그가 손꼽아 기다리는 역할 중에는 자기 안의 악성을 끄집어낼 수 있는 지독한 악역이 있다. <덕수리 5형제>(2014)에서 의외의 반전을 지닌 인물 박 순경을 연기하며 한 차례 악한 기운을 뿜어내봤고 곧 촬영에 들어갈 단막극 <퍽!>(2015)에서도 인정사정 없는 사채업자로 등장한다지만 아직 그의 성에 차지는 않는다. “악역 그 자체의 매력보다는 관객에게 내가 가진 다양한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광수가 하면 참 잘하겠다’, ‘이 역할은 이광수가 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일하면서 스스로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요즘, 행복하냐고? 그렇다, 무척 행복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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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지경미·헤어 황승배·메이크업 정연호(이희헤어앤메이크업)·의상협찬 무홍, 에이치 블레이드, 노앙, 쟈딕앤 볼테르, 재희신, 병문서, 시스템옴므